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과 다운 사이에서
다운그레이드(downgrade)는 사실 다운 그레이드일지도 모른다.
억지로 끌어올린 스펙에 짓눌린 나다운 모습을 찾는 일은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맞이하는 평온한 심신의 상태가 가장 아름다운, 나다운 그레이드일지도 모른다.
컴퓨터 보급이 한창이던 90년대에 업그레이드라는 말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게임을 하기 위한 권장 사양과 최소 사양을 소개했다. 그에 맞춰 자기 집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애들은 행복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아이들은 90년대 후반 급속도로 증가한 PC방으로 몰려 갔다. 물론 PC 방도 컴퓨터의 사양 여부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주어진 환경에 적절하게 진화하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 속에서도 필요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 생명의 등급을 정한 것은 아니었던 반면, 인간 문화에서는 환경에 대한 적응과 진화 여부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곤 한다. 겉으로는 평등한 인간임을 주장하지만 말이다. 이사는 넓은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이고, 전세에서 자가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업그레이드처럼 여겨진다. 자동차는 국산차에서 외제차로 옮겨가야 하고, 같은 국산차 중에서도 레벨이 나뉘고 외제차라도 마찬가지다.
시험 만능 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시험 성적이 떨어지는 일은 재앙이다. 성적과 등급은 오르는 것이 좋지만, 오를(올릴) 수 없다면 유지되어야 한다. 떨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다운그레이드는 그래서 절망적이다.
그런데 업그레이드를 함으로써 정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아가 업그레이드된 나의 모습이 진정 나다운 상태인지도 궁금해진다. 물론 달라진 나의 모습은 분명 나의 모습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자체, 타인에게 확인되는 나의 모습 자체가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그렇게 나타난 모습 이외의 나가 저 어두운 구석에 웅크린 채 울먹이고 있지 않을까. 바로 뒤에서 업그레이드된 나를 째려보고 있지 않을까.
나답게 살아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살아라, 현재를 사랑하라, 바로 내일 죽음이 있는 것처럼 살아라는 식의 잠언들이 쏟아지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있는 탓이리라. 점수와 등급을 올리며 맛보는 업그레이드의 성취감이 나다움에서 비롯하는 성취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말하는 정말 나다운 모습은 어린 시절 아무 걱정 없이 즐기던, 모두가 천재를 운운하며 감탄하던 그 사소한 행동들이 나다움의 뿌리가 아닐까. 자라면서 잘려나간 수많은 가지들이 훌쩍 자란 우리 발밑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저 멀리 버리지도 못하고 내버려 둔 가지들. 그 가지들은 다운그레이드의 흔적이다. 우리 문화 속에서 윤택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포기해야만 했던 나다운 그레이드들이다.
물론, 미련 없이 잘라버린 가지들이 자신의 뿌리를 흔드는 것은 아니다. 업그레이드에서 행복을 느끼는 자아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업그레이드라는 과정에서 타인다운 그레이드를 다운그레이드라 폄훼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