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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Hee Dec 31. 2023

(지극히 주관적인) 2023 영화 결산

마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올해 본 영화가 단편 포함 총 145편이다.

(내가 올해 맨 처음 본 영화가 "퍼펙트 센스"라는데 이 영화가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올해 드디어 코로나 실내 마스크 해제로 영화관 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주춤했던 영화사업도 조금이나마 활기를 찾았던 것 같은데, 사실 앞으로 얼마나 회복될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꾸준히 보고는 있지만, 어렸을 때 봤던 만큼의 감동도 느끼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아무래도 이제 웬만한 소재, 기법은 다 다루어졌다 보니 신선함이 점점 사라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거 같다. (그리고 연말인데 이렇게나 볼 영화들이 없다는 게 좀 씁쓸하다... 지금도 상영관을 지배하는 게 "노량"과 "서울의 봄" 뿐이라니...)


올해 본 영화들 중 짤막하게나마 이야기하고 싶은 몇 영화들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바빌론 (Babylon, 2022)

출처: 네이버 무비

내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지만, 영화를 어느 순간부터 순수하게 즐기는 취미가 아닌 뭔가 "해야 할 일"처럼 강박적으로 보고 있던 내게 다시 영화를 순순하게 즐기자는 마음을 다시 일깨워준 영화. 한 마디로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영화.


개인적으로 이 감독(데이미언 셔젤)의 "라라랜드"나 "위플래시"보다 더 감명 깊게 본 영화였다. 요즘같이 숏츠나 릴스같이 짧은 영상에 각광받는 시대에 걸맞지 않게 장장 3시간이나 되는 영화지만... 우려보다 지루하지 않았고 내가 순수하게 즐길 인생의 재미(?)를 잃을 뻔한 시기에 다시 그 즐거움을 찾게 해 준 고마운 영화로나 할까.


(문득 며칠 전에 넷플에 올라왔길래 본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떠올랐다. 두 영화 모두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다룬 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개봉 당시 평도 별로였고 흥행을 못해서 영화관에서 굳이 보지 않았던 작품인데, 막상 보니 좀 웃기더라. 나는 "거미집"도 나름 재밌게 봤다.)


"애프터썬" (Aftersun, 2023)

"더 웨일" (The Whale, 2023)

"파벨만스" (The Fabelmans, 2023)

애프터썬 (출처: 네이버 영화)
더 웨일 (출처: 네이버 영화)
파벨만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들은 다 비슷한 시기에 관람했다 (3-4월). "애프터썬"과 "더 웨일"은 내가 요즘 믿고 보는 A24의 작품들이고 (하지만 이 두 영화는 딱히 대중적인 작품들은 아니고... 특히 "더 웨일"은 좀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선뜻 남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영화들을 다 보고 뜬금없이 든 생각은, 영화의 주제와는 별론으로, 서양 영화들은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개인"에 대해 굉장히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 세 영화에 나오는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기꺼이 떠날 정도로 개인이 추구하는 방식의 삶, 혹은 욕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러한 행동이 전혀 새롭게 다뤄지는 인간의 행동이 아니지만, 뭐랄까... 이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고 나니 이들에게서 아시아 부모들의 특징인 "희생"적인 면모가 "덜" 보인다는 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과연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물론 이게 당연한(?) 사회적 약속이기는 하지만), 대체 나를 이렇게까지 희생하게 만드는 가족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나"는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 건가, 등등.


(최근에 본 "시티 아일랜드"도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남들에게는 밝힐 수 있어도 서로에게만큼은 절. 대. 밝히지 못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비밀들로 인해 발생하는 해프닝을 다룬 영화다. 위 영화들과 다르게 코미디인데, 이 영화도 재밌게 봤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니 문득 아직도 보지 않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족에 대해 다루었던 영화들을 보고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은 참 좋은데 좀 지루할 것 같아 아직 선뜻 보지 못했지만... 2024년에 도전?


지구 최후의 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2019)

출처: 네이버 영화

탕웨이를 좋아하고 평이 좋아 이 영화를 봤으나, 솔직히 노잼이었다... (가끔 이렇게 평점 높은 "예술 영화"는 진짜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있다...) 나는 주로 자기 전 침대에서 영화를 보는데, 이 영화는 진짜 며칠에 걸려서 겨우 끝냈다. 가뜩이나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내용인데 그 경계가 분명하지도 않을뿐더러 컴컴한 밤에 보고 있자니 이건 뭐 내가 꿈을 꾸는 건지, 이 주인공이 꿈을 꾸는 건지, 매번 잠이 들었고... 결국 비몽사몽 한 상태로 이 영화를 다 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불친절한 영화는 취향이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정말 조연조차 아닌, 지나가듯 나오는 어떤 할머니의 대사가 뇌리에 딱! 꽂혀서이다.

