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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 말에 담긴 마음을 마주하며

by 소소한마음씨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진료실에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무거워집니다. 아마 이 말씀은 단순한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오랜 시간 쌓인 고통의 무게,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사라진 무감각,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남은 희미한 연결의 손짓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말을 꺼낸 환자분께,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조심스럽게 몇 마디를 건네고 싶습니다.


1. 마음이 머물 공간


그 말씀 속에는 지금 삶이 정말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말씀하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우리는 너무 자주, 이 말에 대해 ‘답’을 찾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그 말이 태어난 자리에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살고 싶은 것도 아닌

중간지대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살고 싶은 것도 아닌’ 그 '중간지대'의 무감각 속에서


이 말씀을 꺼낸 건, 어쩌면 아직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낫고 싶고,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 일 것입니다.


2. 고통은 가치의 그림자


그리고, 그 말씀은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사라졌거나,

지금은 너무 멀게 느껴지거나,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나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했던 것들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무언가가 분명 의미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사라졌기에 아프고,
잃었기에 공허한 것.

내게 소중한 무언가


사라졌기에 아프고, 잃었기에 공허한 것입니다.

그 상실의 자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잃어버린 줄 알았던 소중한 가치의 흔적이 보일 수 있습니다.


3. 생각과 '거리 두기'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나요?

아니면, 그 생각을 그저
하나의 목소리처럼 바라볼
수 있는 여지는 있나요?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당신 전체를 설명하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지금 이 순간 떠오른 하나의 생각, 하나의 사건입니다.


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

그 자체가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한번 연습해 볼까요?


혹시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아시나요?

웹툰 유미의 세포는 머릿속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의인화해서 보여주는데요.


pBaNf3hMnow1m-X6WKDroN9POOIsuB_cQ60YYOlcDfA2_24bKOLu96GYRqmrC8cEikKkFPcs7Xfo.jpg?type=w966 웹툰 <유미의 세포틀>

웹툰 '유미의 세포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들』에서 '우울 세포'나 '비난 세포'가 등장해 "넌 정말 쓸모없어." "아무리 해도 소용없잖아." 같은 말을 쏟아낼 때, 유미는 처음엔 그 말에 휘둘려 행동이 멈추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기도 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유미가 그 세포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아, 또 '비난세포'가 말하고 있구나’


아! 또 '비난세포'가 말하고 있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생각들은 점점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웹툰에서는 다른 세포들이 시끄러운 '비난세포'를 제압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라는 생각이 올라왔을 때, 그 생각이 마치 ‘나 자체’처럼 느껴지면 우리는 쉽게 무기력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나의 세포, 하나의 목소리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내 안에서 이런 생각'도' 나오고 있구나.'


즉 ‘지금 내 안에서 이런 생각'도' 나오고 있구나’ 하고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생각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 사이의 작은 거리가, 다시 삶으로 이어지는 공간과 여유가 되어주는 것이죠.


생각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말하는 '세포'를 관찰하는 것


하나의 '세포'가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


“생각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생각을 말하는 ‘세포’를 관찰하는 것." 이것을 통해서 유미가 세포들의 말에 거리감을 가지듯, 우리도 생각과 약간의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삶은 한결 덜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세포들이 힘을 합쳐서, 너무 시끄러운 '비난세포'를 조용히 시킬 수도 있겠지요.


4. 가치에 대한 조용한 상상, if


만약 지금의 이 고통이 조금 덜하거나, 삶이 다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삶의 의미는 정해진 곳에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는 지금-여기에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했던 것, 분노했던 것, 아파했던 것의 배경에는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가치를 따라 살아보고 싶은 삶을 상상하는 것, 그 상상은 당신을 다시 삶으로 이끄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5. 아주 작은 행동으로 연결하기


그 상상에 닿기 위해,
아주 작게라도,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오늘 하루 살아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가치는 방향이고, 행동은 발걸음입니다.


목표는 '갑자기 살아갈 이유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오늘 하루, 아주 작게 살아볼 이유에 닿는 행동 하나를 실천해 보는 것.


혼자 밥을 먹는 일, 바람을 쐬는 산책,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일도,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 삶은 ‘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몰라 헤매는 그 순간에도, 몸은 숨을 쉬고 있고,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를 느끼고 있으며, 입술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 문장 속에'살아내고 싶은 마음'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저는 믿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봅시다. 당신 마음속, '살아 내고 싶은 마음'.


살아 내고 싶은 마음
조금만 더 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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