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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Apr 08. 2022

[Review] 클라리넷의 매력에 빠지다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 공연 후기


음악과 예술 작품에 동시에 동화되기를 좋아한다. 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는 비틀즈의 ‘Norwegian Wood’와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 ‘Rubber Soul’만을 주야장천 듣고 다녔다. 


얼마 전에는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책에 한창 빠져있었는데,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주인공 알렉스는 클래식 음악에 유독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알렉스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하나둘씩 찾아 듣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단번에 나의 귀를 사로잡았다. 천천히 곡조를 끌어올리다가 마침내 펑- 하고 터져버리는 베토벤의 폭발적인 음악이 책의 분위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라단조 작품번호 125 ‘합창’ - 4악장 ‘환희의 송가’>라는 기나긴 이름을 가진 이 곡은 내가 책 속으로 흠뻑 빠져들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나는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는 기간 내내 베토벤의 음악만을 듣고 다녔다.


가끔 이렇게 책에서 소개되는 음악들이 작품의 분위기나 내용에 딱 맞아떨어질 때, 기분 좋은 쾌감을 느끼곤 한다. 기꺼이 그 음악에 온몸을 내맡길 준비를 하고서 말이다. 한동안 베토벤의 음악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주인공 알렉스를 따라 클래식 음악을 향한 관심도 높아졌다.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는 때마침 클래식 음악을 향한 나의 무기한 갈증을 해소해 줄 좋은 기회로 보였다.


그러나 지금껏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현악기 위주의 소리에 익숙해져 온 나로서는 ‘클라리넷’이라는 목관악기가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어느 음악 수업 같은 곳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이지만, 나는 여전히 클라리넷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여, 공연 하루 이틀 전부터 부랴부랴 목관악기에 대해 검색하고, 각 악기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소리를 들어보았다. 중간에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잠시 헛갈리는 바람에 1시간은 플루트 영상만을 찾아 듣기도 했다. 


플루트 소리에 귀가 익숙해질 때쯤 접하게 된 클라리넷의 선율은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다. 플루트처럼 티 없이 맑은 소리를 낸다기보다는 그 소리에 공기층이 한 번 더 겹쳐져서 다소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악기로 느껴졌다. 악기 영상은 주로 영화 OST를 찾아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시네마 천국>의 ‘Love Theme’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망의 공연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부지런히 예술의 전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연 시작까지 여남은 몇 분간은 프로그램 북을 읽으며 공연될 곡들에 대한 설명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공연장이 암전되기 시작하고,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악단’이 먼저 등장했다. 현악기가 주를 이루는 악단의 경쾌한 연주를 듣고 있노라니, 그간의 지친 피로감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악단이 짧은 연주를 끝마치자, 곧 ‘조성호 클라리네스트’가 활기찬 걸음과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등장만큼이나 그의 연주와 몸짓, 표정에서는 예술가의 활력과 여유가 흘러넘쳤다. 클라리넷과 완전히 ‘하나’가 된 듯한 그의 매끄러운 연주는 보는 사람도 한결 들뜨고 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1부 - 요한 슈타미츠와 카를 슈타미츠의 세계


