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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덕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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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송 Mar 30. 2021

울게 하지 마소서. 느끼게 하소서.

영화 <반도>

[기이한 에너지로 가득한 연상호란 세계]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애니메이션 감독, 드라마 작가, 웹툰 스토리 작가… 모두 연상호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는 연상호 감독. 그가 보여주는 세계는 기이한 에너지로 가득하고 매번 궁금증을 자아낸다. 최근에는 영화 외에도 웹툰 『지옥』과 드라마 <방법>으로 호평받기도 했고 한국 좀비 콘텐츠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이기도 하기에 <부산행> 속편 <반도>로 돌아오게 된 것은 큰 기대감을 품게 했다.     


<반도>는 그가 천상 작가임을 증명해내는 속편이다. <서울역> 좀비가 탄 KTX, 그곳에서의 총격 일절 없는 새로운 좀비 영화 <부산행>에 만든 데 이어 반도라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한 <반도>, 그리고 영화 개봉 이후인 올해 1월 1일 공개되었던 웹툰 『반도 프리퀄 631』을 보면 그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실사 영화 <부산행> 그리고 <반도>로 이야기를 넓혀나가며 ‘연니버스’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연니버스라는 훌륭한 IP를 스스로 지우다?]

<반도>는 전작 <부산행>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있지만 4년 후의 이야기로 시간대를 옮겨 둘을 직접 연결하지는 않는다. 물론 모든 속편이 전편과 반드시 세계관을 연결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굳이 좋은 IP를 숨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반도>가 전작과 연결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부산행>이 한국 좀비 콘텐츠의 기념비적인 영화일뿐만 아니라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 ‘연니버스’를 부정한 것은 더욱 아쉬운 지점이다. 초반 해외 방송에서 부산이 나올 때 <부산행> 장면들을 CCTV 장면으로 쓰고 전작에서 살아남았던 수안(김수안)이 주인공 정석(강동원)이 탄 배에 있는 것을 짧게 보여주는 방법 등으로 느슨하게나마 연결했다면 관객들이 빠르게 친밀도를 높였을 것이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면]

<부산행>과의 분리가 분명 감독이 고심해서 내린 선택임에도 굳이 두 영화를 연결하여 호감을 샀으면 했던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반도>는 ‘반도’를 활용한 아이디어는 좋았던 반면 디테일에서는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감정적인 설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 하루 만에 반도의 군대와 정부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 오천년 역사 내내 열강들이 호시탐탐 노렸던 이 반도를 세계가 그냥 방치해둔다는 점, 몇 푼 쥐어주면 손쉽게 반도를 드나들 수 있는데 4년간 해외로 좀비 바이러스가 전혀 퍼지지 않았다는 점 등 초반에 제시되는 설정은 설득력이 다소 부족했다. <부산행>과의 분리를 자처했는데 새로운 세계관은 자꾸 논리적으로 갸우뚱하게 만들어서 몰입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치밀하게 논리를 다시 짜는 것이 가장 좋긴 하나 전작과 연결해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호감도를 확보하여 관객들이 디테일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을 줄이도록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FX 드라마 <파고>는 원작인 영화 <파고>의 오프닝 “This is a true story.”라는 코엔 형제의 농담의 문구를 드라마 오프닝에도 그대로 사용한다. 오프닝에서 원작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고 시청자들이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원작을 떠올리게 해 이후 드라마가 원작과 꽤 다른 노선을 걸음에도 저항감이 들지 않고 빠르게 몰입하고 호감을 느끼게 했다.     


또한 <반도>의 대사가 가끔 너무 만화적이거나 문어체적이다. 특히 대사를 배우가 토씨 하나 고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조단역들에게서 어색한 문장이 많이 들린다. “연락을 취했다”는 등 실제로 뱉을 말은 아닌 듯한 대사들이 왕왕 등장한다. 일상 대화 중에 “상식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 시도는 해봤냐?”란 갑작스런 매형(김도윤)의 문어체 대사는 들리는 순간 ‘앞으로 중요한 대사가 되겠구나’를 직감하게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직관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세계관 설정과 문어체 대사에 대한 이질감들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관객들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팔짱을 낀 채 영화를 평가하는 자리에 남게 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걸맞게 대사도 거칠고 지극히 일상적으로 더 다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K-신파라는 것에 대하여]

인터뷰들을 보면 연상호 감독이 <염력> 이후 스펙타클, 블록버스터에 기대하는 규모감 등의 구현을 많이 고민한 듯하다. 큰 스크린이 있는 극장으로 관객들이 와야 할 이유를 마련해주는 것, 상업영화로서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에 대해 연상호 감독의 깊은 고민에는 수긍이 간다. 한국판 포스트 아포칼립스, 화려한 카체이싱 액션 등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며 해결하려고 한 점은 좋으나 디스토피아 액션 블록버스터에 K-신파라고 일컬어지는(혹은 조롱당하는) 감정을 더하다 보니 너무 과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우직할 정도로 액션 외길을 걸었던 것과 대비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서사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잘 할 수 있는 액션만을 끝까지 밀고 나간 점만으로도 호감을 많이 얻었다.      


감정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근거가 없거나 내적 논리에 맞지 않는 감정 유발은 관객들의 몰입을 해친다. 좀비물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감에도 도망가야 하고 제대로 애도할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석의 누나(장소연)와 조카(문우진), 사단장(권해효) 할아버지 등 <반도>의 등장인물이 죽음을 맞이할 때도 좀비들 때문에 급박하게 도망가야 한다면 관객들은 더 깊은 탄식을 하고 공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슬로우와 구슬픈 음악, 울음을 터뜨리는 동안에는 공격하지 않는 좀비들은 오히려 관객들이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대체 언제 주인공이 도망갈지 전전긍긍하게 한다. 급기야 그런 등장인물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관객들이 비호감을 표하는 지경에도 이를 수 있다. 영화 <괴물>에서 아버지(변희봉)가 첫째(송강호)의 탄피 계산 실수로 순식간에 죽게 되었음에도 제대로 슬퍼할 새 없이 신문지로 아버지 얼굴을 가려주기만 하고 도망갈 때 관객들은 깊은 슬픔을 느꼈다. 짧고 담백한 이 장면이 괜히 절절한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좀비물과 괴수물의 근원적인 슬픔을 <반도>는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다음 연니버스를 기대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반도>는 흥미로운 지점이 존재하는 영화였다. <반도>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던 4년 동안의 반도, 631 부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 준과 민정, 사단장의 관계와 좀비 바이러스의 근원인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오 회사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웹툰 『반도 프리퀄 631』로 어느 정도 궁금했던 지점을 풀어주었다. 반드시 영화일 필요가 없고 연상호 감독이 <방법>을 통해 드라마 작가로도 분한 적이 있으니 이 프리퀄은 좀더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드라마란 포맷으로도 나와도 좋을 듯하다. <부산행>에서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을 깊이 조명할 수 있을 테다. 연상호 감독의 재미있는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상업영화라는 이유로 타협하는 그 영리한 태도를 조금 접고 예술가의 독창적인 고집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상업적으로 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남두를 위한 영화를 만들던 과거와 달리 OTT 시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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