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으로 싸 온 샐러드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늘 그렇듯이 피아노 학원으로 열심히 향하던 발걸음이 오늘은 문득 도중에 멈추었다. 친구의 학원 앞에서였다. 지난달 아빠의 상에 조문 오지 못한 그녀가 미안함과 걱정을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오전에 보내왔지만 아직 답을 못한 차였다. 하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니다. 그저 말하고 싶다, 고 생각했다. 아빠를 보낸 슬픔이 아직 머물러 있는 집에서 말고, 직장에서 업무 관련 일 말고,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곳에서 그럴 만한 사람은 이 친구뿐이다. 어떤 음식이 당긴다면 그건 내 몸에서 그걸 원하는 거라 한다. 지금 나를 휘감는 이 충동은 바로 내 마음이 갈망하고 있어서일 거다. 재잘재잘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아직은 이른 오후, 피아노 학원에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 조용하게 연습에 몰입하는 점심시간을 정말이지 사랑하지만, 그렇지만 오늘은 일탈하련다.
까만 스니커즈의 앞머리가 방향을 틀었다. 바로 앞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사 들고 맞은편 2층 학원으로 올라갔다.
"원장님~~"
양손의 커피를 들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부르자, 역시 식사를 마치고 정리 중이던 원장님이 부지런한 손을 멈추고 이 쪽을 본다.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며 환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 퍼진다.
"어머나! 어서 와요~!"
사람을 반기는 얼굴을 '햇살 같다' 하더니 정말 그러하구나. 그녀가 햇살처럼 뿜어내는 빛과 온기가 그대로 내게 전해졌다. 공기반 소리반의 포근한 음성이 더해진 채로. 내동 헛헛하고 쓸쓸했던 가슴이 밝혀지고 데워지는 것을 감각한다. 지구가 천천히 태양을 향해 돌며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처럼. 모르긴 몰라도 그 태양을 받는 내 낯빛도 비포 에프터가 확실했으리라.
뒤늦은 문상을 받듯 아빠 얘기를 잠시 나눈 후 자연스레 근황 토크로 넘어갔다.
"나 요즘에 자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가 털어놓는 말에 내 귀가 반자동으로 쫑긋한다.
"읽는 책마다, 그 구절구절마다, 알고리즘마다 글을 쓰라고 하네."
아니 이거 내가 만날 겪는 오랜 증상인데? 다만 다른 점은, 그녀는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기 전인 지금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면서 써라, 써야 한다, 와 같은 신의 계시를 느끼는 듯한데, 나의 경우 글쓰기를 시작한 당시보다 2년이 흐른 지금에 되려 알고리즘의 잔소리가 더 크게 와닿는 중이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너무나도 얼결이었기 때문이다. 내재적 동기 따위는 없었다. 초등학생인 아이의 글쓰기 수업으로 만났던 선생님이 성인 글쓰기 프로젝트를 연다는 공지를 우연히 접했을 때 '어, 이 선생님이 뭐를 하시네?'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질렀던 것이다.(덕질의 무서운 점이다.) 줌강의 속에서 마치 어린 시절 웅변학원 연사처럼 '여러분도 브런치 작가 될 수 있어요! 팔자 바꿀 수 있어요!'를 강력하게 외치는, 오랜만에 머리 감은 선생님을 쳐다보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왜인지 격한 감동의 물결에 올라탄 나는, 주어진 숙제는 또 열심히 하는 성실 본능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브런지 작가까지 되었다. 오랜만에 '합격'이란 것을 한 이후, 탄력 받아 열심히 글을 써대기도 했고, 뭐 했다고 권태에 빠지기도 했다. 불붙어 신났다가 시들해졌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반복하며 어느새 2년이 되었다. 시작이 얼결이었던 것 치고는 징하게, 아니 꾸준하게 붙잡고 있다. (덕질의 선한 영향력이라 하겠다.)
그녀가 이어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요즘 사람들이 헐, 대박, 이런 류의 감탄사로 일관하는 것은 표현과 생각이 부족해서라고, 좋아하는 어떤 작가가 말했고 나 또한 그리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의말을 듣는 순간 딱히 다른 표현이랄 게 생각나지 않았다. 딱 '브런치 프로젝트'가 떠올랐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 마침 3기를 모집 중인 것인 것이다! 이런 우연이.
헐. 대박. 소오름.
그녀에게 완벽한 조건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써본 적 없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게다가 해당 프로젝트를 겪어봤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활동 중인(활발히라고는 안 했다) 전 수강생이자 현 브런치 작가가 옆에 있다. 광고인지 아닌지 미심쩍거나 먼 얘기처럼 와닿지 않는 후기가 아닌 찐 후기를 듣고 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는 내게 있어, 이 시골에서 책과 글과 아이들 집공부, 그리고 엄마 자신의 성장에 대해 공감하고 배우는 대화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친구다. 직장동료나 가족, 다른 친구들 포함 그 누구보다도 이런 주제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편한데 그 속에서 뭔가 영감을 꼭 얻게 되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다. 오늘 같은 날이 오려고 했던지, 우리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도 나누었더랬다. 서로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러면 글을 쓰고 책을 내면 좋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각자 뽑아낼 수(앗,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은..)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로, 그녀가 퇴사 후 첫 창업에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독서학원에서의 경험에 대해 쓰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서로 침 튀겨가며 신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원래 전공은 다소 상반된 분야이고, 미래에는 또 다른 분야의 꿈이 있는, 잠재된 이야깃거리가 참으로 많은 사람이다. 이런 그녀가 드디어 글쓰기에 발을 들이게 되었으니 내가 들뜨지 않고 배기겠냐 말이다. 나중에 그녀가 크게 되면 내가 머리 올려줬다고 생색 좀 내야겠다, 는 상상을 하니 홍홍거리며 웃음이 삐질 새어 나온다.
