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연두 이모
연두색의 작고 귀여운 도마뱀이 나에게 스르륵 다가왔다. 발리 신혼여행에서 도마뱀을 볼 때마다 소리 지르고, '오빠 도와줘! 도마뱀 또 나왔어!' 오빠를 얼마나 찾았던지. 하지만 그 연두색 도마뱀은 달랐다. 그 싱그러운 연둣빛 몸통과 아장아장 내게로 다가오는 움직임이 귀여웠다. 이번엔 소리 지르지 않고 낮은 소리의 한 마디가 나왔다. '어! 도마뱀이다!'
꿈에서 깨자마자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태몽이구나"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는 내게 신기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고, 며칠 뒤 언니에게서 올해 들었던 소식 중 가장 행복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나뿐인 언니의 태몽을 내가 꾸어주었다.
날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해가 너무 쨍쨍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문턱,
9월의 어느 날 연두가 태어났다.
살면서 수많은 '역할'을 우리는 만난다. 내가 선택해서 혹은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맡을 수밖에 없는 그 역할들. 태어남과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하늘이 준 역할이었던 김씨네 둘째 딸, 우리 언니의 하나뿐인 동생. 그리고 오롯이 내가 선택했던 정훈씨의 아내역할까지. 여전히 내가 맡고 있고 더 열심히 해야 하며 잘 해내고 싶은 나의 역할들.
언젠가 이 역할을 맡게 될 거라고 사실은 기다렸다.
내가 선택한 역할은 나의 책임이 크게 따른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역할을 책임보다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시기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게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이 역할이 찾아왔다.
나는 최연두 이모
내 주먹보다도 작은, 아니 훨씬 작은 연두의 발을 만지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충만하다,, 충분하구나"
연두를 통해서 어쩌면 연두 때문에 나는 이전의 삶에서 몰랐던 것들을 만날 것이다. 그게 기대로 느껴진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을 다해 연두를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나는 최연두 이모 e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