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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l 31. 2019

올라가야만 살 수 있는 청년들의 분투기

-<엑시트>(2019)






여전히 현재의 청년들에게 취업은 어려운 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매달려 치르는 대학입시를 거쳐 졸업을 향해 힘든 길을 뚫고 나아가지만 그 모든 길을 지나고 난 이후에, 그들에게는 더 큰 벽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 한 발을 내딛기 위해 한쪽으로는 도서관에서 성적을 위해 애쓰고 한쪽에서는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사회적으로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청년들에게 취업의 문을 뚫기란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일과도 같다. 수없이 암벽에서 떨어지고 또다시 그곳을 오르며 자신이 떨어진 그 위치로 가기 위해 다시 암벽을 향한다.


어쩌면 취업은 그 암벽에서 수없이 떨어진 이후에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도 대학교 졸업시점이나 졸업한 직후에는 자신을 버텨 줄 끈이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조금의 지원을 통해서나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축적해 둔 비상금으로 떨어진 이후, 바닥에서 다시 암벽을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몇 번의 실패 끝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끈 마저 놓고 암벽에 올라야 할 상황이 온다. 그 상황에서는 그저 까마득한 암벽 앞에서 혼잣말로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칫 떨어지는 순간, 다시는 그 암벽을 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암벽 아래에는 까마득한 안개뿐이다. 


취업 준비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재난 영화 <엑시트>


영화 <엑시트>는 취업 준비생 용남(조정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졸업 후 5년 동안 계속 취업 준비생인 그를 향한 시선은 달갑지 않다. 동네에선 이상한 아저씨로 소문 나있고 가족들에게도 찬밥신세다. 그렇게 소외된 그가 받는 외부의 문자는 면접 불합격 문자다. 그런 상황에서 더욱더 나사가 빠진 것처럼 보이는 그는 대학교 때까지 암벽 등반 동아리 활동을 했다. 어머니 칠순 잔치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대학교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를 만난 용남은 칠순 잔치가 벌어지는 건물 주변의 화학테러로 가족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영화 초반 주변 가족들은 용남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다독인다. 어쩌면 그에게 ‘괜찮다’ 거나 ‘잘될 거’라는 말은 아무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미 수없이 벼랑에서 떨어진 그에겐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말들과  조언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용남은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알아서 할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주변은 여전히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측은한 시선과 답답한 시선은 취업 준비생 용남을 더욱 위축시키고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게 만든다. 자신의 아랫 세대에게 무시당하고, 자신의 윗 세대인 부모에게도 무시당하는 그는 영화 초반 꽤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컨벤션 홀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의주도 상황은 좋지만은 않다. 취업을 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업무는 만만치 않고 직장 내 남자 점장은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관계를 강요한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일은 요원하다.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려 애쓴다. 


유독 물질을 피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


영화 내내 시내 땅바닥 위로 안개 같은 유독 물질이 깔린다. 몇 분 만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유독 가스는 점점 공기를 타고 퍼지면서 높은 곳을 향하기 시작한다. 그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건, 용남과 의주다. 시작은 용남이 하지만 그 후 모든 세대를 신경 쓰며 최선을 다해 그들의 삶을 구하는 건 그 둘 모두 다.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 암벽을 오른다. 용남과 의주는 모두 암벽 등반 동아리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장비를 이용해 건물 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용남이 건물의 벽에서 더 오르기 위해 자신의 몸에 연결된 로프를 끊어버리고 혼잣말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는 혼잣말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한 번만." 


현재 절박하게 암벽을 올라야 하는 취업 준비생들처럼 용남은 그렇게 기도하며 위로 손을 뻗는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더욱 배가 된다. 


영화는 다양한 상황을 변주시키며, 용남과 의주가 건물이나 장애물에 오르는 모습을 꼼꼼히 보여준다. 그 모습이 어떤 경우에는 긴장감을 크게 불어넣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들의 악다구니에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현재의 모든 취업 준비생들이 하는 것처럼 계속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올라선다. 그건 그들의 적극적인 의지라기보다는 유독 물질이 바닥에서 점점 위로 퍼지면서 조성된 분위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과정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을 바보 같다고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기꺼이 보여주면서 자신을 희생시키며 주변을 챙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주인공 용남과 의주와 겹쳐지는 현실 청년들의 모습


어쩌면 용남과 의주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미 사회적인 분위기는 어렵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애쓰지만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갈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는 살아남지만 대다수는 그저 주저 않아버리고 만다. 그래서 청년들은 죽을힘을 다해 그 어려운 암벽을 오른다. 같은 위치의 친구나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같이 손을 잡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뛰기 시작한다. 



결국 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달려갈 때,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하고 지켜봐 준다. 그리고 작은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주변의 손길이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영화 <엑시트>는 재난 영화 장르를 한국적으로 변주한다. 이전에 보지 못한 안개와 같이 보이는 유독 물질을 활용해 천천히 주인공들을 압박해 나가고, 점점 다가오는 안개를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일종의 방 탈출 게임 같아 보이는 영화는 아주 영리하게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영화 초반와 곳곳에 한국식 유머를 섞어 넣어 영화가 너무 심각하지 않게 만들고 독극 물질 안개의 이동이나 폭발을 이용해 상황을 변주시켜 영화 속 위기를 점점 심화시킨다. 


영화의 구성이나 전개가 다소 투박해 보이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던 것에 비하면 여름휴가 시즌에 가족들과 볼만한 영화라는 점에서는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조정석과 윤아는 상황에 딱 맞는 연기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유머도 꽤 타율이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캐릭터가 없다. 악당이 등장하지 않지만, 상황적으로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주인공 남녀에게 동일한 역할을 부여한다. 재난을 탈출하는 능력이나 활약에 있어 두 주인공들의 활약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또한 결말에서도 울음을 유발하는 장면 없이 관객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구석이 거의 없는 여름용 재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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