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1)
개봉 전 시사회에서 먼저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아주 어린 시절에 가족과의 관계를 시작해 여러 또래 친구들을 만들어가며 다양한 소통을 이어나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성인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원래의 가족에서 독립하지만 다시 자신만의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을 키워나가기 위해 일을 하거나 집안 일을 돌본다. 그렇게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에 얽메어 보내는 시간은 많지만 그 시간은 덧없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가족에 신경쓰다 문득 돌아보면 어느 덧 나이가 들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자식들은 독립하여 나가고, 남은 배우자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배우자 마저 세상을 등지게 되면, 결국 혼자가 된다. 그렇게 남겨지는 건 나이든 모습이 되어버린 자신 뿐이다. 우리 주변에도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노년층이 많다. 그들은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간다. 어쩌면 노인이 된다는 것은 외로움의 무게를 좀 더 잘 참아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강하게 자신을 옭아매었던 가족들에게 해방되는 자유를 누림과 동시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 매일매일 찾아오는 하루의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다.
75세 노인 모모코의 이야기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이제 75세가 된 모모코(다나카 유코)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다. 현재의 모모코와 과거 젊은 시절의 모모코(아오이 유우)가 교차로 보여지며 그가 살아왔던 과거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 노인이 된 모모코의 모습이 펼쳐진다. 영화는 아주 담담하고 때론 유머러스하게 모모코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사실 상 영화의 대부분은 모모코가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해먹고, TV를 보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것 같은 사소한 일상들을 보여주면서 그가 떠올리는 기억들이 이어진다.
모모코의 남편(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몇 년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들과 딸은 모두 독립했다. 그나마 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교류가 없다. 그래서 영화 초반 모모코의 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이고 어딘가 아파 보인다. 영화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모모코의 또다른 자아 혹은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모코가 과거를 떠올릴 때나 혼잣말을 할 때 어김없이 그들이 등장하여 모모코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온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그런 것 처럼 혼자 있을 때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머리 속으로 자신만의 대화를 하는 것을 화면으로 옮긴 것 같다. 조금은 정신 없지만 꽤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모모코가 병원에서 어떤 그림을 봤을 때 혹은 어떤 특정 장소나 상황을 경험할 때, 과거의 일들이 플래쉬 백으로 이어진다. 가끔은 영화 속 현재 시점에 모모코의 과거 모습이 그대로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비춰지는 과거나 과거의 모습은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회한일 것이다. 무수한 과거의 추억과 기억들은 차례차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으로 떠올랐다 지나가곤 한다. 그것처럼 모모코도 아주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남편과 만났던 시간 그리고 어떤 때는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영화는 결국 나이 듦에 대한 영화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웬디>도 나이 듦에 대한 영화였는데, <웬디>는 나이 듦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였다. 반면,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나이가 든 노인의 일상과 마음을 담는데 보다 집중한다. 혼자가 되었다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 여러가지 연극적 장치들로 표현되고 있고 노인이 되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먹는 모습 등을 통해 그들이 겪는 일상이 보여진다. 모모코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보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등 남편과 사별한 이후 혼자된 일상에서 작은 자유를 누린다. 그것이 남편이 자신을 남겨둔 이유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영화 속 모모코는 그렇게 나이 듦과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모모코가 가진 기억과 회한을 아름답게 담다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은 모모코가 혼자 등산을 가는 장면일 것이다. 조용히 도시락을 싸서 물통을 들고 산으로 향한 그는 산에 올라가는 곳곳에서 과거의 흔적을 만난다. 꼬마의 모습을 한 모모코를 만나 대화를 하기도 하고, 20대의 모습을 한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젊은 모습을 한 남편을 만나 손을 잡고 걸으며 대화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모두 등산을 하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일텐데 그 모습이 꽤 감동적이다. 마치 나 자신의 추억과 대화하는 것처럼 과거와 만나는 모모코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 모든 추억과 기억들을 만나 하나씩 둘러본다.
그는 시골에서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도망쳐 도시로 왔기 때문에 부모와의 추억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결혼 후 50년 넘게 같이 생활한 남편과 가족에 대한 기억들은 마음 구석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지금 독립하고 관계가 소원해진 아들과 딸 이지만 그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아들과 딸을 보는 젊은 모모코는 늘 웃는 모습이다. 남편을 보는 모모코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웃는 모습이다. 그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대로 행복했지만 너무 가족만 보다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처음 도시로 와서 원했던 자유로운 신여성이 되지는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에게 작은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여러가지 작은 것들을 하려고 하는 모모코의 모습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영화의 맨 처음 장면은 우주가 만들어지고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여 진화하는 순간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진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그가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을 보며 공부하고 메모하는 내용들이다. 어쩌면 치매예방을 위해 해나간다고도 볼 수 있는 그 내용들은 이미 모모코의 머리 속에 자리하여 그의 기억이 되었다. 영화는 모모코가 치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모모코가 큰 문제없이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려준다. 영화의 말미 모모코와 손녀의 대화에 보여지는 모모코의 얼굴은 그가 살고 있는 그 삶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 아카타케 치사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아주 정적인 영화다. 등장인물이 거의 없고, 특별히 어떤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스토리 전개라고 할만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모모코의 과거와 현재의 일상을 담을 뿐이다. 한 노인의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담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 과거와 만나고 추억을 회한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모모코의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