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자카란다가 활짝 피었어요
11월에 시드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카란다(jacaranda)가 마을마다 활짝 피었다는 것이지요.
보랏빛의 꽃이 파아란 하늘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보랏빛 꽃잎이 다 떨어지고 초록 어린잎이 나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여름이지요.
바로 이 꽃이 자카란다입니다. 한국분들은 처음 보신 분들도 많을 텐데 어떤가요?
공기를 보랏빛으로 만들고 보랏빛 향기가 거리를 채우는데 사진이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아름답지요?
원산지는 남미이고 케냐의 국화이기도 하며 시드니와 위도가 비슷한 남반구의 도시에서 잘 자랍니다. 겨울에 6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서리가 내리고 자카란다가 잘 자라지 못해서 같은 나라라고 해도 남쪽에 있는 멜버른에서 자카란다가 흔치 않고 따뜻한 브리즈번에서는 잘 자랍니다. 그런데 습하고 더운 캐언즈에서는 또 못 자라요. 그래서 자카란다에게는 시드니 기온이 딱입니다. 그리고 파아랗고 넓은 호주 하늘과 색감이 대비되는 게 이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일 년 동안 자카란다 가만히 지켜봤지요. 지금처럼 초여름에 꽃이 활짝 피어서 사람들은 사진도 찍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받다가 여름이 되면 꽃은 다 땅으로 떨어지고 연둣빛 잎들이 짙어지기 시작하지요. 가을이 되면 잎이 마르기도 하고 누렇게 변하다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겨울이 되면 짙은 나뭇가지들만 앙상히 남아 있어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자카란다의 꽃 피고 지는 일생이 우리의 삶처럼 돌고 돕니다. 언제 가는 꽃피는 시절이 오듯이 지금은 기다리며 현재의 일에 충실해야겠습니다. 한 겨울 가지가 앙상할 때도 나무는 꽃피울 준비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카란다를 한국의 고향에도 심어보고 싶지만 겨울에 서리가 내리는 한국에서 키우기는 아직 무리이네요. 제가 고향을 떠나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자카란다도 아예 고향을 떠날 마음이 없나 봅니다. 그래서 자카란다를 보려면 시드니에 와야 되고 11월이 되기를 기다려야 됩니다.
이제 곧 12월 여름이 되면 자카란다 꽃잎은 다 떨어지고 아주 뜨거운 핫 서머 크리스마스가 옵니다. 그리고 다시 일 년 뒤면 어김없이 자카란다는 다시 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