[이민자 인터뷰 ②] 슬로바키아 니트라 김영진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첫 번째 인터뷰이였던 최동섭 작가님을 통해 김영진 씨를 소개받았다. 그가 슬로바키아에 온 스토리도 흥미로웠지만 우리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그의 정착기가 더 궁금해졌다. 인터뷰를 위해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와 줄 만큼 적극적으로 임해 준 그와의 인터뷰를 지금 공개한다.
- 가족: 아내, 딸
- 거주지: 슬로바키아 니트라(Nitra)
- 슬로바키아 거주 7개월 차
- 니트라 지역 기업 근무
*모든 내용은 2016년 8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2005년 대학 졸업
2005년 삼성전자 LCD사업부 입사
2007년 GM대우 재무부서 입사
2010년 결혼
2010년 두산 재무부서 입사
2015년 12월 퇴사
2016년 2월 25일 출국
2016년 4월 1일 취업
2017년 4월 아내와 자녀 합류 예정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슬로바키아에 도착한 지 35일 만인 2016년 4월 1일, 그는 슬로바키아에서 첫 출근을 했다.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거라 고는 그조차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가 해외 취업을 시도했던 건 처음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던 그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2년 직장 생활 8년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는 이미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지만 이민을 위해 호주 현지 기업에 꾸준히 이력서를 넣었다.
이공계(재료공학) 출신이지만 해외 어학연수 경험도 있고, 외국계 회사를 다녀 영어의 장벽은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장을 받기는 어려웠다. 아쉬울 게 없는 호주 기업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생판 모르는 한국 사람에게 일을 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주 이민은 잠시 접어두고 있던 2015년 말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네덜란드 주재원으로 발령 계획이 난 것이다. 이번엔 해외 이주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주재원 계획은 무산됐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다시 한번 새롭게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와 의논해 퇴사를 하고, 일자리를 찾아 슬로바키아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15년 11월 주재원 발령 취소, 2015년 12월 이민 결정, 2016년 2월 출국. 그는 굳이 외국으로 가야겠냐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한국을 떠났다.
- 슬로바키아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미국은 총이 있고, 중국은 언어가 안 통하고, 호주는 환경은 좋은데 산업이 크지 않아서 제외했어요. 유럽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잖아요. 그리고 제 직장 경력이 제조업(전자, 자동차)이고, 대부분 제조업체들이 동유럽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슬로바키아에서 안되면 체코, 폴란드, 헝가리로 갈 계획이었어요.
- 슬로바키아로 떠난다고 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요?
“보내줄게. 취업 못하면 돌아와.”라고 했어요. 아내 덕분에 가능했죠. 회사 다니며 혼자 딸을 키우고, 둘째까지 임신한 상태거든요. 아내도 저에게 의지하지만, 저 역시 아내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그 지원이 없었다면 분명히 어려웠을 거예요.
- 현지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 현지채용을 알아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반에 현지 기업에 들어가면 제일 좋은데 되게 어렵거든요. 정보도 적고 언어적으로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차선책으로 현지 회사나 한국기업 현지법인에 5년을 근속하면 영주권(영구체류허가)이 나와요. 슬로바키아는 유럽연합(EU) 소속이니까 그 영주권으로 다른 유럽 국가에 거주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거예요. 일단 지속적으로 일하는 게 목적이고 향후에는 현지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나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슬로바키아로 떠나기 전에도 한국 진출기업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취업은 어려웠다. 하지만 현지에서 다시 구직 활동을 했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현지에서만 공유되는 채용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슬로바키아까지 직접 찾아온 구직자에겐 가산점을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에 도착한 뒤로 한국에서 지원했던 곳에도 다시 한번 이력서를 냈고, 한인교회 교인들을 통해 소개를 받기도 했다. 결국 몇 차례 면접을 거쳐, 삼성전자의 한 협력업체(주재원 4명, 현지직원 약 400명) 경영관리팀에 입사하게 됐다. 다른 회사들은 영업이나 생산관리직을 제안했지만 재무, 회계, 경영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지금 회사의 경영관리팀을 선택했다. 법인장과 잘 맞는 것도 그의 선택에 결정적 이유가 됐다.
- 취업이 안 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셨나요?
답사는 아니었고, 어떻게든 끝장을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일생에 한두 번밖에 없는 기회잖아요. 저는 영국 어학연수 때도 아르바이트가 필요해서 런던의 스타벅스란 스타벅스는 다 찾아가 봤어요. 그런 경험도 있어서 ‘돌아다니면 되겠지’라는 게 80%는 있었어요.
(구직 기간을) 최장 1년까지 생각했어요. (관광비자 기한인) 90일 내로 취업 못하면 여기에 법인을 세우는 것도 고려했고요. 다행히 그전에 취업이 돼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죠. 법인을 세웠더라도 사업 경험이나 기술이 없어서 취업 준비를 했을 거예요.
