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맨>(2020)
우리는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기술의 발달로 여러 가지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해졌고, 여러 가지 영역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그 자유로운 생활은 누구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그런 자유로움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약당하기도 한다. 갑자기 사고나 범죄를 당하거나, 가족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경우는 원하는 삶이 일정 부분 깨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 속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질 때 어느 순간 벗어나는 것에 소극적으로 변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믿고 가까운 사람이라 믿었던 가족은 어떤 경우에는 온전히 자신의 편이 되지만 반대로 가족과 잘 맞지 않거나, 강압적인 행위를 반복해서 경험할 때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렇게 가족에게 받는 제약이나 폭력적인 행위를 겪는 상황은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 집에 살면서 24시간의 일상을 같이 사는 사람이 보는 가족의 모습과 대외적으로 비치는 모습에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고, 이미 그런 선입견이 있는 외부 사람에게 가족으로부터 피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은 온전한 피해자이지만, 외부자의 시선에서는 그 피해 여부를 온전히 알릴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변해간다.
남편을 피해, 자신의 집을 탈출하는 세실리아
영화 <인비저블맨>은 주인공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가 자신의 집을 탈출하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가 탈출하면서 같이 사는 남편 애드리안(올리버 잭슨 코헨)을 경계하고 극도로 조심하는 장면을 통해 세실리아가 자신의 남편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엄청나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원처럼 그는 집안 곳곳의 알람을 끄고, 카메라까지 신경 쓰며 겨우겨우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는 세실리아가 왜 탈출하는지 사전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맨 처음 탈출 장면에서 남편이 뒤늦게 따라와 보이는 폭력적인 모습만을 통해 그가 폭력적인 성향일 거란 생각을 할 뿐이다. 그 이후 언니와 형부의 집에서 머무르는 세실리아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보인다. 심지어는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결국 세실리아는 가족들에게 남편의 폭력성과 억압적인 성향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애드리안의 죽음은 영화에서 꽤 중요한 사건이다. 세실리아가 두려워했던 존재가 이제는 더 없어지게 되면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마음을 놓게 되고, 세실리아 조차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세실리아는 남편에게 세세한 행동까지 간섭받고 통제받는 인형 같은 존재였지만 그 사실은 특별한 물증이 없이 그저 그 자신의 말로만 이야기될 뿐이다. 하지만 애드리안은 사회적으로 꽤 유능한 박사이자 사업가였고, 꽤 신뢰받던 인물이기 때문에 세실리아의 말만으로는 타인을 설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아예 그를 통제하던 인물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이런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의 죽음 이후, 세실리아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고 실제로 밤에 이불이 떨어지고, 누군가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때부터 세실리아는 다시 고립되기 시작한다. 그는 애드리안이 아직 죽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 하지만 가족조차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간다. 영화는 이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렇게 피해자가 바보가 되는 일이 많이 있다. 가해를 한 사람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을 경우, 피해자의 말 이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 보통은 피해자에게 비난이 먼저 쏟아진다. 주변에서 그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상황을 깊이 있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증거가 명확하지 않고, 말뿐일 경우에 피해자는 신뢰받지 못한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피해자가 혼자 고군분투하여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나갈 때야 비로소 그런 비난에서 벗어나지만, 이미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일 자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결국 모든 것은 피해자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특히나 여성의 입장인 세실리아는 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과 억압의 피해를 받는 인물로 그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피해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사회,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직면하는 세실리아
영화 <인비저블맨>의 세실리아는 아무도 본인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의 가족까지 그 피해가 확산되고 있을 때,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그 문제에 직면한 그의 모습은 그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카메라 공학 기술을 이용해 몸을 숨긴 남편 애드리안에게 다시 접근하여 처음 탈출했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은 아무 정보 없이 보면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부부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상황을 본 관객들은 엄청난 긴장감을 가지고 세실리아의 상황에 가슴을 졸인다.
영화 속 세실리아가 받은 피해는 끝내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아마도 영화 속 상황이 모두 끝난 이후에나 남편의 악행이 드러나겠지만 그 시점에 이미 세실리아는 주변의 온갖 비난을 모두 다 받아낸 이후다. 그가 다시 정상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다. 다르게 보면 그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그 상황을 이겨내고 결국 해내고 마는 그의 모습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영화 <인비저블맨>은 굉장히 훌륭한 공포영화다. 특히나 보이지 않는 남편 애드리안이 벌이는 행동들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로 특정한 곳을 가만히 비추며 아주 작은 사소한 효과들을 넣으면서 세실라아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공포스럽게 보여준다. 특히나 세실리아가 형부의 집 밖에 나갔을 때, 날씨가 추워 입김을 뱉으며 주변을 살피는데, 처음 주변을 비추는 카메라에는 아무도 잡히지 않는다. 다시 세실리아를 비추는 카메라는 그의 옆에 아주 작은 입김을 보여주며 공포감을 만들어낸다. 이후에 집안과 병원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과 추격 장면도 과거 투명인간 관련 영화에서 보다 디테일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