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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금만 괜찮은 사람이 될까요?

품위

by 소소한마음씨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툭, 무너져버리는 날.


'왜 나만 참아야 하지?'


억울함이 목까지 차오르고, 상대의 비열함과 치졸함이 마치 함정처럼 나를 옭아매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그중 하나는 이렇게 속삭이죠.


"똑같이 갚아주자. 그래야 속이 풀려."


조금 더 깊이 빠져들면,


"가만두지 않겠어. 더 아프게 되갚아줘야 해."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머릿속엔 내가 했던 말, 하지 못했던 말, 그때 날카롭게 쏘아붙였으면 좋았을 장면이 무한 반복처럼 떠오르고,


심지어는 상대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상상에까지 이르기도 하죠.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그 순간을 되돌아가 다시 싸우고, 다시 이기고 싶은 충동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정말 원하는 모습일까요?


분노와 억울함에 휩싸인 순간, 그 감정은 너무나 정당하고, 너무나 강렬합니다. 그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괜찮은 척하세요"가 아니라,


"그 감정이 있는 그대로 있는 걸 인정합시다"라고 말합니다.


감정은 곧 신호입니다. 무언가 나에게 중요하고, 상처받았고, 지키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니까요.

감정과 함께 머무르면서, 이 감정이 말해주는 것 너머에 있는 내 진짜 바람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잠깐만, 멈추고, 조금만 천천히,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분노’는
무엇을 위해
내 안에 찾아온 걸까요?


단지 참지 못해서 터져 나온 감정일까요, 아니면 내 안의 어떤 소중한 무언가가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무엇이 다쳤기에, 나는 지금 이토록 화가 나 있는 걸까요?

무시당한 존엄? 오해받은 진심?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이 감정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요?

상처에 상처로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나요?


내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그 순간 이기는 것? 아니면 내가 지키고 싶은 모습 그대로 남는 것?



분노를 표현하더라도, 나는 그 방식 안에 내 품격과 가치를 담을 수 있을까요?

감정에 끌려가는 대신, 감정을 등에 업고 내가 선택한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물론, 이 질문들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떠올리고 스스로에게 묻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에서 자신의 가치를 따라 행동하려는 사람으로 옮겨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감정이 생겼다고,
꼭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설명드리려고 하는 것은 감정에 휘둘리며,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감정을 무시하거나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 속에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행동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눈물 속에서 춤을 추고, 어둠 속에서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를 위해, 저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소개해드립니다.


분노와 상처가 오갈 때, ‘조금 괜찮은 나’로 응답하기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은 저급하게 행동해도,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합시다.

Michelle Obama, 2016


이 연설은 2016년 9월 19일 미국민주당 전당대회에서 Obama 대통령의 부인 Michelle이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Donald Trump와 그 지지자들이 하던 '막말'에 대해서 했던 말입니다. 이 연설의 울림이, 미국적 '정신'을 일깨우고, '품격 있는 승리'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미셸 오바마는 인터뷰에서 이 연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How we insist that the hateful language they hear from public figures on TV does not represent the true spirit of this country."


"TV에 나오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혐오의 언어가 미국의 진정한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까?"


"How we explain that when someone is cruel or acts like a bully, you don't stoop to their level."


"어떤 사람이 잔인하게 굴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의 수준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It means that your response has to reflect the solution. It shouldn’t come from a place of anger or vengefulness. Barack and I had to figure that out. Anger may feel good in the moment, but it’s not going to move the ball forward."


"이는 귀하의 답변이 해결책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분노나 복수심에서 비롯된 답변이어서는 안 됩니다. 바락과 저는 그 점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분노는 순간적으로 기분 좋을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Our motto is,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라고 부연 하였죠. 저는 이 '문장'을 종종 읊조려 봅니다. 마치 폭풍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작은 나침반을 꺼내 드는 것처럼. 이 짧은 문장이, 제 인생과 환자분의 인생을 좀 더 방향으로 안내해 주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아마도, 좀 더 나은 인생이란 건, '좀 더 괜찮은 나'로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좀 더 나은 인생이란 건,
'좀 더 괜찮은 나'로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보다 앞서거나,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더 나를 이해해 주며, 조금 더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는 것. 우리는 모두 ‘좀 더 괜찮은 나’를 향해 매일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면 그게 '좀 더 나은 인생'이 아닐까요.


감정은 참는 게 아니라, 방향을 고르는 일


물론, 어떤 순간에는, 그동안 참아왔던 여러 가지 분노들이 쏟아져 나오고, 눈앞의 상대를 향해 그것이 거침없이 뿜어지게 되기도 합니다.


분노, 실망, 자괴감…


그 감정들은 억지로 없앨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에 휘둘려 버리는 것과 그 감정과 함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리고, 상대가 비열하게 행동할 때, 우리는 더 나은 행동으로 답하려고 애쓰는 것, 품격 있는 행동. 이것은 결코 약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건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억지가 아니라, 나를 지키고 싶은 존엄과 가치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전에서 말하는 '수신(修身)'의 시작입니다.


몸과 마음을 먼저 돌보고, 내 관계, 내 일상, 그리고 이 사회에 내가 낼 수 있는 좋은 영향의 파동을 보내는 것.


우리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건, 완벽하거나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


화가 나도 말 한 번 더 골라서 사용하는 사람

삶에 지친 상태에서도, 타인에게 약간의 따뜻함을 남겨두는 사람

실수한 날에도, 내일은 조금 더 다르게 해 보려는 사람


그렇게 조금씩 괜찮아지려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나이고,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 모습의 나로
살아가고 싶은가요?


당신의 품격은 비싼 자동차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이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오늘 당신이 한 그 '작은 선택'이, '작은 행동'이 당신의 품위를 지키고, 당신 주변에 따뜻한 울림을 만들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 조금만 괜찮은 사람이 되어봐요.

지금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만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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