첫 번째 곡은 요한 슈타미츠의 신포니아 제2번 가장조, “만하임 교향곡”이었다. 상당히 경쾌하고 빠른 박자로 진행되는 이 곡은 공연의 첫 시작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약 5분 내외의 짧은 연주가 이어졌음에도 그 중심 구절이 빠르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복잡한 음계가 뒤섞여있는 듯 보이지만, 의외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간결한 곡조를 유지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아가던 음정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 터지는 타격감이 상당해서, 『시계태엽 오렌지』 속 주인공 알렉스도 상당히 좋아할 만한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곡은 앞선 요한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 내림나장조’라는 곡이었다. 연주의 많은 부분이 바이올린과 첼로, 호른 등으로 이루어진 현악기 중심의 악단에 의지하고 있지만, 클라리넷 독주가 연주될 때마다 극의 분위기가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과연 인상적이었다. 가만히 연주를 듣고 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그 수많은 현악기 사이에서도 클라리넷은 저 혼자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과 기량을 거침없이 뽐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악기가 전체와의 조화로운 연주를 위해 부드러운 다리 역할을 한다면, 클라리넷과 같은 목관악기는 해당 악기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소리와 음량으로 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조성호 클라리네스트의 연주를 지켜보며 새삼 목관악기의 매력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클라리넷 협주곡 내림나장조’에서는 특히나 클라리넷의 음색이 돋보이는 구간이 있다. 악단이 완전히 연주를 멈추고 조성호 클라리네스트가 홀로 독주를 하는 구간이다. 자연스레 클라리넷의 소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첫 곡인 “만하임 교향곡”보다는 상당히 느린 박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클라리넷 본연의 색이 더욱 잘 드러난 곡이라 느꼈다. 클라리넷과 악단과의 조화가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요한 슈타미츠의 만하임 오케스트라가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오케스트라에 클라리넷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초기 클라리넷은 플루트와 오보에의 간극을 좁혀주었으며, 후기에는 두 악기의 대체 악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 내림나장조는 가장 이른 시기에 작곡된 클라리넷 협주곡 중 하나다. 이 곡이 작곡된 1755년 전까지는 요한 멜키오르 몰터의 클라리넷 작품만이 유일했다. (...)

19세기 초 발굴된 이 곡은 발견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현재까지도 클라리넷 연주의 기준적인 레퍼토리로서 그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 프로그램 북 中


요한 슈타미츠(1717-1757)


세 번째 곡은 앞서 소개한 요한 슈타미츠의 아들, 카를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3번 내림나장조’라는 곡이었다. 역시나 악단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시작해 시종 나른한 기분이 공기 중을 맴돌았다. 카를 슈타미츠의 곡은 요한 슈타미츠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해당 곡에도 클라리넷의 독주가 있긴 했으나 앞선 요한 슈타미츠의 곡만큼은 그 소리가 뚜렷이 들려오지 않은 걸 보면 악기들의 조화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걸 시사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인 요한 슈타미츠의 곡이 ‘클라리넷’의 개성 자체를 폭발적으로 드러낸 곡이라면, 아들인 카를 슈타미츠의 곡은 그보다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조화로운 음색이 두드러진 곡이었다.


평화로운 곡의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있다 보니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봄의 풍경이 연상 되며 들판 위를 뛰어다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쾌하고,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자아내는 3악장(III. Rondo)이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클라리넷의 음색이 적잖이 두드러지면서도 악단과의 합주가 가장 조화로운 곡이라고 느꼈다.


카를 슈타미츠의 곡까지 듣고 있으니 문득 떠오른 것은,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조화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배경음으로만 작동하는 듯 보이는 현악기 같은 경우에도 그 본연의 색을 잃지 않고 지속해서 음악당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개성이 뚜렷한 클라리넷의 연주만으로는 다소 심심했을 법한 그 무의 공간을 끊임없이 경쾌한 소리로 채워 넣으며 관객이 공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악단의 도움을 받아 클라리넷의 소리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진정한 상부상조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둘의 조화가 새삼 완벽한 합일을 이루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요한 슈타미츠의 아들인 카를 슈타미츠는 만하임 악파의 작곡가 중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그는 15세에 만하임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였으며, 점차 오케스트라 연주와 작곡에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슈타미츠는 50개가 넘는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 못지않게, 여러 악기를 위한 다수의 협주곡을 남겼다. 

클라리넷 협주곡 제3번은 슈타미츠가 파리에 정착한 해인 1785년경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이 협주곡은 18세기 중반의 일반적인 악기 편성법을 반영한다. 중요한 음악적 재료는 대부분 현악기에 부여되었고, 관악기는 화음을 채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배경을 바탕으로 클라리넷 선율이 힘차게 등장한다. 카를 슈타미츠의 쾌적하고 자유로이 흐르는 음악적 스타일이 이 협주곡에 여실히 드러나며, 클라리넷의 티 없이 맑은 음색 또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 프로그램 북 中



2부 - 안토니오 비발디의 세계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10분간의 인터미션(휴식시간)이 끝나고 시작된 2부에서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올림피아데> 신포니아 다장조, RV 725라는 곡이 네 번째 곡으로 연주되었다. 비발디의 곡은 앞선 슈타미츠 부자의 곡과는 다소 상반되는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슈타미츠 부자의 전반적인 곡의 분위기가 완연한 봄의 기운을 떠올리게 했다면, 비발디의 곡은 가라앉은 겨울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잠시 중세풍의 배경이 그려지면서 영화 <라스트 듀얼>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했다.


