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음악평론가
게임을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엄마에게 돌잔치 때 내가 뭘 잡았는지를 여쭤봤다. 만약 게임기가 있었으면 그걸 잡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뭘 잡았는지는 비밀이다.
초등학교 때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아빠가 물어보셨다. 당시 내 선택지는 총 두 개였다. 레고를 ‘더’ 사거나, 게임기를 ‘최초’로 사거나. 사실 아버지는 레고 시리즈를 선물하려 하셨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하여 단호했다. 닌텐도에서 출시된 게임기 ‘패미컴’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패.미.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 글자인가. 패미컴은 뭐랄까 그 시절 부의 상징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패미컴이 있는 집으로 부나방처럼 몰려들었다. 박진영이 노래했던 것처럼 나는 그 집이 우리 집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검소했다. 게다가 애국자셨다. 수개월을 졸라 마침내 패미컴을 사러 갔던 역사적인 날, 내 손에 쥐어진 건 패미컴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한국에서 패미컴을 벤치마킹(사실상 모방)한 짝퉁이었다. 디자인은 구렸지만, 가격이 쌌고, 무엇보다 국산이었다. 부모님에겐 그게 중요했다.
짝퉁은 과연 짝퉁다웠다. 수직으로 호쾌하게 게임팩을 내리꽂는 진퉁 패미컴과는 달리 짝퉁은 팩을 15도 정도 위 방향에서 넣어서 밑으로 내린 뒤 고정시키는 스프링식이었다. 스프링이 점차 헐거워지면서 짝퉁은 6개월을 채 가지 못하고 운명하고 말았다. 이후 진퉁 패미컴을 마침내 손에 넣은 나는 수많은 게임을 섭렵하면서 덕력을 쌓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는 커다란 장벽과 마주해야 했다. 바로 엄마라는 이름의 장벽이었다.
엄마의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게임은 오로지 주말에만 가능하고 하루에 2시간 이상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허락된 시간은 일주일에 달랑 4시간이었다. 주여. 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입니까. 한창 게임 할 나이인 저를 이런 시험에 빠트리시다니요. 게임을 더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면 마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 포즈로 책상에 위치한다. 안심하는 표정의 엄마.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엄마 외출. 내가 바보도 아니고 우리 집이 궁전도 아닌 바에야 엄마가 숨겨놓은 게임기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드디어 전원을 켜고 게임을 시작한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오감을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행선지를 먼저 파악한 뒤에 언제쯤 오시겠구나 계산이 딱 서면 그 시간이 되기 30분 전까지 불꽃같은 의지로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 뒤부터는 신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심화 과정으로 들어간다. 나는 손으로는 게임을 하면서 오감을 동시에 작동해 엄마의 기척을 파악했다. 정신일도하사불성.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기야. 아브라카다브라. 심지어 나는 엄마가 오기 5분 전에 게임기를 다시 숨겨놓았던 곳에 넣고 책상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엄마 컴백. “우리 순탁이 공부 열심히 하네.”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 얘기 한번 해볼까. 한데 먼저 밝힐 게 있다. 나는 규모의 경제로 대상을 파악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힌트 정도는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 언급한다는 점 이해해주기 바란다.
적시하면 영화와 음악 산업의 자본을 박박 긁어모아 합쳐도 게임 산업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대중문화들 중 규모의 경제로만 재단하면 게임이 지구의 왕이다. 아니, 우주의 황제다. 혹시 못 믿을 당신을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본다. <GTA 5>(2013)라는 게임이 있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다. 아니, 게임을 넘어 문화상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GTA 5>의 전체 매출은 대략 60억 달러다. 2020년까지 영화 쪽 1위를 지킨 작품과 2배 이상 차이 나는 수치다. 비교 대상은 저 유명한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이다. 총 28억 달러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2021년 봄 <아바타>(2009)가 중국 재개봉을 통해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수익을 넘어섰지만 어차피 <GTA 5>의 상대조차 되질 못한다. 무엇보다 재개봉 같은 꼼수는 안 쳐주는 게 맞다.
나도 알고 있다. 이 책이 시네필을 위해 기획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시네필을 위한 글은 친애하는 김도훈, 이화정, 주성철 기자의 솜씨로 충분하다. 영화 소개하는 방송 매커니즘이 궁금하다면 김미연 피디의 글을 보면 된다. 편집진이여. 제발 나에게 능력 이상의 결과물을 요구하지 말아 달라. 나 그렇게까지 유용한 필자 아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자본이 증가하면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명백하다. 사람이 붙는다는 거다. 인재풀이 풍성해진다는 거다. 실력 있는 스토리 작가가 게임계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무엇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이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통용된 지 오래라는 게 그 증거다.
