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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충돌 직전, 한 가족의 생존기

-<그린랜드>(2020)

by 레빗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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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평이한 하루하루가 모여 진행된다. 사고나 범죄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지내며 삶을 이어나간다. 그 일상의 중심에는 가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부 활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믿을 수 있고 안정적인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중요한 시간이다. 그만큼 내 옆에서 서로를 지지해주는 가족은 삶이라는 모습을 만들어주는 존재다. 낯선 사람을 만나 진정으로 믿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태어나면서 이미 만들어진 가족은 세상에 존재하게 된 순간부터 강한 신뢰로 묶인 사회집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족은 어려움이 닥칠 때면 서로 뭉쳐 서로를 보호해주고 각자의 목표를 향하는 길을 도와준다.


만약 커다란 재난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동요할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자신의 옆에 있는 가족이 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가족과 삶을 만들어가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방법에 다가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의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위하지만 다른 가족들도 소중하기에 최소한의 도덕적 판단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 행동에는 계급과 권력의 형태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는 가진 권력을 이용해 그 상황을 타계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 권력을 어떤 방법으로든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종이 한 장 정도일지 모르는 그 차이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재난은 의도하지 않게 자신 주변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이 정말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한다.


혜성 충돌 재난 상황을 그리는 영화 <그린랜드>


영화 <그린랜드>는 갑자기 나타난 혜성 무리들과 충돌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겪는 과정을 세세하게 담은 영화다. 클라크라는 이름의 혜성 파편들 중 일부가 지구로 향한다는 소식을 TV 뉴스로 보던 존(제라드 버틀러)과 아내 앨리슨(모레나 바카린), 아들 네이선(로저 데일 플로이드)은 자신들이 정부가 뽑은 피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고 선정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는 군부대 공항으로 향한다. 영화 초반 존의 가족은 무척 운이 좋아 보인다. 전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도 있는 재난 상황에서 존의 가족은 선정자를 알리는 QR코드 하나만으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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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족만 피난 대상자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고 공항으로 출발할 때,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 이웃들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다. QR코드를 가지지 못한 이웃들은 울고, 분노하며 존에게 감정을 토해내지만 이내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내 상황을 받아들인다. 존이 떠나는 모습을 멀지 감치 바라보며 어디로 피난 가면 될지 그것만이라도 전화로 알려달라는 부탁의 말과 함께 다시 집으로 향하는 그들은 바로 우리 주변 이웃의 모습이다. 그들은 아주 잠시 존을 원망하지만 다시 평정을 찾고 그들만의 살길을 고민한다.


존의 가족이 피난 대상자로 선정되어 QR코드를 받은 그 순간, 어떤 힘을 가진 상위 계급이 되어버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돈이나 학력, 직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만들어지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안전이라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여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나 힘이 계급을 만들어낸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탈출로에 접근할 수 있는 그 선정 코드를 받은 사람들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안전한 탈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것을 받지 못한 이들은 도덕적인 기준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그것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작은 디지털 코드가 만든 계급적 상황은 피난민들의 사이를 갈라버리고, 사회혼란은 더욱 커진다.


작은 QR코드로 전달된 권력,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분열


존의 가족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주변의 모습은 우리가 다른 재난 영화들에서 이미 많이 보아 왔던 장면이다. 고속도로는 꽉 막혀 앞으로 갈 수 없고, 도착한 군부대 공항에는 이미 피난 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선정되지 못한 사람들은 데려가 달라고 외치고, 선정된 사람들은 인파를 헤치고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점을 만든다. 만성 당뇨병 환자인 존의 아들 네이선은 주기적으로 인슐린이 필요한 환자다. 정신이 없어 차에 두고 온 인슐린을 다시 가지러 간 존은 아내와 아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아내 앨리슨과 아들 네이선은 존을 기다리던 와중에 만성질환 환자는 비행기에 탈 수 없으며 선정과정에서 오류로 잘못 선정된 것을 알게 되고 공항에서 다시 외부로 내보내 진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바로 존의 가족이 공항에 도착한 이후, 가족이 모두 공항 밖으로 나가게 되고 각자가 헤어지게 된 이후에 벌어진다. QR코드를 가진 특별한 계급에 속했던 그들은 네이선이 만성질환자인 것 때문에 그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고 한 순간에 평범한 다른 이들과 같이 살길을 개인적으로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전화 한 통으로 받은 작은 권력을 또다시 한 순간에 빼앗긴 그들은 상황이 의도하지 않게 흘러가 서로 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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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들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고 만날 수 없는 그 상황이 만들어진 이후 매우 긴박하게 진행된다. 우주에서 혜성이 떨어지는 재난 영화임에도 그 우주적 재난 상황 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존과 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무엇보다 재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되는지를 다양한 상황들로 보여주고 있다. 존과 가족들은 그들이 피난민 선정자라는 것을 인증하는 스티커 팔찌를 한 채로 돌아다니는데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도움을 주고자 접근한 낯선 이들은 결국 그 작은 스티커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는다. 아주 선한 사람처럼 보였던 인물도 그 팔찌를 보고는 아이까지 납치할 정도로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 악당으로 돌변한다.


생존을 위해 위험한 결정을 하는 난민이 된 사람들


어떤 사람이든 각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커다란 재난의 상황이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그저 일상을 하면서 가족들과 마지막을 함께 할 것이다. 영화 속 존의 가족처럼 남은 삶을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존과 앨리슨은 영화 중반에 논쟁을 통해서 재난을 피해 살아남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다고 결정한다. 그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들이 택한 선택이다. 이 결정 과정은 내전 중인 나라들에서 생존을 위해 떠난 난민들의 결정을 떠올리게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작은 삶의 기회라도 찾아보려 애쓰는 존의 가족처럼 여러 난민들도 그 작은 빛을 보고 나라 밖을 나선다. 그 난민들처럼 존의 가족들도 가는 동안의 위험을 무릅쓰고 삶의 길로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그들이 향하는 길에서 생존할 확률은 50대 50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떠난다.


영화 속 '그린랜드'는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벙커 중 한 곳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존의 가족이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못 들어갈까 걱정하는 아내의 말에 존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게 할 테니까 그린랜드로 가요."

그의 그런 외침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음과 그랜랜드에서의 삶 두 가지밖에 없다. 그래서 존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그런 강한 말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누구나 속하고 싶던 최상위 계급에서 난민이 된 존의 가족은 재난 속에서 그들만의 신뢰를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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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랜드>에는 특별히 거대한 스케일의 재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자체의 예산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내용 자체가 집중하는 부분은 재난이 바로 닥친다고 했을 때, 한 가족에게 벌어지는 디테일한 묘사다. 변해 가는 주변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도 가족을 찾아야 된다는 일념으로 서로를 찾아 달리고 구르는 장면은 최근에 등장한 어떤 재난 영화보다 더 속도감 있고 긴박감이 느껴진다.


또한 지금 전 지구적 재난을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많은 사람들과 난민들을 떠올리게 하고, 삶을 위해 지옥 같은 곳을 떠나 도피처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영화의 전개나 결말이 다소 맥 빠지고 많이 보아온 내용이라 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느끼는 동질감으로 인해 주인공 가족의 감정과 긴장감이 잘 전달된다. 결국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계급 갈등 심화나 가족 해체, 난민 같은 이슈가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어 보는 내내 흥미롭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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