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퓨리오사 로드
영화에 나온 캐릭터로 퓨리오사는 페미니니스트로서 끝판왕입니다.
이 퓨리오사의 탄생 비화를 돌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매드맥스>라는 영화가 무식한 남자영화여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드맥스>가 처음 나온 것은 1979년.
근미래의 경찰관이 폭주족 쯤 되어 보이는 양아치, 것도 몇 명 안 되는 녀석들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고 복수한다는 내용인데...
그 결말도 시원치 않아 영 끕끕한 영화로 기억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매드맥스> 가 무척 재미없었습니다. 무척이나.
그저 서부영화를 흉내낸, 밑도 끝도 없는 영화 같은 느낌.
근데 주목할 점은 딱 하나. 달리는 카액션에 힘을 준 영화였다는 점뿐.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 마초적인 영화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이렇게 무턱대고 벌려논 이야기는 속편에 가서 모양새를 갖춥니다.
조지밀러 감독은 더욱 더 달리는 패티쉬에 집착합니다.
전편의 엉성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그저 내달리는 속편 '더 로드 워리어'는 지금 봐도 새롭습니다.
최근에 나온 '퓨리 로드'의 직계 숙주는 바로 '더 로드 워리어' 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운전석에 맥스 대신 퓨리오사가 앉아 있는 것밖에는.
(이 운전석에 여성이 앉기까지...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드맥스> 3편 '비욘드 선더돔'의 평가는 박한 편이었습니다.
이유는 덜 마초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감독의 명백한 의도였죠. 3편이 제목이 '비욘드 선더돔'인 것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선더돔'은 지금으로 말하면 '옥타곤' 같은 싸움의 링입니다.
둘이 들어가 하나가 나오는,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콜로세움 말입니다.
그럼으로 제목만 본다면 '남성적인 것 너머 그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아이들이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그 전조가 기가막히게 흥미로운데...
'선더돔'에 들어간 맥스가 철가면을 쓴 거인을 가진 고초 끝에 자빠뜨립니다.
근데 이게 웬일..? 거인의 얼굴이 베이비 페이스 입니다.
그래서 맥스는 그를 죽이지 못 합니다.
이 지점에서 '매드맥스'의 팬들은 분개했을 것입니다.
미친 맥스가 이게 뭔가했을 것입니다. 왜 이리 나약해졌을가 했을 겁니다.
3편의 방향성은 그럴 수 있었지만 맥스의 행동은 태생의 목적성까지 흔들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30년 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영화상에서는 불과 몇 년 후의 세상인데.
그 불과 몇 년 후를 구현하기 위해 30년이란 시간이 지난 겁니다.
그리곤 새로운 영웅이 나타납니다.
그가 바로 퓨리오사,
한껏 발기된 남근이 지배하는 '매드맥스' 세계관에 나타난 괴물 여성 캐릭터인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권력의 상징 유조차가 달려옵니다.
에너지원을 싣고 있는 트럭의 핸들을 잡고 있는 이가 바로 퓨리오사입니다.
이 운전석은 '매드맥스' 세계관의 모든 남성이 원하는 자리입니다.
심지어 최고 권력자 임모탄이 퓨리오사에게 예의를 갖출 정도입니다.
그녀가 노선을 이탈했을 때조차 여타 다른 남성들은 그녀에게 저항조차하지 못 합니다.
하물며 그녀는 팔 하나가 없는 장애인입니다.
팔하나로 현재의 모두가 꿈꾸는 유조차 드라이버가 된 퓨리오사입니다.
그런 그녀가 영화 시작과 함께 정해진 노선에서 핸들어 틀어버립니다.
이로써 퓨리오사는 영화 '매드맥스'를 주도권을 접수합니다.
퓨리오사는의 질주가 위대한 이유는 이러합니다.
'매드맥스' 세계관에서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모두가 선망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그 지점은 어찌보면 자아찾기나 뿌리를 찾는 모성애로의 회귀에서 끝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다 섯 명의 임신 가능한 여성과 함께 합니다.
그녀들에게 퓨리오사는 구원의 존재입니다.
퓨리오사가 구원자에서 끝났다면 '매드맥스'는 평범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뛰어난 지점이 여기서 돌출됩니다.
이제 일흔 살이 된 감독은 이 다섯 명의 여자들을 그저 퓨리오사를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만 보면 그 다섯 명의 여자 중에 리더가 있습니다. 그녀는 만삭의 여성 스플렌디드입니다.
그녀는 끔찍하고도 가차없이 죽게 되는데... (자동차에 깔리는 것도 모자라 산채로 배가 갈려서...)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가 리더인지 확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 사실은 곧 그녀들은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했고, 퓨리오사는 그녀들의 조력자였을 뿐입니다.
퓨리오사와 이들 다섯 명의 여인들은 연대를 이룬 겁니다.
조지 밀러 감독이 나이를 괜히 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턱대고 달리고 싶어 만든 영화가 이제는 여느 영화에서는 병풍에 지나지 않았을 다섯 명의 여인들도 페미니스트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매드 맥스'에서 맥스는 '배트맨과 로빈'의 '로빈' 쯤 되는 역할입니다.
(배트맨은 두말할 나위 없이 퓨리오사고요)
맥스가 했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퓨리오사에게 시타델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참모역할에 지나지 않지만서도)
맥스의 조언을 퓨리오사가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혁명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자신이 도달하려던 '녹색 땅'이 사라짐은, 그것은 곧 돌아갈 엄마가 없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돌아가야할 스위트홈의 상실 속에혁명가가 되었습니다.
<매드맥스 : 퓨리 로드>의 마지막 장면이 이 모든 것을 대변해줍니다.
임모탄을 제거하고 시타델을 접수한 퓨리오사는 트럭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맥스는 수많은 군중속으로 사리지고...
떠나는 맥스를 그 흔한 인삿말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는 퓨리오사.
떠나는 맥스를 부감으로 바라본 카메라는 퓨리오사를 앙각으로 보여줍니다.
퓨리오사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급기야 퓨리오사가 우뚝 서 있는 유조차 밑으로 들어가며 암전.
이를 보는 관객은 퓨리오사에 발밑으로 밟히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럼에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게 퓨리오사는 관객 전부를 짖밟으며 영화를 끝장 내고 맙니다.
앞서 언급한 '와호장룡'의 장쯔이는 좌충우돌하며 철부지처럼 '자유'를 찾아가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녀가 완벽하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서 독특한 페미니스트였다면,
퓨리오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춘 끝판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1979년부터 시작한 '매드맥스 시리즈'는 퓨리오사를 잉태하기 위해 시작한 시리즈입니다.
어찌보면 우연히 그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유구한 세월의 점철된 악이 종내는 예수를 탄생시킨 것처럼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퓨리오사'와 함께 조지밀러 감독도 일흔이 되어서야 거듭난 영화 장인이 되었습니다.
조지밀러 감독은 퓨리오사를 통해 나이에 대한 차별도 깨부셨습니다.
이 또한 페미니즘이라 흐뭇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