그날 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리고 있었다. 의도를 가지고 선택한 것이 아닌 선택된 영상에서 문득 내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핑계 대지 마세요. 그건 이유도 아니고, 핑계예요. 회피입니다.
(귀신보다 날카롭게 내 마음을 읽어버리는 이놈의 알고리즘 때문에 뜨끔해서 못살겠다.)
어제 그녀를 만난 이후로, '브런치 프로젝트'를 적재적소 적임자에게 소개했다는 뿌듯함이 컸지만, 한편으로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이물감처럼 남아 찜찜하던 차였다. 계속 달리면서제목도 모르는 영상 속 음성을 듣고 있자니그 실체가 점점 또렷해진다.
브런치 프로젝트 얘기가 나오기 전, 그녀가 먼저 근황으로 물었었다.
"글쓰기는 어떻게, 잘 되고 있어요?"
복직 후에 한 번 들렀을 때 내가 다짐하듯 말했었다. '결국(!) 복직했지만 놓지 않을 거다, 근무하면서 겪고 느끼는 일들을 글로 승화하겠다.' 그녀는 늘 그랬듯이 나의 결심과 의지를 응원했었다. 복직 네 달 차인 지금, 그러나 나는 그녀의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생각보다 잘 안되네요."
일단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매여있고, 저녁엔 운동하고 아이들과 보내고, 주말엔 피로를 풀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야...
참으로 합리적인 이유이며 사실이 아닌 게 없다. 그렇지만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생활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왜?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까. 안 맞는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INPF가, 이 짓 아니 이 직장에서 어쨌든 살아가려면 탈출구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나의 탈출구는 글쓰기임을 알았으니까. 살기 위해서,에 더하여 잘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그 다짐으로 연재까지 시작한 포부가 다 무색하다. 넉 달 동안 단 세 편의 글을 발행했을 뿐이다. 벌써 나태해진 건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매너리즘에 빠진 건가.
돌이켜보면 넉 달의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글쓰기의 매너리즘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는 매너리즘이 가당치도 않을 만큼 크고 큰일이 몰아서 일어났다. 마흔여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힘든 하반기를 보내고 있다 싶다.
그런데 이전과 다르다고 느끼는 신기한 점은,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윈도 화면을 사정없이 채우는 메모창처럼, 머리 위로 말풍선이 두둥실 뜨곤 하는 것이다.
'이거 글로 써야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적절한 구성과 제법 어그로를 끌 만한 제목까지 줄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실제 글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은 매번 애타고 아쉬웠지만, 이 놀라운 일, 안타까운 일을 꼭 글로 쓰리라, 재밌겠어,라는 생각을 절로 갖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위로이자 나만 아는 짜릿함인 것이다. 수줍은 나의 정체성. 비록 어디 내놓을 수는 없지만.
나의 선택과 글쓰기를 늘 응원하던 그녀의 가벼운 질문에 대답하는 내 심정은 더없이 무거웠다. 그녀에게 '브런치 프로젝트'와 글쓰기의 길을 자신 있게 권하고 있는 나는 정작, 과연 꾸준히 쓰는가. 여전히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막상 해보니 이래서 저래서 어렵더라, 하는 말들을 입으로 늘어놓으면서도 양심은 있어서 말꼬리는 흐려졌고 단전까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거 다 핑계입니다. 회피하지 마세요.'
헉헉거리며 달리는 내 귀에 반복적으로 일갈하던, 얄밉게 점잖은 음성에 정곡은 찔렸지만 찜찜함은 해소되었다. 일면 속이 다 시원하다.
다음 날 선물처럼 그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브런지 프로젝트 신청했어요. 저도 새로운 도전을 해봅니다. 이 가을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이렇게 글쓰기 시작할 수 있게 옆에서 자극을 주니 너무 감사해요."
흠.
브런치 작가 수석 합격 자리 있나요.
수석 합격 예정자의 메시지를 되뇌는 사이, 어느새 반대로 내가 자극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혼자 뿌듯한, 그러나 비밀리에 부쳤던 내 정체성을 이제 지켜볼 사람이 생겼으니(사이버 러버들은 예외로 하고) 이제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싶어진다.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을 동지 덕으로 핑계 대지 않고 정신 차리기 더없는 환경이니 말이다. 다시 달린다. 작심삼일로 끝났다면 또 작심하면 어떠랴. 고통스럽고 위축되는 나날마저 글로 풀다 보면 유들유들 단단해져 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