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운정2동 주민자치회 입성기
주민자치회 위원이란, 내가 사는 동(洞)의 주민을 대표해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구성원을 말한다. 파주 운정2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운정2동 주민 전체를 대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만 18세 이상 주민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운정2동은 신도시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많이 유입되면서 보육과 교육, 돌봄 등 가족 중심의 정책 수요가 커졌다. 파주시 인구현황 자료(2023)만 살펴봐도 유소년 인구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 유입된 주민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아이 돌봄 인프라, 교육 시설 확충 등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행정은 아직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신도시로 조성된 지역이라 아파트가 전체 주거지의 90% 수준에 이른다. 여러 세대가 공동주택 단지 내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아파트마다 차이가 있지만, 단지별로 커뮤니티 시설(도서관, 헬스장, 카페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 이용 시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돌봄과 교육 인프라가 절실한 운정2동의 현실을 감안하면,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시설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영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사회 주체와 행정이 협력하고 운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산내마을 7단지에서 아파트 공동체 활동을 시도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웃과 교류를 원하는 주민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갈등이 두렵다는 이유로 쉽게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서모임으로 시작했던 우리 활동이 씨앗이 되어 경기도와 파주시의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작은 규칙이 있었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면서 상대를 존중하고, 공식적인 직함이나 위계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정기적인 모임 일정을 정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쌓았고,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생긴 고충을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참여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부담을 최소화했다. 독서모임은 어디까지나 관계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운정2동 주민자치회 3기 위원으로 위촉된 뒤,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됐다. 한 달여 동안 공식 모임은 오리엔테이션(OT) 한 번과 임원선거 한 번, 단 두 차례뿐이었다. 단 두 번의 만남에서 주민자치회의 쓴맛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자치회의 기본 취지는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원 간 민주적 의사결정과 소통 구조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주민자치회는 작은 동아리 운영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될 정도로 형편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이후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행하는 임원선거는 가관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공정한 절차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주민자치회를 지원하는 행정 주무관이 개인적으로 접수를 받고, 별도 안내 없이 선착순으로 마감하고 공지를 해버렸다. 후보자 서류를 접수하는 과정에서도 필수 항목을 누락한 후보를 선관위가 후보로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위원들 사이에 신뢰와 결속보다는 불신이 먼저 자리 잡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공론화하고 해결 과정을 투명하게 거치지 않고, 운영상 결함이 드러났는데도 원인을 덮어둔 채 선거를 진행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제 해결 과정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고, 위원 간 충분한 논의와 소통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임원선거가 끝난 직후, 새로 선출된 임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단톡방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모든 위원들에게 “단톡방에서 나가라”는 통보가 있었고, 공지는 문자로만 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절반 이상의 위원들이 단톡방을 떠났고, 남아 있는 소수 위원들 중 몇 명이 오늘 저녁 별도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도, 협동조합 운영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도, 그리고 최근에 주민자치회 탐험을 시작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학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자치회 갈등 상황을 학습을 통해 문제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한 과정이다. 내 삶의 편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가능한 행동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개인적인 이익을 떠나서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누군가로부터 칭찬받으려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