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지의 서울
혹시 요즘 이런 생각이 자주 드시나요.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살까.
왜 나는 이렇게
약하고, 초라할까.
마음이 자꾸만 나를 몰아세울 때, 그럴수록 더 움츠러들고,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을 때, 저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 드라마 《미지의 서울》 스포일러 있습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얼굴만 똑같고 삶은 완전히 다른 쌍둥이 자매(유미지/유미래)가 서로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삶을 교환하며, 혼란 속에서 진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로맨틱 성장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에서, 미지는 좌절한 채 3년간 방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미지가 “할머니, 나 너무 쓰레기 같아..”라고 자책하며 울 때, 할머니는 조용히 이렇게 말해줍니다.
사슴이 사자를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양 빠지고 추잡해 보여도,
살려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이 말을 들은 미지는, 처음으로 자신을 ‘지켜야 할 사람’처럼 바라봅니다. 그동안 부끄럽고 못나게 여겼던 모든 행동들이 사실은 살기 위한 몸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드라마는 이렇게 초라한 순간들을, 모양 빠지고, 추잡해 보이는 순간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줍니다. 살기 위해 거짓말이 해야 했던,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들 역시도, 따스하게 감싸 줍니다.
자기 연민, 나에게 다정해지는 연습
이런 장면들은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란 무엇인지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자기 연민’은 실수하거나 무너질 때 나를 비난하는 대신, 그 순간의 나를 따뜻하게 이해하고 품어주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건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쓰러진 자리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깊고 조용한 용기입니다. 이러한 자기 연민을 통해 어려운 감정과 생각들을 회피하거나 싸우는 대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있는 행동을 선택해 나아가야 합니다. 할머니를 위해서 방을 나온 미지처럼요.
당신의 '숨기'는
도망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버거운 현실 앞에서 숨습니다. 지쳐서 멈추기도 하고, 고요하게 웅크리기도 하죠. 그럴 때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지금 나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멈춘 것도, 도망친 것도
다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연민의 언어
살다 보면 남들보다 더디게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옆 사람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은데, 나만 아직 출발선 근처에서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요. 때로는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보지만, 그 자리에서 또 넘어지기도 합니다. 애써 살아냈던 하루가 금세 엉망이 되어버리고,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해낸 게 하나도 없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정신 차려야지.”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내 인생을 열심히 달려오게 했던 채찍들이죠. 하지만 그 채찍은, 지친 내면에는 또 하나의 상처만을 남길뿐입니다.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 채찍, 지금도 효과 있습니까?
진짜 필요한 건 단호한 명령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따뜻한 허용입니다.
지금의 나,
이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
이런 말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작은 목소리 일지도 모릅니다. 나약해지는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연민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안에 단단하고 고요한 회복의 힘을 깨웁니다.
‘괜찮다’는 인정은, 실패를 정당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넘어져 있는 나에게 손을 내미는 말입니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
살아 있는 나에게 건네는 용기 있는 응원의 언어입니다.
그렇게 건넨 인정 하나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숨이 되고, 오늘을 다시 견디게 하는 작지만 단단한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언젠가, 가장 나다웠던 나로 피어날 준비를 할 겁니다. 중학생 시절, 학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꽃피는 때가 있다.
빨리 핀 꽃은 빨리 진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살다 보면 남들보다 느릴 수도 있습니다. 이뤄낸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애써 노력해 봐도, 마음이 무너지고, 다시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저마다의 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면, 그럴 때 필요한 건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채찍보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아”라는 따뜻한 인정입니다. 그 인정 하나가,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숨이 되어주고 작지만 단단한 회복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언젠가 '꽃피는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상처 많은 자신에게 손 내밀어 주세요. 나에게 친절하게.
《미지의 서울》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아직 다 알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해 걷고 있는 중입니다. 그 여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속도를 내는 것도,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잠시 멈추어 서서, 지친 나를 안아주는 것. 그게 자기 연민이고, 그게 곧 회복이고, 그게 진짜 성장입니다.
드라마 속 미지가, 그리고 미래가, 상처 많은 자신에게 손 내밀던 그 장면처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괜찮아, 지금 이 모습도 나니까.
그리고, 살아 있으려 애쓴 오늘의 나에게
혹시 지금 숨고 싶은 마음이 드시나요? 그건 살고 싶은 마음의 다른 얼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내가 뭐라 하든 지금 이 순간도 살아내고 있는 당신은 충분히 용감합니다.
살려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이 말을 오늘 당신의 마음에 가만히 놓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만큼이나 따뜻하게,
이런 나도 괜찮아.
는 말도 함께요. 왜냐면, '연민'이 필요한 이유은 '변화'하려는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대사를 빠질 수 없죠. 매일, 미지가 밖으로 나가기 전 거울을 보면서 외쳤던, 그 용기의 주문요.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