2부 전체가 비발디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다섯 번째 곡은 역시나 비발디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내림나장조 “산탄젤로”라는 곡으로 이어졌다. 2부에서는 1부의 슈타미츠 곡에 함께 연주되었던 현악기 ‘호른’이 빠지고, 새로운 관악기 ‘바순’이 들어왔다. 더하여 2부까지 공연을 들으면서 여실히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바로 클라리넷의 음역 폭이 굉장히 넓다는 사실이었다. 목관악기의 대표 주자인 플루트보다 옥타브가 낮은 기음(基音)을 가졌다고 하니 비발디의 “산탄젤로”에서는 그러한 클라리넷의 특징이 한결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절제된 감정이 느껴지는 비발디의 곡은 어느새 공연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은 비발디의 오페라 작품 중 <올림피아데>와 <별장의 오토네>의 선율을 기반으로 안드레아스 N. 타르크만이 편곡한 작품이다. 이 곡의 주요 선율은 2부 첫 곡으로 연주된 오페라 <올림피아데> 중 신포니아의 주요 선율과 특히 유사하다. 

산탄젤로 극장에서 초연된 <올림피아데>의 첫 악장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수식적인 작곡이 특징이며, 이러한 수사적인 힘은 이전 마디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2악장은 요한 요하임 크반츠가 1752년 작곡하여 비발디에게 헌정한 곡에 등장하는 롬바르딕 리듬(짧고 강세가 있는 음 뒤에 긴 음표가 위치하는 일종의 당김음)에 기반한다. 마지막 악장은 알레그로 비바체의 경쾌한 빠르기로 진행된다. 

- 프로그램 북 中



공연 시간을 통틀어 나의 눈과 귀를 가장 열렬하게 사로잡은 곡은 대망의 여섯 번째 곡이자 마지막 곡인 비발디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라단조 “불사조”였다. 1악장부터 대뜸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선보이는 이 곡은 3악장에 이르러서는 흡사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광란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덧붙여 작품 전반으로 생동이 흘러넘치면서도 어딘가 웅장한 느낌을 자아내는 비발디의 "불사조"는 한 인간의 격정적인 인생사를 떠올리게 한다. 고야의 그림 중 하나가 떠오른 것은 이러한 곡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법 가라앉은 곡조를 띠고 있음에도 시종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 아니라서 의외로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라 느꼈다. 낮고 조용한 곡의 분위기가 앞선 요한 슈타미츠의 곡처럼 클라리넷의 음색을 더욱 감질나게 살려주었다고 본다.


“불사조”는 앞서 소개한 곡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빠른 박자로 연주가 진행되었다. 놀라운 건, 그토록 빠른 음정에도 불구하고 악기들의 소리가 쉽사리 묻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조성호 클라리네스트는 그 모든 연주를 부드럽고도 정확하게 선보이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음률을 관객들이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슈타미츠 부자를 지나 비발디에 이르러 비로소 폭발하는 그의 클라리넷 연주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경이와 탄식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은 협주곡 제1번과 동일한 3악장 구성이며, 오페라 <라 피다 닌파>와 <주스티노>, 그리고 오라토리오 <승리하는 유디타>의 아리아를 기반으로 안드레아스 N. 타르크만이 편곡한 작품이다. 1악장과 3악장은 비발디의 전형적인 특징인 넓은 음역대가 두드러지며, 매혹적인 구조와 고도의 긴장감이 드러나는 멜로디 또한 주목할 만하다. (...) 

2악장은 비발디가 즐겨 사용하던 장치 중 하나인 당김음이 특징적이다. 2악장이 클라리넷의 전신, 샬뤼모의 음색을 떠오르게 한다면 1, 3악장은 소프라니노 클라리넷의 명랑하고 비르투오소적인 느낌을 반영한다. 

- 프로그램 북 中



전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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