- 현지채용이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영어는 무조건 하고 와야 해요. 한국 기업이라도 한국인 100% 구성은 없어요. 현지 직원들과 영어로 일하는데 의사소통이 힘들다면 해외 취업은 어려워요.
그리고 어느 정도 알아보고 준비한 상태라면 일단은 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조건을 따지자면 ①이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②영어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 ③의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회사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90일 안에 안에 사람을 안 뽑을 수도 있거든요. (비자 때문에) 한국 한 번 들어갔다가 오더라도 6개월 동안 구직 활동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절박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 여기서도 한국 회사에 다니는 건데 업무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일단 한국 사람이 많지 않으니 치이는 게 적어요. 업무 영역과 책임감이 늘어났지만 그만큼 자율권도 늘어났죠. 한국 직원이 적다 보니 제가 권한을 가지고 결정하는 일도 많아졌어요. 전 배우는 게 많아져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한국에서 원래 야근을 많이 하는 부서에서 일해서, 상대적으로 여긴 조금 준 편이고요. 토요일에 일하긴 하지만요. 회식이나 회사 분위기는 법인장에 따라 회사마다 달라요. 그리고 저는 현지채용이 아니라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서 급여 외에 거주, 보험 지원을 받아요. 혜택을 합치면 급여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편이에요.
- 알아보신 나라 중에 한국 회사 현지채용이 가능한 나라가 어디예요?
제가 보기엔 헝가리, 폴란드가 좋아요. 베트남도 많이 뽑는데 ‘셋업 기간’이라 2, 3년까지는 되게 힘들 거예요. 주재원도 운때가 있는데 힘들 때 와서 고생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 동유럽의 현지채용은 제조업 공장 중심인데요. 다른 직종 경력자가 취업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인문계 전공자로 출판사에서 일했던 사람 이라면요.
어렵긴 하지만, 본인의 경력을 유지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그 임무에 적합하다’고 ‘어필’해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 영업 업무는 개척보다 한국 협력회사들 사이의 의견을 전달하는 다리 역할이에요. 보고서 작성이나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걸 강조해야죠. 회사도 100% 맞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잖아요. ‘이 사람을 써서 가능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뽑는 거죠.
- 직장 경력 11년 차에 슬로바키아에 오셨는데요. 현지채용을 노린다면 몇 년 차일 때가 가장 좋을까요?
일단 기혼이 좋다고 봐요. 혼자만 생각해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아내가 줄여주니까요. 경력은 6년 차 이상이 좋을 것 같고요. 직급은 대리 중반 이상에 34, 35살 정도가 가장 안정적일 거예요. 대부분 회사가 사람은 없고, 일은 바쁘게 돌아가요. 그래서 신입 채용은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으신가요?
아이들 고민보다 아내와 저를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우리의 만족도가 아이들에 갈 거니까요. 딸이 5살인데 여기서 어떤 교육을 받을지, 한국에서 어떤 교육을 받을지 아이가 뭘 알겠어요.
물론 초반에 고생하겠죠. 말이 안 통하고 친구들이 안 놀아 줄 수도 있고요. 근데 한국에선 아이들이 집에선 TV를 많이 보는데, 여기 아이들은 부모가 퇴근하는 오후 6, 7시까지 밖에서 뛰어놀거든요. 여기 애들 보고 ‘우리 애도 이렇게 자라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스스로 굉장히 운이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물론 꾸준히 이민을 준비한 결과기도 하지만, 환경과 조건도 잘 맞아떨어졌다. 부부 모두 대기업을 다녔고, 아내가 일하고 있어서 그가 1년을 쉬더라도 경제적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마지막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해 금전적 여유가 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그에게 힘이 됐던 건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는 아내의 응원 덕분이다. 그가 떠나면 혼자 남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의 길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 상황인데도 말이다. 아내와 두 아이는 2017년 봄에 슬로바키아로 넘어올 예정이다.
‘이민’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초기 단계라 그의 갈 길은 멀고도 멀다. 하지만 그의 의지라면 분명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비단 5년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 일을 자신이 시도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는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o 수도 : 브라티슬라바(약 42만9000명)
o 인구 : 549만명
o 면적 : 49,035㎢(한반도의 1/4)
o 민족 : 슬로바키아인(86%), 헝가리인(11%), 집시(2%), 기타(1%)
o 종교 : 가톨릭(69%), 개신교(8%), 그리스정교(4%), 무교 또는 기타(18%)
o 언어 : 슬로바키아어
o 화폐 : 유로
o 임시체류 허가 : 사업, 근로, 학업 등 목적일 경우 신청 가능
o 영구체류 허가 : 5년 이상 임시체류 허가를 얻으면 신청 가능
o 시민권 : 영구체류 허가를 얻고 8년 후 신청 가능
o 한국기업 :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등 90여 개
o 한국인 : 임시체류 허가증 소지자 1590명(2015년 12월)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난, 이민자 11팀의 정착 이야기가 담긴 저희 책이 나왔습니다.
브런치에는 없고 책에만 실린 인터뷰도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