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절대적인 착함이란 존재할까.
착한 건 무조건 좋은 거라는 인식을 받으며 살아왔다.
착하다는 말은 칭찬 같았고, 누군가 내게 그 말을 건네주면,
마치 내가 옳은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착함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약한 사람을 돕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것?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나는 그저 조용한 사람으로 살아왔고,
사람들은 그런 내게 ‘착하다’라는 인식표를 달아주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고,
나 스스로도 그 인식표를 더 반짝이게 하려 애썼던 것 같다.
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감정을 눌러두고, 내 욕심을 숨기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려 했다.
그런 노력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내게 짐이 되었다.
나를 소모하고, 나를 잃게 하는 짐.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애할 때는 특히 그랬다.
너무 기쁜 마음에 상대방에게 모든 걸 맞춰주었다.
내 시간을 줄이고, 내 행동 반경을 넓히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 애썼다.
그게 착함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떠날 사람은 떠났다.
그 모든 ‘맞춤’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뭘 못 해줬던 걸까.
내가 더 착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것만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 자신이 지쳐서 착함의 강도가 약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착함은 슬픔으로 대체되었다.
그저 침대위에 누워 울면서 그 감정을 해소할 뿐이었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남자 주인공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는 ‘착한 사람’이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그 착함이 아니지만,
만약 그의 착함이 없었다면 이야기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끝없이 견디고, 버티고, 기다려주는 사람.
마치 호구 같기도 한 그런 존재.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연애에서, 우정에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지나치게 내어주다 손해를 보는 사람들.
나 역시 그중 하나였고,
그때는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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