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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Mar 18. 2022

달과 함께 추락한 영화

-<문폴>(2022)




우리는 많은 재난을 접한다. 교통사고 같은 인간의 실수나 기계의 오작동으로 일어나는 일들도 있지만 자연이 주는 여러 가지 재해들을 피할 수 없다. 태풍, 홍수, 가뭄, 지진 등 다양한 자연재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여러 가지 재해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다양한 자연재해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많이 대비되어있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 피해를 받고 있고, 다시 극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 지구 온난화까지 가속화되면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폭우나 가뭄이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도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재해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런 재해가 일어나면 인간들은 힘을 쓰기 어렵다. 재해를 피해 이동하는 방법밖에 없고, 그렇게 재해가 한 번 휩쓸고 간 터전은 복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돕고 어떤 사람들은 기부를 하기도 하지만 그중에도 나쁜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어쩌면 이런 재해들이 인간이 가진 광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혼란의 틈을 노린 일부는 다른 사람의 생명줄을 뺏거나 훔치면서 자신들의 삶만을 바라본다. 

달이 지구로 추락하는 재난을 다룬 영화 <문폴>


영화 <문폴>은 달이 지구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겪는 재해를 화면으로 옮긴 영화다. 주인공 브라이언(패트릭 윌슨)은 유능한 우주비행사다. 자신의 파트너 조(할리 베리)와 함께 십 년 전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괴물체를 만나게 되고, 신입 동료를 잃는다. 브라이언은 괴물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사 고위층에서는 믿지 않았고, 동료 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브라이언은 불명예 퇴직을 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의 그는 이혼한 상태이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지 못하다. 나사에서는 불명예스럽게 해직되었고 우주에 대한 특강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조는 여전히 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임무를 지시하고 있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멀어진 관계가 다시 동료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게 되는데 몰락한 영웅과 현재의 영웅이 재난 앞에 협력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영화 속 달은 지구 주변을 돌던 궤도를 벗어나 점점 지구 쪽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발견한 음모론자 KC 하우스먼(존 브래들리)은 우연히 브라이언과 만나 나사로 향하게 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브라이언과 KC 하우스먼은 세상에서 배척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이다. 자신의 말은 사람들에게 음모론으로 인식될 뿐이고, 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믿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데 브라이언은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의 관계도 좋지 못하다. KC브라이언의 주변 역시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의 아픈 어머니를 제외하면 그의 주변에는 의지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렇게 소외된, 버려진 영웅이라고 부를법한 인물들이 완전한 전문가 영역인 나사에 가서 그들의 지식으로 재난을 해결하는 모습은 한편으론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과거 여러 재난 영화들이 집중했던 건 바로 스케일 큰 재난 장면이다. 재난 자체가 이런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고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도 도시가 파괴되고 달의 중력 영향 때문에 벌어지는 재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재난 영화를 좀 더 긴장감 있게 만드는 건 그런 재난 장면 자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그러질 때 더욱 고조된다. <문폴>에서는 브라이언과 재혼한 아내 가족들의 관계, 그리고 KC하우스먼과 주류 나사 직원들 간의 갈등 관계가 보여지고, 이에 더해 조와 그의 전 남편과 아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러니까 여느 재난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큰 재난을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 형식을 이 영화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해 속에서 나쁜 마음을 드러낸 약탈자들까지 등장해 긴장감을 높이려고 한다.


과거 재난영화들의 특징을 그대로 다시 재활용하는 영화 


달이 지구로 떨어진다는 설정 자체는 신선하다. 새로운 재난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어디로 피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꽤 긴장감이 느껴진다. 또한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에 가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고, 지구의 가족들은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탈출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긴장감을 높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혼란한 틈 속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해 자신의 안위를 챙기려는 사람들도 등장시켜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구성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모든 조합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안착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영화 속 재난 장면들은 꽤 스케일이 크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는 과거 <인디펜던스 데이>나 <투모로우>, <2012> 같은 재난 영화에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독이고 이 세 영화들은 꽤 많은 흥행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문폴>에서 그가 연출한 재난 모습은 긴 시간 동안 관객들이 이미 많은 영화에서 여러 번  보아온 것들이다. 그래서 화면의 재난 상황에 집중해서 보게 되지만, 도시의 파괴나 여러 장면들이 이미 과거 재난 영화들에서 본 것들이라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는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은 크게 약해진다. 


또한 영화가 집중하는 가족의 탈주극도 <2012>에서 이미 수차례 본 적이 있고 그것을 다루는 방식 자체도 2020년에 개봉했던 <그린랜드>의 혜성 충돌 위기 상황에서 사회 시스템에서 버려진 가족의 이야기 보다도 대충 묘사되어 있다. <그린랜드>에서 겪는 가족의 이야기가 <문폴>에서 벌어지는 가족의 탈주극보다 훨씬 긴장감이 높고 공감이 간다. 그러니까 이번 <문폴>은 달의 추락이라는 아이디어 이외에는 이미 본 재난 이미지와 인물 구도를 가지고와 다른 방식으로 짜짓기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브라이언을 연기한 배우 패트릭 윌슨과 조를 연기한 배우 할리 베리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나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이야기의 아쉬운 구성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도 KC 하우스먼을 연기한 배우 존 브래들리의 연기는 눈에 들어온다. 모든 인물 중 가장 마이너 한 감성을 가진 그가 우주까지 나아가 그만의 농담을 보여주고 또 진지한 모습까지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관객이 감정 이입할만한 캐릭터가 되었다. 


영화 <문폴>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아쉽지만 달이 지구로 가까워지면서 지구에 벌어지는 재난들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약하게나마 재난 상황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다루고 있어 극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즐길만한 킬링타임용 영화로서의 기능은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재난 블럭버스터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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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폴>  

https://youtu.be/GmUkrpOgv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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