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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분노는 어디를 향했습니까?

투사

by 소소한마음씨

어쩌면 오늘, 당신은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어딘가 악플을 달았을지도 모릅니다.


짧은 대화 속에서,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서, 혹은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오던 순간 무언가를 견디는 대신, 무언가를 향해 터뜨렸을지도요.

그 순간 당신의 분노는
누구를 향했습니까?


애꿎은 전화기 너머의 상담사였습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밤새 자리에 앉아있던 A/S 직원이었나요?


혹은 끼어들기를 시도하던 낯선 운전자였나요?


뜨거운 도로 위를 달려서 당신에게 식사를 배달해 준 라이더에게였나요?


새벽부터 수백여 개의 택배를 분류해서 당신의 집 앞까지 가져다준 택배기사에게였나요?


우리는 종종, 그 순간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을 '내 고통의 원인'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그 분노를 토해내게 됩니다. 괜한 트집을 잡게 되기도 합니다.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다고 말꼬리를 붙잡고 짜증을 퍼붓게 되기도 합니다. 대꾸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해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 순간,
잠깐만

멈추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당신의 분노를 피할 수도 없이 받아내야 했던,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피할 곳 없이
당신의 분노를 받아내야 하는

그들도
당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매뉴얼을 읊던 그 사람은, 어쩌면 당신처럼 어제 잠을 설친 누군가 일지도 모릅니다.


커피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일하는 누군가, 퇴근 후에도 고객의 분노를 안고 돌아가는 평범한 존재 말입니다.


그저 일하는 사람,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 생계를 위해 그저 직장 생활을 해내야 하는,


어디론가 가는 길 위에 있었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어쩌면 나처럼 하루를 버티고 있는 평범한 존재일 것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
그저, 누군가의 '을'이 되어 버린

당신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로 조금은 지쳐있고, 마음 한편이 무너져있고, 버거운 삶을 버텨내고 있는, 그리고 오늘 우연히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분노를 받게 된, 그러면서도, 생계를 위해 겨우 참아내야만 하는, 나와 똑같은,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화를 냈던 그들은, 실은 '나처럼 지치고, 나처럼 버티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분노는 ‘지금’에 머무르지 않는다


분노는 종종 ‘그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겪었던 수많은 불공정, 누적된 무시, 말하지 못한 억울함과 지친 마음들이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틈을 타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투사(projection)


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따위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거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그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는 일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방식을 '투사(projection)'라고 부릅니다.


이는 원래 내 안에 있던 분노나 결핍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며 자신을 방어하는 무의식적 기전입니다. 나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고통스럽기에, 타인을 ‘원인’으로 설정하며 일시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때때로 '허무함과 죄책감'이라는 그림자를 마주합니다.


분노나쁜 감정아니다


물론, 감정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분노도, 두려움도, 그저 '살아있기에 생기는 정당한 반응'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듣는 것'입니다.


무엇을 지켜내기 위해서 '분노'라는 감정이 나타났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분노는 어떤 피로에서 왔을까?

내 안의 어떤 욕구가 지금 무시당했다고 느낀 걸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분노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다르게 마주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분노는 대개 단순한 사건 하나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 아래에는 오랫동안 쌓인 피로, 억울함, 상실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생각

왜 나에게만
이렇게 나쁜 일이 계속될까?



인간은 자기 고통의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내가 겪는 불안, 상처, 염려는 언제나 가장 선명하고 가장 무겁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의 삶 깊숙이 들어가 겪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타인의 고난은 흐릿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 에서 쌍둥이 미지와 미래도 서로의 삶을 바꿔 살면서 겨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죠.


감정바라보는 연습 그리고 시선을 바꾸는 힘


그렇죠.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오늘 당신은 누군가에게 화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감정을 후회하고 돌아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상대도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다'이해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너무 어렵나요? 만약 잠시라도,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가지거나, 타인의 몸속에 들어가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가 되어서야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앞의 사람도
나와 같다는 것

누구의 삶도
가볍지 않다는 것

당신도 나처럼,
고통받고 있구나


… an "understanding heart, " […]
not mere reflection or mere feeling,
makes it bearable for us to live with other people,
strangers forever, in the same world,
and makes it possible for them to bear with us

"… 이해하는 마음은" […]
단순한 반영이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영원히 낯선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며,
동시에 그들 또한 우리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Johanna Cohn Arendt


멈춤’의 순간 만들기


나를 감싸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설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우리는 '내 분노'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분노가 반드시 타인을 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감정이 향할 방향을 잠시 멈춰 묻는 연습'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하루는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연습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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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치밀어 오를 때,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어 보세요.

"지금 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이 감정은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나만 불행하다', '내가 무시당했다'는 생각과 '나는 지금 힘들다'는 사실을 구분하기

타인의 표정 속에도, 내가 모르는 투쟁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기


그러고 나서 감정을 '표현할지, 거둘지', 선택하세요. 그건 자동적인 반사가 아니라, '당신의 능동적 선택'입니다.


당신의 품격을 담아서 행동하는 겁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게 행동하는 거죠.


물론, 분노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 순간, 분노는 누군가를 해치는 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내 분노가 향한 곳이 어디였는지, 그 분노 아래 어떤 두려움과 상처가 있었는지 조용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내일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하루에, 조금 더 다정한 선택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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