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C. Contemplation
감정을 담고 있는 알파벳 키워드로 글쓰기 습관 만들기
사색, 명상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나는 예민해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가장 좋은 자극 차단 방법이니까.) 아니 이제는 혼자 있지 못하니 "좋아했었다"와 더 가까울 수 있겠다. 예민함은 갑자기 저 이면에 새로운 것들을 읽게 하고, 또 이상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게 한다. 그림 그리거나 디자인을 할 때 가끔 보고 오곤 하는데 예민함이 잘 발동되었을 때에는 무언가 사회의 반응이 다르긴 했었다. 예민함이라는 녀석이 사실 지금 먹고살게 해 준 도구인건 틀림없지만 넘치는 사회 속 자극을 계속해서 만나게 하는 부담스러운 친구여서 너무 힘들기도 했다.
그게 뭐랄까. 작업을 할 때 스위치를 켜고 등장하는 감각의 예민함은 읽지 않아야 될 것까지 선명하게 불러온다. 그래서 나와 타인을 파괴하기도 하고 생각에 꼬리를 물게 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어릴 적엔 그 예민함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가족들조차도 나의 그면을 많이 싫어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음에 한참을 괴로워했었다.
그것이 사실 삼십 대 초반까지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오랜 걷기를 하면서 갑자기 만나게 되었다. 내가 같은 음식 하나를 계속 몇 달 먹는 이유도, 잠들기 전 팟캐스트를 늘 틀어야 겨우 잠이 드는 것도,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도 혼자가 좋은 것도, 견딜 수 없는 마음속의 불안도, 모든 것들이 예민함이 가져왔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오랜 걷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 걷기를 하는 나의 머릿속은 이렇다. 잊혔던 생각들이 걷기 시작하자 보자기 속에서 쑤ㅡ욱하고 나온다. 그러면 나는 이리저리 회전시켜 보고 그것이 어떻게 그리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저장되었는지 잠시 생각한다. 알게 차리게 되면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아니라면 다음번 생각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보자기로 곱게 묶어 그 자리로 되돌려둔다. 이 짓을 일곱 시간이고 여덟 시간이고 며칠간 걷는 내내 반복했더니 나란 인간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예민함이 가득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덕분에 받아들였다.
인정하고 났더니 예민함을 잘 쓰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것은 계속 수련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오랜 걷기는 생각과 정리를 위한 훈련 같았다.
그래서 어떤 것들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9월이 되면 나는 오랜 걷기를 떠난다. 걷기를 통한 사색이 나의 예민함을 조금씩 다스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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