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Lee Dec 17. 2023

디스코팡팡 종일 타 봤어?

짧고 긴긴 이석증 투병기

  하늘도 땅도 빙빙빙 돈다. 바닥에 발을 딛고 설 수가 없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빙글 도는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1, 2분이나 지났을까? 머리만 빙글 돌던 나의 세상은 위장으로 침범하여 식은 삼겹살 기름에 밥을 비벼 먹은 듯한 울렁거림이 시작되었다. 식은 돼지고기의 누린내가 울컥하며 식도를 타고 넘어오고 내 손가락에서는 발꼬랑내가 났다. 오장육부 비위가 사정없이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부한 영상을 두세 배쯤 빨리 돌리면 내 어지럼증의 정도와 비슷할까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8일째, 땅을 사고 건축주로서 설계에 참여하여 한 땀 한 땀 지어 올린 내 집 이야기를 5일간 브런치스토리에 업로드하는 중이었다. 의 집짓기 이야기는 3년 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이미 반이상 써 둔 상태. 매일매일 한 단원씩 올리면 얼마 안 가서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겠다 싶은 호기로움이 나에게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존에 써 두었던 원고 파일을 오랜만에 열었는데,

  세상에나, 3년 전 코로나 시국에 써 두었던 내 글은 지금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현들이 눈에 너무 많이 들어왔다. 정말 부끄러웠다. 이대로는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집을 지으면서 찍어 두었던 사진을 첨부하려고 보니 이 사진을 여기에 써야겠는데 어느 파일에 저장해 두었더라? 사진 찾고 후보정하는데 한나절이 걸리네. 출처도 불명확한 퍼 온 사진을 이미지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하나씩 그림을 그리다 보니 또 한나절. 낮에 찾아 둔 사진, 낮에 그려둔 그림을 브런치스토리에 올리고 그 위에 글을 입히다 보면 금세 새벽 2시.

  지난 5일간을 매일 두어 시간 자고 글을 업로드했더랬다. 꽤 늦은 시각에 업로드를 하곤 했지만 라이킷, 라이킷, 구독...으로 이어지는 알람소리가 어찌나 행복하던지... 다음 날 이른 아침이면 피곤함도 잊고 그다음 회차를 업로드하기 위한 나의 하루가 또 시작되곤 했다.

  그 조마조마하던 6일째 되는 날 아침에 사고는 발생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 것이었다. 천장과 바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이거 이거 디스코팡팡이네. 음악도 없고 디제이오빠도 없는데 세상이 빙빙빙 돈다.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 있는데도 계속 돈다. 침대와 내 몸이 하나가 되어 천길 낭떠러지 속으로 몸이 고꾸라진다.

  분명 뇌에 무슨 일이 일어 난 거야. 뇌 사진을 찍어 봐야 하나?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 거지? 불안과 공포가 커다란 파도가 되어 밀려들었다. 창밖에선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데 사진 찍으러 나가야 하는데 눈을 뜰 수가 없다. 검색해 보니 이런 경우 이석증, 메니에르병이 의심되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그 병이, 이석증으로 고생 중이라는 지인의 소식을 전해 듣고 영혼 없는 위로를 하곤 했던 그 병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하루아침에 세상이 멈춰 버렸다. 나는 걸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볼 수도 없었다.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디스코팡팡은 돌아갔다.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젖힐 때 말을 할 때도 머리는 움직였다. 뭔가를 씹을 때도 머리가 움직였다. 노트북의 글자를 보면 다시 어지러워졌고, 텔레비전의 빠른 화면 전환이나 자막들을 보면 어지러워졌다. 계속되는 어지러움 때문에 속은 메스껍고 토하기 직전의 상태가 반복해서 이어졌다. 멈추지 않는 디스코팡팡에 앉아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건강을 잃으면 세상이 끝나는구나. 8년 전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했을 때도 낫고 나면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겠다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나는 다시 또 이렇게 일상을 잃고 말았구나. 이번 사태는 몸에 이로운 음식들을 정해진 시간에 잘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잘 자고, 힘든 일이나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을 충분히 쉬어 주고... 이 단순하고 당연한 규칙을 지키지 않은 나의 잘못이 절대적이었다.

  하루를 꼬박 고생하고 다음 날 조금 일어설만하여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어지럼의 원인은 이석증이 가장 흔하고, 진단하는 데는 딕스-홀파이크 검사를 한다. 이 검사는 어지럼증 환자를 더욱더 어지럽게 머리를 움직이고 특정 자세를 취하게 하여 이석증 때문에 발생하는 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치료한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내 머리를 사정없이 잡고 흔들어 댔다. 어지러워서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나를 그렇게 흔들어 버릴 줄이야. 고통에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계속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을 보라고 하는데 눈이 떠져야 뜰 거 아녀? 고통스러운 검사 결과 나는 이석증이 맞고 왼쪽 귀의 평형기관인 세반고리관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내 다리보다 머리를 낮게 하여 왼쪽으로 돌아 눕게 했다. 그 순간 미치도록 심한 어지러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귀에서는 띠- 하는 이명과 함께 디스코팡팡은 다시 돌기 시작했다. 1분간 디스코팡팡을 타고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눕기 1분. 다시 디스코팡팡 1분. 일어나 앉았다가 오른쪽으로 눕기 1분. 이 동작을 3회 반복. 치료 방법은 단순하지만 나의 고통은 상상초월.

  치료 약도 따로 없고 며칠이 지나도 계속 어지러우면 치료받으러 다시 오라고 했다. 혹시 밤에 심한 어지러움이 다시 시작되면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앞으로 3일간은 눕지 말고 소파에 기대어 똑바로 천장을 본 자세로 자라고 했다. 눕지도 못하고 잠을 자야 했던 그 밤에 나는 눈물이 계속 났다. 불편한 자세 때문에 잠도 오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을 보면 다시 어지럽고 심지어 명상음악을 들어도 어지러웠다. 대금이라고 짐작되는 특정 악기 소리에 귀에서 띠- 소리가 나면서 통증이 생겼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밤, 그렇게 긴 긴 밤이 지나갔다.

  나의 지나간 세월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지금의 부모가 아닌 다른 분이 내 부모였으면 또 어떠했을까? 그때 나는 왜 시어머니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뒤돌아서 눈물만 조용히 흘려야 했을까? 권리는 없고 의무만 남은 맏며느리 맏딸 노릇 던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석증을 앓고 겪으면서 나의 살아온 지난날들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좋았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환희를 느꼈던 순간들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었다. 브런치작가가 되어 나의 이야기들을 어디엔가 남길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그러나 뭐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구나. 글을 올리려니 나는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고 나의 부족하고 거친 글솜씨에도 구독과 라이킷 눌러 주시는 독자님들께 재미있고 도움이 되며 쉬운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이석증이라는 새로운 질환도 경험했다. 세상의 모든 음악가 작가 무용가 도예가 그래픽디자이너 플로리스트 셰프 파티셰 미술가... 창작을 하는 그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 어려운 걸 해내셨지 말입니다. 나도 이제 욕심을 내려놓고 내 몸관리 하면서 어쩌다 집짓기 글 이어가야겠다. 잠 못 이루던 긴긴밤에 떠올랐던 나의 지난 세월 이야기. 첫사랑과 결혼에 성공한 나의 사랑이야기, 뼈에 사무치게 고생스러웠던 시월드, 나이 마흔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던 이야기... 어쩌다 집짓기 업데이트하면서 간간히 발행해 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