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2022)
그냥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정치는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일이다. 일단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조금씩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누가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많은 정치인들이 그 안에서 어떤 암투를 벌이는지에 대해 한 번 눈이 트이면 좀 더 디테일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정치는 먼 이야기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근대화가 되기 전, 조선시대 같은 과거의 사회에서도 정치는 계속 이어졌다. 왕이라는 군주가 나라의 대표가 되고 그 밑에 신하들이 여러 의견을 내면서 앞으로 나아갈 결정을 해 나아갔다. 여기에 왕의 가족들까지 그 정치에 참여하거나 이용되면서 왕의 가족들은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양한 왕가의 사람들 주변에는 여러 가지 수발을 드는 신하들이 있었다 요리를 하고, 건강을 챙기고, 잡일을 하는 이들은 궁궐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보고 듣는다. 그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 백성에 비해서는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히 궁궐에 들어간 맹인 침술사의 이야기
영화 <올빼미>는 어느 순간 궁궐에 들어갈 기회를 잡은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다. 경수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좋은 침술 능력으로 아픈 동생의 약값을 벌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는 어의가 되어 궁궐에 들어가면 동생의 약을 계속 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궁궐에 들어갈 기회를 엿본다. 그러다 궁궐의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띄어 궁궐에서 일하게 된다. 그 안에서 좋은 침술 덕에 왕가 사람들을 치료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김성철)와도 만나게 된다.
영화는 경수와 소현세자가 친해지는 계기를 보여준 이후,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적 긴장을 높인다. 사실 경수는 밝은 곳에선 거의 볼 수 없지만 어두운 밤에는 희미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다. 그는 어두운 밤 소현세자를 누군가 독살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다. 영화는 이렇게 그가 앞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특성을 잘 활용해 어의 이형익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 대면할 때 손에 땀을 쥐고 만든다.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인조(유해진)이다.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모습보다는 불안한 모습을 더 보인다. 그가 가진 불안감은 그의 몸을 조금씩 마비시키며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들조차 청나라에 포로로 보내야 했다는 불안함과 자신도 희생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그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인조는 언뜻 나쁜 결정을 하지는 않을 듯 보이지만 그의 진짜 결정과 진짜 모습은 영화 후반부에 완전히 드러난다.
짜임새 있게 쌓아가는 영화적 긴장감
영화 속에서 침술사 경수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를 제대로 목격한다. 그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의가 되려고 했던 경수는 왕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치적인 일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치적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소현세자를 보고 소현세자의 아들의 고통까지 목격한 그는 스스로 정치적인 변화를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경수라는 인물과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평민이 우연히 왕실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치적인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꽤 설득력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와 마지막은 너무 긍정적이고 편하게 결말을 맺고 있지만 주인공 경수가 서서히 암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스스로 주도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맹인이지만 밤에는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설정을 잘 활용해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인조 역할을 맡은 유해진은 굉장히 불안하고 유약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아주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정치적 암투에서 이기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얼굴과 두려워서 피하고 싶어지는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게 되는데, 그 연기가 어색하지 않고 무척 실감 나게 표현되었다. 맹인 경수의 연기도 무척 좋다. 보일 때와 안 보일 때를 잘 구분해서 연기하고 있으며 특히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보일 때, 남들 앞에서 안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무척 훌륭하다.
영화의 서사는 평민이 우연히 왕실에 들어가 정치적 상황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경수가 그 암투의 한복판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긴장감 있게 보인다.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훌륭하게 활용하며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그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결말이 아쉽지만 영화가 앞부분에 만들어놓은 좋은 이야기는 그 단점을 만회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의 좋은 완성도는 이번 영화가 첫 연출작인 안태진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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