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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드는 법은 교과서에 없다.

나도 손 들어봐야지

by moviesamm

"자, 누가 발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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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장난치던 아이들도,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연필에 진심이 된다.

책상 밑으로 들어간 손가락이 펜을 돌리고, 시선은 교과서 한 줄에 고정된 척하지만,

그건 '지금 나 절대 시키지 마세요'라는 무언의 신호다.

교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숨바꼭질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그 싸인을 모를 리가 없다.


스무 해를 교단에 섰어도, 아니 그래서 더, 저 눈치 보는 몸짓이 낯설지 않다. 열 살이 넘어도 여전히 아이들의 마음은 투명해서, 긴장하면 눈빛이 먼저 반짝거린다.

귀 뒤로 넘긴 머리카락이 다시 앞으로 흘러내리고, 입술을 깨무는 아이,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오늘은 제발 아니었으면."


질문을 던지는 순간, 공기가 잠시 정지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시간. 지구가 잠깐 자전을 멈춘 것 같은 그 순간. 나는 늘 그 정적을 재미있어한다. 어른들의 회의 시간과 똑같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제가 할게요'라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우리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열 살짜리처럼 책상 밑 연필에 집중한 척한다.


45도 각도의 결심


그때였다. 한 아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손은 조심스러웠고, 약간은 흔들렸다. 마치 '이거 맞나?' 싶어서 중간에 내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버텼다. 팔이 완전히 펴지지도 않은, 어정쩡한 45도 각도였지만 그건 분명한 의사였다.

그 순간의 용기를 알아챈 나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래, 민서야. 해볼래?"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처음엔 공기 중에 섞여 사라지는 듯했지만, 조금씩 선명해졌다. "저는... 생각하는데요..." 단어들이 연결되고, 문장이 만들어질 때마다 아이의 눈동자가 조금씩 빛났다.

등이 조금 펴졌고,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틀린 말도 있었다.

"광합성은 뿌리에서..." 중간에 멈칫했고, 몇몇 아이들이 웅성거리기도 했다. "아니야, 잎에서 하는 거야!"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건 '완벽한 발표'가 아니라 '처음의 용기'였으니까.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선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떨림.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답은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손을 든 그 마음, 스스로의 두려움을 넘어선 그 한순간이었다.

광합성이 뿌리에서 일어나든 잎에서 일어나든, 그건 교과서가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손을 드는 법은, 교과서에 없다.


문득, 작년의 민서가 떠올랐다.

일 년 내내 손을 들지 않던 아이. 발표 시간마다 고개를 숙이고, 지우개를 만지작거리던 아이. 그 아이가 오늘, 처음으로 손을 들었다.

일 년이 걸렸다. 365일.

아이의 발표가 끝나자, 교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조용히 박수를 쳤다. 천천히, 또박또박. 아이들은 따라했다. 처음엔 어색하게, 그러다 점점 커지는 박수 소리. 작은 박수 소리가 교실을 천천히 채웠다.

그 소리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소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를 인정하는 박수였다.

박수를 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묘한 표정들이 스쳐간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민서도 했는데 나도 해볼까?'

어떤 아이는 안도하고, 어떤 아이는 자극받는다. 한 사람의 용기가 교실 전체를 흔드는 순간이다.


용기는 전염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이들은 매일 배우고 있지만, 결국 배움의 대상은 나였다. 그들의 용기에서 나는 배운다. 두려움보다 마음이 먼저일 때, 삶이 얼마나 단단해지는지를.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을.

사실 나도 안다. 어른들의 세계는 더 가혹하다는 걸.

아이들은 틀려도 박수를 받지만, 어른들은 틀리면 평가받는다. 회의실에서 손을 들었다가 틀린 의견을 말하면, 그건 '용기'가 아니라 '무능'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손을 들지 않게 되었다. 확실할 때만, 완벽할 때만, 아니면 아예 입을 다문다.

가끔은, 아이들의 발표 시간에 나 자신이 투영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손을 들기 어렵고, 틀릴까 봐 망설이는 내가 그 안에 있다. 학부모 회의에서도, 교사 회의에서도, 심지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내 생각이 맞나?'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떨림이 낯설지 않다. 나도 여전히 떨고 있으니까.


민서가 발표를 끝낸 후 부끄러운 듯, 뿌듯한 듯. 얼굴은 빨개졌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오늘 뭔가를 '이겼구나.'

정답을 맞춘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긴 거다.

나는 오늘도 아니 척하며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에선 박수를 쳤다.

무한히, 진심으로.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손을 들어봐야겠다고. 틀릴 수도 있지만, 민서처럼. 떨리지만, 민서처럼.

그 아이의 작은 용기는 오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아이가 손을 들 테고, 또 다른 용기가 공기 중을 진동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전염된다.

한 사람의 떨림이 다른 사람의 용기가 되는 것. 그게 바로 교실이 가진 마법이다.


어쩌면 인생은 거대한 발표 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손을 들어야 할 순간 앞에 서 있다.

사랑 고백도, 이직도, 새로운 도전도, 모두 발표 시간 같은 것.

틀릴 수도 있고, 떨릴 수도 있지만, 손을 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민서가 내게 가르쳐준 건 그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손을 드는 것 자체가 이미 정답이라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작은 용기는,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는 것.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는 소리. 민서는 친구들과 웃으며 복도로 사라진다. 오늘의 민서는 어제의 민서와 달라 보인다.조금 더 당당하고, 조금 더 밝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나도 내일은 손을 들어봐야지."

그리고 웃는다.

인생은, 결국 발표 시간의 연속이니까.

용기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손을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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