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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짜기 전쟁

친구란 선택이 아닌 배움

by movies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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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체험학습을 앞두고 교실은 들썩였다.


버스 좌석도, 점심 메뉴도 아닌, 오늘의 진짜 전쟁은 바로 **'짝짜기'**였다.

"선생님, 저랑 민서는 안 맞아요."

"저는 아무나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빛은 이미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지우를.

그 눈빛이 오고 가는 사이,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짝을 짠다는 건 늘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단짝이 되고 싶은 간절한 기회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한 번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동안 아이들의 관계를 관찰했다.

쉬는 시간의 웃음, 급식 줄의 대화, 사소한 장난 속의 온도까지.

누가 누구 옆에서 목소리가 커지는지, 누가 누구 앞에서 말수가 줄어드는지.

소외되는 아이가 없게, 모두가 '누군가의 선택'이 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늘 움직인다.

어제 다퉜던 친구와 오늘은 웃고, 어제 친하던 친구와 오늘은 거리를 둔다.

관계는 살아 있는 생물 같아서—아니, 생물보다 더 변덕스러워서, 내가 짜 놓은 짝꿍표는 매번 다시 수정됐다.


드디어 발표의 순간.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체험학습 짝은요…"

교실은 숨소리마저 사라졌다.

한 조가 발표될 때마다 누군가는 작게 환호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기대. 안도. 실망. 그리고 아주 잠깐의 눈치.

특히 성준이는 자기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연필을 꽉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 모든 감정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한참 후, 은채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수빈이랑 같이 돼서 좋아요. 근데 그 친구는 싫을 수도 있죠?"

잠시 멈췄다.

짝꿍이라는 건, 한 사람의 마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아이도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날 밤, 나는 다시 명단을 펼쳤다.

혹시 더 나은 조합은 없을까?

혹시 내가 놓친 미묘한 신호는 없었을까?

하지만 결국 다시 덮었다.

이제는 믿기로 했다.

함께 걸으며 부딪히고, 웃고, 힘들어보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결국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게 될 거라는 걸.

어차피 완벽한 짝이란 없으니까.


체험학습 당일.

버스 안은 이미 시끄러웠다.

새로 생긴 짝꿍끼리 머리를 맞대고 간식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 조심스럽게 말을 트는 아이들, 창밖 풍경보다 서로의 얼굴이 더 신기한 아이들.

성준이는 짝꿍인 태윤이에게 "너 새우깡 먹어?" 하고 물었고, 태윤이는 "응, 근데 양파링이 더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긴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아이들은 조금씩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여 갔다.

혼자였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말없이 걷던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여기 금관 진짜 멋있어요!"

"선생님, 여기서 사진 찍어주세요!"

누가 누구의 짝인지 중요하지 않게 된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느새 같은 좌석에 머리를 맞대고 잠든 둘을 보았다.

낯설었던 이름이 이제는 편한 호흡이 되어 있었다.

그 옆에서 은채와 수빈이는 서로의 폰을 들여다보며 킥킥거렸다.


교실로 돌아오면 또다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이번 '짝짜기 전쟁'은 분명 작은 변화를 남겼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께 걷는 법을 배운 하루.

그걸 아이들은 '체험학습'이라 부르고, 나는 '성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다음 주면 또 누군가 달려와 말할 것이다.


"선생님, 저 짝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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