산사태가 뭐가 무서워? 기억 속에 사는 게 무서운 거지.


이 대사를 딱 듣는데, '아, 이거 진짜 무서운 말이다' 싶었던 거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냥 "추억" 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상황,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순간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너무 슬픈 일 아닌가? 보통 추억하고자 하는 기억은 내가 애틋하게 여기는 것들이기에. 나의 소중한 것이 "기억"속에만 남겨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게 인간관계든, 무엇이든).


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1959)

출처: 네이버 영화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 마침 이때 트뤼포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앞부분에 나온 내용이 이 영화에 다루어져서 자전적 영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에 찾아보니 안 그래도 이 "자전적" 요소가 이 영화를 대표하는 설명인 듯하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는 내가 그렇게 선호하는 장르는 아닌 데다가 (그래서, 아무리 거장들이라지만 개인적으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남자의 일생에 대해 그린 영화들이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같은 영화들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내가 정말 선호하지 않는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잔잔하게 몰입해서 봤다. 요란한 기교 없이 이렇게 깔끔하게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에서 뭔가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좀 깨준 영화였다고나 할까.


트뤼포 책은 저 첫 부분까지만 읽고 못 읽었는데 (무려 천 페이지 분량이라...) 언젠가는 다시 꼭 읽어야지.


라이트 하우스 (The Lighthouse, 2019)

출처: 다음영화

친구가 예전에 추천해 줬었는데, 국내 플랫폼에는 없어서 보지 못했던 영화. 일본에 갔더니 넷플릭스에 있는 게 아닌지?! (이게 지역마다 콘텐츠가 다른 걸로 알고 있다.)


아, 정말 불.쾌.함 그 자체인 영화인데, 좁디좁은 공간에서 등대(=권력)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이 두 배우의 호흡과 열연이 볼만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영화 찍는데 배우들 엄청 고생했다는 거 같다. 로버트 패틴스도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세트장 밖에서도 엄청나게 노력한 것 같고... (아니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뜬 배우가 이렇게 연기파가 될 줄은...)


펄 (Pearl, 2022)

출처: 다음영화

미아 고스라는 배우의 발견... 소름 끼치는 열연... (마지막에서의 그 독백과 미소는 정말...)


처음 보는 배우인 줄 알았더니만 알고 보니 그녀가 나온 영화들을 이미 몇 편 봤던데 (서스페리아, 님포매니악 볼륨 2) 이번에야 각인이 제대로 되었다. 이거 보자마자 그녀가 나오는 "인피니티 풀"까지 봐버렸다.


요즘 정말 괜찮은 젊은 여배우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메마른 가슴에 불을 지핀 그녀... (탐미주의자, 외모지상주의자인 나에겐 플로렌스 퓨는 너무나도 아줌마 같다고...ㅠㅠ 어떻게 나보다도 한참 동생인 거죠...?)


번 애프터 리딩 (Burn After Reading, 2009)

세븐 싸이코패스 (Seven Psychopaths, 2014)

번 애프터 리딩 (출처: 네이버 영화)
세븐 사이코패스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영화들이 진짜 순수하게 "재미를 위한" 오락영화여서다. 그냥 재밌다. 관객으로 하여금 '아니 이게 또 뭔 상황이야~?'라는 소리가 나오게 하면서 쭉 밀고 나가는 그런 재미가 있다. 순수 오락을 위한 재미, 정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영화들.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본 영화들 중 이 기능을 가장 충실히 했다고 보는 영화는 "번 애프터 리딩"과 "세븐 싸이코패스"다.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하고 골 때리는 상황으로 무한 전개 되다가 결국 어찌 저찌 끝맺음된다. 이게 진짜 웃긴 포인트인 거다. 아니,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심지어 연출이 심심하지도 않다. 보는 맛, 재미, 다 있는 정말 오락용 영화들. 뻘하게 웃긴 영화들이었다.




휴... 쓰다 보니 생각나는 영화가 몇 편 더 있긴 한데, 뭐, 내 머릿속에는 있으니 일단 이 정도만 기록하고자 한다. (이 정도 쓰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ㅠㅠ)


나름 "간접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어서 영화를 꾸준히 보는 것도 없잖아 있는데, 기록을 안 해두니 마냥 이 경험들을 흘려버리는 것 같아 아깝다. (사실 솔직한 심정은, 막상 뭐라도 쓰려고 하면 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막막해서 그냥 지나가는 게 크긴 하다.)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기록해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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