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페라 대로에 가로수가 사라진 이유
파리를 상징하는 가장 낭만적인 풍경을 꼽으라면 대로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가로수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페라 극장까지 시원하게 뻗은 아브뉴 드 로페라(Avenue de l'Opéra) 에 들어서면, 우리는 무언가 낯선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거대하고 웅장한 오페라 가르니에의 정면을 온전히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 그 흔한 나무 그늘조차 허락되지 않은 압도적인 풍경. 이 탁 트인 시야 뒤에는 사실 한 황제의 생명을 위협했던 참혹한 사건과 그로 인한 지독한 트라우마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야기는 1858년 1월의 어느 추운 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나폴레옹 3세 황제 부부가 구(舊) 오페라 극장으로 향하던 중, 이탈리아 혁명가 오르시니가 던진 세 발의 폭탄이 터졌습니다. 이른바 오르시니 사건(L'attentat d'Orsini) 입니다. 마차는 반파되었고 1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였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황제에게 그날의 폭발음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공포로 남았습니다. 암살자는 보이지 않는 곳, 바로 '그늘'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건 직후, 황제는 파리 재개발의 수장인 오스만 남작에게 서슬 퍼런 명령을 내립니다. 새로 지을 오페라 가르니에까지의 모든 동선은 완벽하게 시야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황제는 '안전'을 원했고, 건축가는 자신의 작품을 방해물 없이 '과시'하길 원했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누려야 할 시원한 나무 그늘은 이들의 전략적 합의 아래 조용히 삭제되었습니다. "누구도 숨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명제 아래, 나무가 들어설 자리는 권력의 시야로 채워졌습니다.
결국 이 오페라 대로는 파리에서 유일하게 원근법적 전망(Perspective)이 방해받지 않는 거리가 되었습니다. 경찰은 거리 끝에서 끝까지 암살자의 움직임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게 되었고,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판옵티콘(Panopticon)으로 변모했습니다. 우리가 감탄하는 이 탁 트인 시야는 사실, 독재자의 공포가 빚어낸 철저한 계산의 산물입니다.
현지인의 시선으로 이 거리를 걸을 때면, 오스만화(Haussmannisation)의 본질이 미학적 성취 이전에 철저한 '진압과 통제'에 있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나폴레옹 3세가 고집한 직선의 대로는 사실 시민의 편의를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폭동 시 대포를 쏘기 용이하게 하고, 기동대의 시야를 방해하는 가로수를 제거하여 통치에 최적화된 구조를 구축한 것이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암살을 피하기 위해 비워낸 그 삭막한 공간이, 150년이 흐른 지금은 파리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전망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숨을 수 없도록 설계된 광장 같은 거리에서, 우리는 이제 자유롭게 낭만을 논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권력의 공포가 남긴 흉터가 파리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으로 박제된 셈입니다. 낭만적인 풍경 뒤에 숨겨진 차가운 역사의 층위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공간을 관찰하는 또 다른 방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