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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May 24.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16. 콜롬비아 프롤로그


콜롬비아로 향하는 길은 실로 멀고도 험난했다.

페루 이카에서 5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고 날아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다시 페루 리마공항에서 콜롬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야만 했으니 말이다.


허둥지둥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려던 찰나,

아뿔싸. 

첫 출발부터 녹록지가 않다.

티켓을 보자던 항공사 직원은 콜롬비아에서 다른 나라로 나가는 티켓이 없는 걸 확인하자

체크인 수속을 거부한 것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언제 나가는지 명확한 티켓이 없으면 

애초에 콜롬비아로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최소 한 달 정도를 생각하고 시작하는 콜롬비아 여행인 만큼

어느 도시에서 마지막 여정이 끝날지, 그때가 언제가 될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터에

아웃 티켓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리 사정사정해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칫 시간을 더 지체하다간 입국 수속마저 지연돼 비행기를 놓쳐버릴지도 몰랐다.

급하게 공항 와이파이를 잡아 부랴부랴 48시간 이내 취소 가능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아슬아슬 힘겹게 입국 수속을 마쳤다.


첫 출발부터 혼을 쏙 빼놓는 콜롬비아.

액땜했다 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려 했건만 마음고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악명 높은 항공사답게 꽤나 오랜 시간 비행기가 연착하더니

심지어 게이트마저 몇 번에 걸쳐 위층 아래층 정신없이 바뀌어대며 사람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기 바빴다.

저녁이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마침내 확정된 게이트 앞에서

나는 항공사가 배급해주는 무료 샌드위치를 먹겠다며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서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그마한 샌드위치와 음료수 한 잔에 예민했던 칼날을 내려놓으며

저녁 11시가 다 되어서야 콜롬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신없이 모든 일들이 움직이는 사이 비행기는 새까만 밤하늘을 날아 

배낭을 메고 콜롬비아로 출발한지 16시간 만에 보고타 공항에 무거워진 내 몸을 내려놓았다.


새벽 2시를 넘긴 콜롬비아 보고타공항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불 켜진 가게들도 몇 개 없는 데다, 

있는 사람들이라곤 죄다 구석을 찾아들어가 짐을 베개 삼아 이미 잠을 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흡사 피난민과 같은 광경에 나는 되려 이곳에 나와 같은 여행자가 수없이 많다는 묘한 안도감으로

불안했던 마음을 달래버렸다.

급한 대로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몽롱했던 정신을 차리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앞으로 적어도 6시간은 버텨내야 하는데

이 넓은 공항에서 커다란 배낭과 내 몸을 어디에 편히 내려놓고 쉬어야 할지 막막했다.

아직 분위기조차 제대로 파악이 덜 된 처음 도착한 낯선 나라에서

경계를 쉬이 풀어버리기엔 나는 아직 잃을게 많았다.



그 와중에도 눈치 없이 배는 자꾸만 고파온다.

짐을 끌고 이리저리 위층 아래층을 돌다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배는 고프지만 웬일인지 입안은 까슬까슬해 입맛은 없었다.

메뉴판을 쭉 훑어보며 그나마 저렴한 가격대에서 먹을만한 메뉴를 골라 시켰다.


음식 주문까지 마치고 편안한 소파 의자에 기대어 앉으니 몸이 스르륵 긴장을 풀어놓는다.

나도 모르게 졸음이 밀려오던 찰나에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어떤 맛을 음미한다기보다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집어넣었다.


그렇게 겁이 많은 나는 결국 몰려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졸다 다시 깨기를 반복하며

공항에서 맞게 된 콜롬비아의 첫날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운 채 아침이 밝았다.     


첫 단추부터 쉽지 않은 험난한 콜롬비아,
그럼에도 나는 꼭 오고 싶었다.
아니, 와야만 할 것 같았다.


실은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콜롬비아라는 나라는 예상에도 없었지만

점차 여행을 하며 콜롬비아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기고 가볼까하는 마음을 먹게 된 순간부터 

아주 우연히도 수많은 여행지에서 콜롬비아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콜롬비아를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다양한 콜롬비아의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페루 이카에서 묵었던 호스텔 풀장에서 만난 똘똘한 10살 꼬마 소년 후안은 

나에게 콜롬비아 어느 도시들을 여행하는지를 물으며 

그곳에 가거든 꼭 봐야 할 것들, 반드시 먹어봐야 할 것들, 

게다가 맛있는 맥주까지(10살 꼬마 소년이 아는 게 아주 많았다.) 꼼꼼히 알려주며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곳들까지 세심하게 일러주었다.


함께 버기카 투어를 했던 레오와 조나단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콜롬비아에서

꼭 다시 만나자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주었고, 

처음 도착한 낯선 콜롬비아에 시리고 베인 마음을 세상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 친구들이었다.



'콜롬비아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게 다 다정한 걸까?'

'모두들 이렇게나 친절하고 밝고 사랑스러운 걸까?'


콜롬비아라는 나라보다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을 빼앗겨버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들이 궁금해서, 그 나라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그곳에 가야겠다고 다짐한 첫 번째 나라였으니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행복한 표정에 젖어 사랑스러운 콜롬비아를 나누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어서 콜롬비아 땅을 밟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분명 나에게도 기어코 가장 사랑스러운 나라가 될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대부분에게 콜롬비아라는 나라는 다소 어렵고 생소할지 모른다.

남미 어딘가에 있는 나라 정도로,

혹은 소문처럼 치안이 아주 좋지 않고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해버리기 쉽다.

나도 그 나라에 발을 내려놓기 전에는 그랬으니 말이다.


그도 당연할 것이 콜롬비아로 들어가기 전부터 

소요와 폭동과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콜롬비아 뒤에 붙어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콜롬비아는 

위험하고 불안한 나라라는 포장지가 씌워진 뉴스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 자꾸만 콜롬비아로 향하고만 싶었다.

굳이 위험하다는 데도 가야만 하는 건 무슨 객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여행을 하며 만나온 콜롬비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들려준 콜롬비아라는 나라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죽기 전,
꼭 이토록 천천히 흘러가는 여행에서
한 번쯤 들러야만 하는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기대를 걸었다.

적어도 아직까진 가장 때 묻지 않은 남미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콜롬비아는 베일에 싸인 숨은 매력들이 채 다 꺼내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곳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나는 그 숨겨진 매력을 하나하나 발견하며

콜롬비아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 말하게 될 그날을 꿈꿨다.  

   


과연 이 여행의 끝에서 그 바람대로 이루어질지, 

혹은 또 다른 콜롬비아의 모습에 실망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꿈을 꾼다.


콜롬비아의 향긋한 커피 향을 떠올리며,

콜롬비아의 흥겨운 살사 리듬에 몸을 맡기며,

눈부신 햇살 아래 펼쳐진 반짝이는 카리브 해의 낭만을 상상하며.


그렇게 오랜 시간 끝에 도착한 남미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

콜롬비아에 첫 발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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