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9세기 파리의 대로가 낳은 신 인류

‘백화점’과 쇼핑 권력의 탄생

by M plus Paris


지난 포스팅에서 다뤘던 오스만 남작의 직선 대로와 넓은 인도는 단순히 군사적 기동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거대한 도시 공학적 변화는 파리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그들의 시선을 '유리창 너머의 욕망'으로 유도했습니다.


오늘은 오스만이 닦아놓은 광대로 위에서 어떻게 현대 소비주의의 성전인 백화점(Grand Magasin)이 탄생했는지, 그 1 편으로 BHV와 봉 마르셰의 비화와 현재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Source : Collection Paris 1900, Alain-Marc Delas


I. ‘윈도쇼핑’의 탄생: 대로가 만든 거대한 전시장


오스만 이전의 파리 상점들은 좁고 어두운 골목에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30m 폭의 대로와 가스등, 그리고 넓은 인도가 등장하자 상점들은 1층 외벽을 거대한 통유리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용어가 바로 레슈 비트린(Lèche-vitrine), 즉 ‘쇼윈도를 핥다’는 뜻의 쇼윈도 쇼핑(Window shopping)입니다. 대로를 걷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유희가 되었고, 시민들은 이제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경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오스만이 만든 하드웨어가 ‘소비’라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며 현대적 의미의 ‘보행자’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II. BHV: 황후를 구한 보상금에서 ‘전통의 굴욕’까지


오스만화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을 채우려는 파리지앵들의 ‘실용적 욕망’을 가장 먼저 파고든 곳은 1856년 탄생한 BHV(Bazar de l'Hôtel de Ville)였습니다.


나폴레옹 바자(Napoléon Bazar): 설립자 자비에 뤼엘(Xavier Ruel)은 파리 시청 앞 길거리 상인으로 시작했습니다. 전해지는 비화에 따르면, 그는 상점 앞에서 말이 놀라 폭주하던 에우제니 황후(나폴레옹 3세의 부인)를 구해냈고, 그 보상금으로 받은 거액을 투자해 지금의 자리에 매장을 확장했습니다. 초기 이름이 ‘나폴레옹 바자’였던 이유입니다.


DIY의 성지: BHV는 철물점(Quincaillerie) 분야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오스만식 아파트로 이사 온 중산층들은 이곳에서 못과 망치, 가구 부속을 사며 자신들의 주거 공간을 가꾸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BHV 지하의 철물 코너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이유 역시 이 역사적 뿌리에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와 악수(惡手): 그러나 오늘날의 BHV는 아마존 등 이커머스의 공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2023년 말, 갤러리 라파예트 그룹이 BHV를 SGP 그룹에 매각하며 거대 자본의 우산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자구책으로 2025년, 유럽 백화점 최초로 중국 패스트 패션 브랜드 쉬인(Shein) 을 유치했으나, 이는 환경과 노동 윤리를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의 거센 반발과 반달리즘(Vandalism)을 불러왔습니다. 전통의 품격을 잃었다는 여론 속에 기존 명품 브랜드들마저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그야말로 ‘영구적 위기’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Source : Archives Roger-Viollet.
Source : Stéphane Ouzounoff / Hans Lucas / Hans Lucas via AFP


III. 봉 마르셰(Le Bon Marché): 상업의 카테드랄을 설계하다


BHV가 실용적인 도구를 제공했다면, 1852년 아리스티드 부시코(Aristide Boucicaut)가 세운 봉 마르셰는 현대 백화점의 모든 경제적 공식을 정립하며 ‘욕망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쇼핑의 상식들이 사실은 19세기 중반 이곳에서 시작된 거대한 혁명이었습니다.


정찰제와 자유 출입: 1850년대 이전의 상점은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이 당연했고, 가게에 발을 들이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사야만 하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봉 마르셰는 물건마다 가격표를 붙인 정찰제를 도입하고, 사지 않아도 구경만 할 수 있는 ‘자유 출입(Entrée libre)’을 선포했습니다. "그냥 구경만 해도 된다"는 이 선언은 쇼핑을 ‘부담스러운 의무’에서 ‘즐거운 놀이’로 바꾼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교환 및 환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드립니다”라는 문구는 150여 년 전 고객들에게 큰 충격과 신뢰를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오늘날엔 당연한 이 권리가 당시엔 폭발적인 매출 증대를 일으킨 혁신적인 마케팅이었습니다.


여성을 위한 공간: 당시 여성들에게 백화점은 보호자 없이도 합법적으로 외출하여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공적 공간이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이를 두고 “현대 상업의 카테드랄(성당)”이라 불렀습니다.


LVMH의 럭셔리 병기: 베르나르 아르노에 의해 인수된 이후, 봉 마르셰는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인 LVMH의 핵심 포트폴리오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선 ‘예술적 큐레이션 공간’으로 재탄생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식품관(La Grande Épicerie)과 예술 전시를 결합하며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독보적인 프리미엄 전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파리지앵의 Insight: 쇼핑, 도시의 소속감을 구매하다


오스만의 넓은 대로는 파리지앵들이 자신을 뽐내는 거대한 '무대'였습니다. 백화점은 이 화려한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세련된 의복과 소품을 파는 전진기지였죠. 결국 백화점은 단순히 상점이 아니라, "나도 이제 멋진 파리의 일원이다"라는 것을 인증받는 일종의 '입학식 장소'였던 셈입니다.


BHV가 새로운 아파트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구를 책임졌다면, 봉 마르셰는 화려한 소비문화를 통해 부르주아의 자존심을 완성했습니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파리의 백화점을 찾는 이유는, 그곳이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나폴레옹 3세 시대의 풍요와 질서가 박제된 역사적 공간이자, 현대 자본주의의 원형을 목격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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