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영혼은 언제까지고 그 곳에, 영화 <바빌론>과 지극히 미국적인 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황을 가능하(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법이 영화다. 마법에 빠진 영혼은 그 환상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죽었다가도 살고 늙었어도 젊음을 되찾으며 시공을 넘나들고 가난뱅이도 부자로 만들어주는 세상, 바로 그것이 영화니까.
그 환상에 내내 젖어 있으려 영화 촬영 중에도 술을 마시고, 쉬는 시간에도 술을 마시며, 촬영 후 파티에서도 술을 ‘퍼’마신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 <바빌론> 이야기다.
1920년대 헐리우드는 바야흐로 무성영화 전성시대다. 무성영화는 마치 동화 같다. 그림이 움직이는 동화. 명암의 구분만 가능한 모노크롬의 화면 사이에 들어간 자막에 따라 관객은 울고 웃었다. 참으로 문학적이지 않은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나도 ‘자막작업자’라는 직업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성영화는 절대로 동화가 될 수 없다. 찬란하게 빛나는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그 과정은 차라리 모른 편이 나을 정도로 부조리하고 폭력적이며 인권 따위는 소리개에게나 던져버린,
거칠기 짝이 없는 지옥도였기 때문에. 그러므로 당시 영화판을 맴돌던 자들이 너나없이 미친 듯 술을 마신 건 당연한 일이었겠다.‘바빌론’은 어떤 도시인가?
감독은 왜 그 시절의 헐리우드를 바빌론이라 표현한 걸까? 요한계시록 18장 2절에 의하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빌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더러운 영혼이 모이는 곳, 가증한 새들이 다양하게 모이는 곳이 되었다.
데미언 셔젤 감독은 <바빌론>을 전작 <위플래시>나 <라라랜드>보다 먼저 구상하고 있었으며 그만큼 오래 준비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영화판이 천지개벽한 1926년에서 1932년 사이, 나아가 1950년, 아니 현재까지의 영화 역사를 그리고 있는 <바빌론>을 보고 나면 요한계시록의 구절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영화가 건네는 판타지를 여전히 믿고 꿈 꾸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매우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과연 영화 도시 헐리우드의 더럽고 추한 흑 역사를 고발하려 이 작품을 만든 걸까? 절 대 로 그 렇 지 않 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바빌론>은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영화이자 데미언 셔젤이 한 땀 한 땀 눌러 쓴, 수신 란에 ‘영화’라 기재된 절절한 러브레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자 ‘엘리노어’의 대사를 빌리자면 중요한 건 영화 자체니까. 너의 아름다운 면모만을 좋아한다면 그건 ‘찐’사랑이 아니니까. 너라는 존재가 어떻게 변하든 너를 계속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라고.
어린 시절 내 부모님은 밤늦은 시간 TV 시청을 금지했다. 자는 척하다 살짝 열어둔 문틈으로 주말 밤이면 방영해주던 영화를 몰래 훔쳐보고는 했다. 아빠 친구가 하던 시골의 동시상영관 공짜출입이 가능한 뒷문을 알고 있던 나는 틈만 나면 그곳에 풀방구리 드나들 듯 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이런 경고는 무의미했으며 온갖 종류의 영화를 보며 자랐다. 영화는 이미 그때부터 내 영혼을 잠식했다. 실제가 아닌데 진짜 같은 세상, 진짜 같지만 실은 내 것이 아닌 것들, 슬픔에 빠지게 하고 절망으로 떨어뜨리며 황홀하게 만들던 그 시간에 나는 빚이 있다. 나는 매니였고, 넬리였으며, 잭이었다.
더럽고 불편하고 잔혹하고 고통스럽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바빌론>은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라라랜드>를 떠올린 건 우연일 수 없다.
꿈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던 경험은 결코 그들만의 것은 아니기에. 달콤한 맛을 먼저 보고 매운 맛을 보아도 좋고, 매운 맛을 먼저 경험하고 단 걸 맛보아도 좋다. 어느 쪽이 되었건 <바빌론>과 <라라랜드>는 영화적 쌍생아임에 분명하다. 같은 동전의 앞과 뒤, 무대 바깥과 무대 안처럼.
감독이 오프닝 시퀀스에 20분이 넘는 광란의 파티 장면을 넣은 건 의도된 연출이다. 그 20분을 오롯하게 즐길 수 있는 자만이 영화 <바빌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첫 20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화질이 좋고 스크린이 큰 영화관에서 관람할 것을 추천하다. 게다가 이전부터 함께 작업해온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영화와 음악이 아니었다면 술은 덜 향기롭고 삶은 더 삭막했을 거라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며 술 생각이 간절했다. 이를테면 ‘버번 위스키’ 같은 너무도 미국적이자 독한 종류로. 버번은 실제로도 반드시 미국에서 제작 되어야 하며, 최소 51% 이상의 옥수수를 사용해야 하고, 반드시 불에 태운 아메리칸 오크만을 이용해 숙성시켜야 한다.
버번은 옥수수라는 곡물의 단맛과 오크통으로 인한 바닐라 향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강하게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버번 특유의 강렬한 아세톤 향이 발생한다.
버번의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 버번의 진미인 카라멜, 바닐라 등의 아로마가 약해지면서 톡 쏘는 아세톤 향만 남아 풍미가 매우 거칠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고도수일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게 된다. 물론 더 빨리 취하겠지만 말이다. 특히 버번은 시가와 함께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아이템으로 콤비를 이룬 역사가 있다.
내게는 버번이 영화 <바빌론>을 표현하는 술처럼 느껴졌다. 도수는 높지만 향기롭고 달콤하며 시가 연기와 기막히게 어울리는 버번이야말로 무성영화 전성시대를 풍미한 헐리우드 그 자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