게다가 할리우드는 영리하다. 돈이 될 거라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투자는 어림도 없다. 그런 할리우드가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언차티드> 시리즈와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13)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이 두 영화가 폭망할지 대성공을 거둘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만은 장담할 수 있다. 게임의 영화화는 앞으로 전례 없는 페이스로 가속화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이 이 세상에는 널려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위쳐>(2019)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 드라마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게임으로 완성된 <위쳐>가 없었다면 영화의 이미지를 설계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을 게 분명하다. 만약 당신이 게임을 하고 드라마까지 본 사람이라면 내 주장에 백 퍼센트 동의할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위쳐 3: 와일드 헌트>(2015)를 총 3번 클리어했다. 트로피 달성도도 90퍼센트를 훌쩍 넘겼다. 게임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트로피란 트로피는 거의 다 땄다는 의미다. 그래. 맞다. 자랑이다. 따라서 단언할 수 있다. 영화 쪽에 <반지의 제왕>이나 <듄>이 있다면 게임 쪽에는 <위쳐 3>가 있다. 만약 당신이 플레이스테이션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 작품만큼은 플레이해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과연 그렇다. 그것이 만약 거대하면서도 탄탄하게 짜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판타지의 세계관은 언제나 옳다.
아, 맞다. <배트맨: 아캄 나이트>(2015)도 거론해야 마땅하다. 영화 뺨치는 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전설적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I’ve Got You Under My Skin’가 삽입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홀딱 반했어요”라는 의미를 지닌 이 곡으로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서 조커가 배트맨을 향해 했던 명대사 “You Complete Me(너는 나를 완성해줘)”를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이 영화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유튜브로 게임 공략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영화 보듯 감상한다는 거다. 한데 이와 관련해 얼마 전 깜놀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올레티비에서도 게임 공략 영상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관람할 수 있게 해놓은 것 아닌가. 만약 “그런 걸 보는 사람이 진짜 있어?”라고 반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주민등록증을 꺼내 자신의 나이를 점검해보길 권한다. 이런 사람 되게 많다.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비단 게임 자체만은 아니다. 음악적인 발전 역시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당신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게임 음악은 ‘뿅뿅 사운드’를 탈출한 지 오래다. 앞서 언급한 <GTA 5>만 해도 게임 속에서 차를 타고 라디오를 틀면 셀 수 없이 많은 대중음악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명곡이다. “대체 이 권리를 어떻게 다 샀을까” 행여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자본이 충분하면 라이선스 해결하는 것 따위는 문제조차 되질 않으니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당신과 나의 운명처럼 얇은 지갑뿐이다.
게임을 위해 창작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인 뮤지션, 작곡가, 오케스트라가 게임 음악에 발 들이는 건 이제 흔한 현상이 돼버렸다. 런던 필하모닉은 게임 음악을 연주해 아예 음반까지 냈다.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Hans Zimmer) 역시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의 주제가를 작곡해 찬사를 받았다. 한스 짐머답게 웅장하고, 박력 넘치는 전개가 돋보이는 곡이었다. 저 유명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도 있다. 비록 게임은 평가가 좋지 않았지만 그가 <데스티니>를 위해 작곡한 ‘Hope For The Future’만큼은 예외였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앞서 언급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음악 감독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Gustavo Santaolalla)다. 이름만으로는 영 감이 안 온다면 포털 사이트에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라고 입력해보라.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바벨>로 2005년과 2006년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2년 연속 석권한 이 분야의 대가다.
1, 2편의 음악이 공히 좋다. 처연하고, 황량한 게임 속 분위기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음악이 이어진다. 2편의 경우,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욕을 많이 먹었지만 음악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2편을 2번, 그 중 한 번은 최상위 난이도로 클리어한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욕을 먹을 스토리인가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표곡으로 1편에서는 주제가인 ‘The Last of Us’를, 2편에서는 두 주인공(실제로는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둘)이 부른 ‘Wayfaring Stranger’를 꼽고 싶다. 후자는 영화 <1917>의 종반부에 병사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던 바로 그 곡이다. 남북전쟁 시대부터 애창된 미국 포크 송(여기에서의 포크 송은 ‘전통음악’이라는 뜻)으로 지금껏 수많은 가수가 커버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 죽어가는 병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랫말로 이뤄진 곡이다. 이 곡이 <1917>에 실린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게임을 할 때면 나는 영락없는 (우리 때는) 국민학생 배순탁으로 돌아간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이렇게 다 큰 어른에게 시간 여행까지 선물해주는 취미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삶에 큰 활력소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우리에겐 모두 ‘애 어른’이 되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팍팍한 삶 견디게 해줄 그 무언가 말이다.
물론 당신은 비난할 수도 있다. “다 큰 어른이 피규어 모으고 게임질이냐”며 매서운 눈초리를 날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말 많은 사람의 인식이 바뀐 것을 한번 보라. 바로 나를 포함한 우리 덕후동지들이 마녀사냥에 필적할 만한 핍박을 딛고 일궈낸 빛나는 성취다.
커밍아웃에서 따온 ‘게밍아웃’이라는 게 있다. 게임을 한다는 게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 그리하여 우리 다 같이 외쳐보자.
나는, 게임인이다.
영화인 아니라니까.
<계속>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 이 글은 <시사in>과 <다이브>에 썼던 글을 대폭 수정, 확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