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국내 여행

by 이성균 여행기자

당일이든, 1박 2일이든 한 달에 한 번씩을 짬을 내 수도권을 벗어난다. 2025년에도 해남, 원주, 단양, 청양, 정읍, 밀양 등 부지런히 다녔다. 하지만 아쉽게도 즐거움은 부쩍 떨어졌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눈에 보이는 그림들이 꽤 익숙해서 그랬던 것 같다. 해외여행에 비해 자극이 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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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사, 청양 칠갑 전망대

특히, 지난해 개인적으로 충격이 컸던 여행이 있었다. 애정하는 국내 여행지인 부산에서도 '할 게 없다'라는 인상을 받아서 그렇다. 2008년부터 매해 최소 한 번은 방문했고, 작년에도 휴가와 출장을 합해 여섯 차례 다녀올 정도로 좋아하는 여행지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지 않아 가방 구매, 밀린 드라마 보기 등 서울에서 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LSG_4606-향상됨-NR.jpg 페어필드 부산 송도비치

다행히 마지막 만남은 달랐고, 내가 바라는 국내 여행의 방향이 뚜렷해졌다. 3번이나 투숙할 만큼 좋아하는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 송도비치' 호텔에서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이곳은 2020년에 문을 연 메리어트 브랜드 호텔인데, 전 객실 송도해수욕장 뷰가 특징이다. 코로나19 땐 여러 장점을 고려하면 거저에 가까울 정도로 저렴해 제법 자주 머물렀다. 물론 지금도 평일에는 10만원대 중후반의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어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시설도, 위치도 바뀐 게 없는데 무엇이 좋았냐면 호텔 곳곳에서 발견한 노력의 흔적이다. 국내 여행에 싫증난 여행 기자를 달랠 정도로 괜찮았다. 고가의 5성, 럭셔리 호텔이 아닌데도 아침 요가, 물놀이 용품 무료 대여, 야경 투어 같은 투숙객을 위한 서비스가 두루 갖췄고, 호텔 최상층에 자리한 송도키친의 여름 스페셜 메뉴도 흔하지 않은 것들로 채워졌다.

LSG_4838.jpg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 송도비치의 여름 스페셜 메뉴였던 '오소부코'

메뉴판 한 페이지를 채운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표 요리인 오소부코(Ossobuco)는 놀라웠다. 오랫동안 바라던 변화를 목도한 순간들이다. 흥미로운 투숙 경험을 위한 실험적이면서도 품질이 보장된 시도 말이다. 럭셔리 호텔(국내 1박 50만원 이상, 해외 80만원 이상)에게는 당연히 요구되는 덕목이지만, 15~25만원대 국내 호텔들에게 보기 어려웠던 종류의 모험이었다. 지방 호텔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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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W 호텔. 19세기 대저택, 발레 아카데미였던 곳이 호텔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를 다니면서 숙박 시설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갖고 있었다. 당일치기 여행으로 지방의 멋진 관광지를 보는 건 참 괜찮은데, 머물고 싶은 곳은 찾기가 쉽지 않다. 저렴한 가격으로 하룻밤 머물 곳은 있지만, 청결과 식사, 로컬 매력(액티비티, 미식) 등 잠자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제시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어필드 부산 송도비치의 시도는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더 많은 숙소가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LSG_8153.jpg 인구 2만명의 일본 소도시 우레시노. 온천이 유명한 지역이라 숙소마다 개성 있는 온천탕이 준비돼 있다. 1박 비용도 합리적이다

국내여행의 발전과 재방문을 늘리기 위해서도 중간 가격대 호텔(또는 숙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관광지는 한 번 보면 다시 찾을 일이 드문데, 호텔이 지역 특색을 가미한 액티비티, F&B 등의 경험을 제시할 수 있다면 도시는 같아도 새로운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숙박비와 품질에 대한 불만으로 단거리 해외여행(일본, 동남아 등)으로 눈을 돌리는 한국인도 돌려세울 수 있다.


한국인의 불만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2025년 2분기 야놀자 리서치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해외여행을 다녀온 7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해외를 고른 이유로 숙박, 음식 등을 고려하면 해외여행이 가성비가 더 좋다는 답변이 많았고, 국내 관광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응답자의 66%가 숙박시설 가격을 꼽았다.

_86A1769_1 복사.jpg 인구 22만명의 소도시 일본 사가. 삼나무를 바라보며 먹는 조식과 온천이 기억에 남는다

또 재작년 네이트Q가 진행한 ‘여름휴가철 국내여행이 꺼려지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6,311명 중 무려 72%(4,561명)가 ‘갑자기 올리는 바가지 숙박요금’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격과 품질 불만이 단거리 해외여행 선호로 이어지는 흐름이 입증된 셈이다.


국내 여행 만족도 향상의 중요한 축은 중간 가격대 호텔의 진화에 있다. 수요와 예산이 가장 모이는 구간에서 경험의 업그레이드가 일어나면 비용 대비 체감 변화가 크고, 다시 가야 할 이유도 선명해진다. 국내 여행의 성장도, 돌아오게 만드는 힘도 이 ‘중간’이 얼마나 새로워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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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레터에서 발행된 글을 새롭게 활용했습니다. 뉴스레터는 현재 몸 담고 있는 여행 미디어 '트래비'에서 발행하는 것이고,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당 채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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