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미학 킨츠키
한국인들은 늘 바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 세운 목표에 따라
"지금쯤은 이 정도쯤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지요. 문득 뒤를 돌아보면 여행을 더 자주 다녔어야 했다고 아쉬워하거나, 더 많은 돈을 모았어야 한다고 느끼거나, 지금쯤 커리어나 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늘 쫓기듯 살아가고, 나 자신은 늘 실패자 같기만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크고 작은 실패를 겪고, 그로 인해 꿈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하며, 자신이 쓸모없는 조각들처럼 느끼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오랫동안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금으로 상처를 잇는 기술, 킨츠키(金継ぎ)
킨츠기(金継ぎ) 또는 킨츠쿠로이(金繕い)는 일본에서 유래한 도자기 수리 기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이어 붙이고 깨진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해 아름답게 장식 및 보수, 수리하는 공예를 말합니다.
킨츠키 즉 ‘금을 이어 붙이다’라는 뜻처럼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이기 위해 장인들은 옻과 금가루를 섞어 정성스럽게 이어 붙입니다. 깨진 자리를 감추는 대신 금으로 아름답게 드러냅니다.
“깨졌기 때문에 쓸모없다”는 판단 대신, “깨졌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새로운 시선이 담긴 이 기술은 단순한 복구를 넘어선 예술이며 철학입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전통 미학, 와비사비(侘寂)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와비사비(侘寂)의 정신
와비사비는 일본의 미의식으로, 와비는 절제되고 소박함(단순하고 본질적인 것)을 뜻하며, 사비는 덧없음과 오래되고 낡은 것(불완전함의 수용)을 의미합니다. 와비사비는 부족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하며,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 불완전함, 불멸, 그리고 겸손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와비사비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삶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감사와 아름다움을 찾으세요.
때 묻은 나무, 금이 간 찻잔, 오래된 종이의 질감, 그 모든 것들은 '시간의 흐름과 삶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 '더 깊고 조용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킨츠기로 수리한 그릇은 귀한 손님에게 정성을 표현하는 의미가 있어서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킨츠기로 수리한 그릇에 음식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킨츠키는 외양이 아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킨츠키의 기원은 14세기 무로마치 시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아끼던 찻그릇을 깨뜨린 사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그릇을 중국으로 보내 수리를 맡겼으나, 쇠못으로 이어 붙인 어설픈 복원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깨진 것을 감추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달라
그래서 일본 장인들에게 "깨진 것을 감추지 말고, 오히려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달라"라고 부탁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바로 킨츠키였습니다.
깨진 그릇을 쓸모없다고 여기는 시선 대신, '깨진 자국을 역사의 일부로 존중하는 시선' 바로 그 시선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아마도, 킨츠키는 그 외양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릇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인 것 아닐까요? 상처와 회복을 담은 그릇,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요.
그릇도 마찬가지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킨츠키
우리 마음도 때로는 깨집니다. 상처받고, 실패하고, 부서집니다.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취업에 실패하고, 관계에서 지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흔적을 숨기려 합니다.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이미 회복된 척" 하면서요.
하지만 그 상처를 감추기만 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나에게도, 미래의 나에게도 불친절한 방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그 위에 의미와 시간을 덧입히는 것'이, 진짜 회복입니다. 그 흔적이 완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단단하고 고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삶을 이어 붙일 수 있습니다. 금빛의 흔적으로, 더 단단하고 고유한 존재로 나아가게 됩니다.
깨어진 아름다움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합니다
죽음과 상실, 그리고 인간의 감정반응을 연구했던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most beautiful people we have known are
those who have known defeat, suffering, struggle, loss…
and have found their way out of the depths.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은
패배와 고통, 싸움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 나온 사람들입니다
Elisabeth Kübler-Ross
그들은 상처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금빛의 의미를 새긴 사람들'입니다.
상처는
감추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살아낸 흔적이며,
'다시 빛날 준비가 된 자리'
조각난 인생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습니다.
지금 조각난 삶을 쥐고 있다면, 그건 무가치한 파편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지금은 어쩌면 그것이 전혀 아름답지 않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불완전함 안에서 깊은 아름다움이, 삶의 정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릇이 깨진 순간이 끝이 아니듯, 인생도 실패의 순간에서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깨진 조각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성껏 이어 붙인다면, 상처는 감추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살아낸 흔적이며, '다시 빛날 준비가 된 자리'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그 상처에 금을 입혀, '귀한 손님에게 내어줄 그릇'이 되기를,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