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내려온 미술관
약 4년 정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태백시와 공간을 협업해 운영하게 되었다. 세어보니 14회가 넘는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여는 날을 앞둔 일주일은 늘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 몸도 많이 아프고 무척이나 지치곤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열심히 전시를 열었음에도 우리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술관이 위치적으로 너무 구석에 있기도 했고, 전시 문화가 없다 보니 ‘전시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필요를 주민들이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이런 활동과 작업을 처음 해보는 상황이었기에 주민들의 필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때가 많았다.
반면 외부 손님들은 꽤 많이 방문해 전시를 보곤 했는데, 나는 그들보다 우리 지역의 어른들, 아이들이 전시를 봐주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어떤 전시는 예상외로 큰 반응을 얻어 방명록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태백시와의 미술관 공간 계약이 끝나며 더 이상 미술관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알고 지내던 어른 한 분이, 자신이 사용하던 사무실이 비어 있는데 다른 용도로 써볼 생각이 없냐고 무료로 제안해 주었다. 아주 목이 좋은 큰길 옆이었고, 컨테이너로 미술관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을 통창으로 바꾸고, 오며 가며 누구나 볼 수 있는 윈도우 갤러리로 만들어 〈기억을 모으는 미술관 아트-티〉의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시작한 이후, 마을 안쪽으로 미술관을 하나둘 무료로 더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이것이 비엔날레 날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한데,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해보려 한다.) 그다음으로는 장성동 파리바게트 지하가 미술관이 되었고, ‘차림’이라는 공유주방을 열게 되면서 그 옆 컨테이너 역시 윈도우 갤러리로 바꾸어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게 되었다. 그러자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만나며 새로운 피드백들이 생겨났다. 오히려 이전 공간의 문을 닫기를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쓰면 쉬워 보이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전시를 계속 바꾸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설치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또 비영리이고. 하지만 참 재미있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결국 어떤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주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 변화란,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시’라는 개념이 조금씩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이 걸려 있고, 이상한 문장이 적혀 있고, 그것이 질문을 던지고, 또 계속해서 바뀌는 풍경. 우리는 늘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만난 사람들이 “그 전시를 보았다”, “그 이상한 것들을 경험했다”라고 말해줄 때, 이 작업이 어느새 9년 가까이 이어지게 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억을 모으는 미술관 아트-티〉는 이제 일단 문을 닫았다.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독립기획자로서, 더 실험적인 작업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다만 지금의 도계 삭도 작은미술관 앤드는, 어떤 면에서는 기억을 모으는 미술관 아트-티를 계승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태백뿐 아니라 더 많은 지역에 이런 작은 미술관, 혹은 갤러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작업을 벌이며, 지역 안에 보고, 생각하고, 질문하는 시각예술 공간이 아닌 문화를 천천히 만들어 가고 싶다. 지역의 시각예술은 단지 시각예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커뮤니티에서 성장한 기획자다.
시각예술을 커뮤니티에 번역하고 이야기하는 기획자로.
* 이글은 2018년~2025년까지 약 8년간 기획-조성-운영한 <기억을모으는미술관 아트-티 >에 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