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오브 투 러버스>(2021)
개봉 전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같이 그려가기 위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길을 택한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수많은 문제들이 두 사람 앞에 놓인다. 때론 의견 일치가 잘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논쟁이 이어진다. 그런 논쟁이 반복해서 일어나다 보면 목소리는 커지고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렇게 다가온 위기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가는지가 앞으로 남은 결혼생활의 모습을 결정한다.
실제로 이 시기는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식고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기 좋은 시기다. 자신만의 취미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다른 이성을 만나기도 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만의 시간 속에 몸을 담근다. 그런 시간 속에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는 단계까지 가게 되면 결혼 생활은 파탄 직전까지 가게 된다. 그 파탄의 길에 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또한 그들 앞에 과연 미래가 있는지를 수없이 생각한다. 각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매 순간 감정이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한다.
이혼 직전 부부의 이야기,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이혼 직전의 부부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남편 데이빗(클레인 크로포드)의 모습과 감정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데이빗이 누군가에게 총을 겨눈 장면이다. 가만히 총구가 가리키는 침대를 비추지만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침대 위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총구를 겨누고 있는 데이빗의 얼굴로 그 시선을 옮긴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만 같던 그는 한참을 총을 들고 서있다가 밖에 누군가의 소리에 몰래 서둘러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뛰어서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대사나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시작하는 강렬한 오프닝은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의 시선을 확 잡아끈다. 그가 머물던 집을 나와 뛰는 장면을 보여주고 여러 가지 형태의 시끄러운 소음을 같이 들려준다. 총소리나 무언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아주 우울하고 긴장되는 분위기의 음향효과가 영화가 따라가는 데이빗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다.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건 데이빗이 분노에 가득 찬 상태라는 것이다. 그가 억누르고 있는 그 분노는 영화 내내 지속된다.
사실 데이빗은 아내 니키(세피데 모아피)와 별거 중이다. 큰 딸과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들은 서로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별거를 선택했다. 데이빗이 집을 나와 근처의 아버지 댁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데이빗은 아내 니키와 다시 합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니키는 데릭(크리스 코이)이라는 인물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영화 맨 처음 데이빗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침대 위의 두 인물이 바로 니키와 데릭이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로맨틱한 장면보다는 데이빗의 감정에 따른 긴장감이 영화 내내 표현된다. 영화가 사용하는 음향 효과는 데이빗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가 가진 분노가 커질 때는 여러 가지 폭력적인 소리를 통해 그 감정을 전달하면서 영화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사실 영화의 내용 자체에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직접적으로 그 긴장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데, 이는 주인공 데이빗이 감정을 억누르는 상황 자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데이빗은 실제로 니키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니키나 아이들에게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 모든 감정을 혼자 억누르고 제어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데이빗은 좋은 아빠로 보인다. 세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의 대화에서도 그가 좋은 아빠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최대한 화를 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을 잘 설득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과 멀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또한 데이빗을 괴롭힌다. 그래서 영화 내내 그는 아이들을 더 챙기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혼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실제 그것을 결정하는 건 아내인 니키에게 있기 때문이다.
데이빗의 억눌린 분노를 표현하는 영화의 독특한 음향
사실 영화 내내 데이빗이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이 가진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는 총을 이용해 니키의 남자 친구인 데릭을 쏘려고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인형을 세우고 허공에 총을 발사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데이빗이 가진 분노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쏟아내어 지기보다는 허공에 무작위로 분출될 뿐이다. 그가 가진 폭력성을 잘 제어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데이빗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서 데이빗 이외에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면 큰 딸인 제스(에이버리 피주토) 일 것이다. 자신의 엄마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자신의 부모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사춘기 소녀인 제스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아빠와 엄마의 이혼에 반대한다. 아빠의 이야기에 잠시 밝은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의 감정은 데이빗과 같은 분노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이혼을 목격하고 있는 아이의 두려움일 것이다. 부모의 전쟁 사이에 그 전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제스의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 후반 데이빗과 니키, 그리고 데릭이 한 곳에 모이게 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모든 인물의 감정은 격해지고 그들이 가진 진심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순간에도 데이빗은 완전히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는 내내 데이빗의 분노를 계속 관객에게 느끼게 해 주지만 영화의 마지막까지 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이혼이라는 최악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분노를 표출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맨 마지막, 데이빗의 가족들이 다 모여서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은 사실 평범한 모습이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결혼이라는 고리가 마지막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
영호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꽤 독특한 영화다. 일반적인 서사와 표현방식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조금은 스타일리시하고 특이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다른 체험을 하게 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혼이라는 주제는 이미 다양한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그 이혼이라는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한 사람이 겪고 있는 감정의 파고다. 주인공 데이빗의 감정이 다양한 음향과 영상에 담겨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다르게 말하면 그 감정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 화면비가 4:3 비율로 촬영되어 답답한 데이빗의 감정이 더 극대화되어 담기기도 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로버트 메코이언 감독은 그렇게 잘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인디 영화 중심으로 세 편의 장편 영화 연출을 했으며, 201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단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연출한 <킬링 오브 투 러버스>를 연출하며 미국 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여러 가지 음향이나 영상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등, 새로운 표현 방식은 다음 그의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