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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Oct 12. 2022

식민사관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나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이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내용상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하나하나 다 떼어서 볼 생각은 없다. 그럴 가치도 없다. 이 글에서는 딱 두 가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진짜 글을 쓴 사람과 식민사관 문제다.


정 위원장의 글 일부 발췌


글쓴이가 누구든 문제다

이 글을 쓴 필자는 문단을 깔끔하게 나눴다. 한 문장마다 엔터를 친 흔적도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글은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직접 쓰지 않은 것 같다. 정 위원장의 온전한 생각을 의원실 보좌진이 글을 옮겨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 시스템이 그렇기 때문이다. 보좌진 업무에 'SNS 관리'가 있다. 영감(국회의원)의 생각을 토대로 SNS에 글을 올리고 관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방식이 어떻든 이 글의 문제의식은 하나다. 어쨌든 글을 쓴 사람은 '식민사관'에 절어있다는 점. 정 위원장 본인의 생각이어도 큰일이지만, 보좌진이 받아 적은 글이라면 더더욱 문제다. 이처럼 위험한 발언을 보좌진이 제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진석 의원실 직원들 모두가 식민사관에 빠져있다는 해석까지 가능하다.


주변에 국회의원 보좌진이 몇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국회는 왜 이렇게 좁은지 몰라.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하이에나들이 득달같이 물어 뜯는다니까..." 보좌진의 인식으로는 속내를 감춰야 살아남는 곳이 국회다. 정치와 외교도 마찬가지 아닌가. 속을 드러내는 행위는 도박에서 내가 쥔 패를 모두 보여주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다. 그 점에서 정진석 의원실은 국회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무려 5선 국회부의장 출신이니 망각해도 되려나.


식민사관은 더욱 문제다

사실 지금 어떤 의원실 하나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바로 식민사관이다. 오랜만에 전공 분야가 나와서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식민사관이 무엇인가. 조선이 일본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다. 일본의 이러한 주장은 다음 세 가지 이론이 뒷받침하고 있다. 식민사관의 A to Z다.


1. 정체성론: 조선은 발전이 없다. 일본이 나서서 발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2. 타율성론: 조선 역사는 원래부터 중국 문화에 절어 살았다. 조선만이 향유한 독자적인 문화란 없다.

3. 당파성론: 조선의 붕당은 당쟁이 아니던가? 그런 당쟁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다.


위를 통해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자. 먼저 정 위원장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 조선이 당시 국제 정세를 잘 읽지 못한 '수동적인 자세'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현재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공동 훈련이라는 능동적인 대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메시지를 냈다고 본다.


그러나 정진석 위원장이 "조선은 왜 망했을까?"로 시작하는 문단을 쓰면서 이 글도 망했다. 조선이 망한 이유를 썩어 문드러졌다고만 단정 지었기 때문이다. 한순간 정체성론의 논조를 담은 친일 에세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조선이 망한 이유 중에 하나로 보기는 한다. 그래도 언제나 ‘국민 정서’를 운운하시는 영감님이 하실 소리는 아니다.


문제는 또 있다.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걸까?”에 이어 “전쟁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침략이 꼭 전쟁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사전에서는 침략을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쳐들어간다”고 정의한다. 전쟁과 연결하지 않아도 일본이 청일전쟁 이후 조선을 강탈하기 위해 벌인 모든 행위가 ‘침략’인 것이다. 혹시 침략을 부정하시려는 의도였을까?


감정을 배제해야 좋은 글이 된다

모든 면으로 보아 이 글은 잘못됐다. 의도는 잘 알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친일’ 발언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초점을 잘못 맞췄다. 아마 감정을 싣다 보니 발생한 문제가 아니었을지. 식민사관에 빠졌든 아니든 간에 정진석 개인을 넘어 그가 속한 집단까지 의심해야 할 상황으로 넓혀졌다.


반성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이런 거 묻어버리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나만이라도 기억하겠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의를 호도하지 말며, 역사 공부 좀 하라는 정 위원장의 말에 코웃음을 쳐본다. 역사 공부를 해야 할 사람은 정진석 의원 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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