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대게

마흔아홉에 세상 떠난 그리운 아버지

by 배꽃


대게가 많이 나는 철이다. 아직은 바람 끝이 차가운데 거리는 인파로 넘친다. 줄지어선 식당에서는 대개를 찌느라 찜 솥에서는 ‘푸푸’ 소리를 내며 김이 새어 나온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정박해 놓은 크고 작은 배들도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 틈에 끼어 수시로 변하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긴다. 찜 솥에서 김이 솟구치는 식당들이 자꾸만 내 발길을 잡아끈다. 우리 일행도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대게 몇 마리를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손님이 다정스럽다.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여든아홉이고 할머니는 한 살 많은 아흔이다. 두 분 다 건강하게 보였고 생기가 넘쳐난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두 시간 걸리는 이곳까지 손수 운전을 하고 오셨다고 하셨다. 두 분은 미식가라고 한다. 전국을 누비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닌다고 하셨다. 노부부의 맞은편에 앉은 환갑이 넘은 두 딸도 부모님 자랑에 열을 올린다. 그 모습이 부럽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형제들도 아버지를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다닐 텐데 아쉽다.


나는 태백산 줄기의 한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탄을 캐는 광부였다. 지하, 수 천 수만리 들어가서 채탄 작업을 하는 일을 하면서 늘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탄광촌은 잠시 머물러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날이면 나와 네 명의 동생들을 태어난 순서대로 앉혀 놓고 연설을 하셨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하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


아버지는 이곳 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배운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자식들은 도회지로 나가서 자신의 꿈을 키우길 바랐다. 우리에게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자신에게 원망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하는 날이면 술을 더 많이 드셨다.


아버지는 바닷가 호젓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향 앞바다에는 갈마바람을 받으며 배들이 이리저리 떠다녔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살을 받으며 수시로 변하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랐다. 아버지가 고향마을을 떠날 때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태백산 줄기의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지점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짜기 마을에 열 식구가 터를 잡았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생활은 어른 아이 모두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세 살이었던 막내 삼촌까지 고사리 손을 보태야 했다. 산을 개간해서 천수답을 만들어야 했고 돌과 자갈을 골라내어 논과 밭을 개간해야 했다. 한 사람이라도 입을 덜기 위해서 할머니는 자식들을 일찍 분가시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배를 올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 마을에 산판 사업이 시작되면서 태백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자신이 뛰어놀던 바닷가로 우리 오 남매를 앞장 세우고 거닐고 싶어 했다. 탄광촌에서 두세 시간 정도면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애옥살이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휴가철이 되면 여행을 떠나는 이웃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사택의 사람들이 짐을 싸서 산과 바다로 휴가를 떠나면 탄광촌의 사택은 무채색의 정물화가 되었다. 그렇게도 떠들썩하던 사택은 적막에 쌓였고 우리 가족만이 세상에 덩그렇게 남아 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떠난 그 적막을 몹시 싫어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서 아버지가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가족 여행을 준비했다. 능력이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봉고차를 빌려서 여덟 식구가 차에 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네 명의 동생들과 나를 태운 남편이 운전대에 앉았다. 해안선을 따라 동해 쪽으로 움직였다. 아버지의 눈은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 그리움과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러고 계셨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아버지의 고향에 닿았다.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서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외로워 보였지만 외롭게 보이지 않았다. 바다를 거니는 아버지의 그 충만한 모습은 세상 어떤 모습보다 행복해 보였다.


우리 가족은 바닷가 대게식당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찜통 안에는 온몸을 쫙 펼친 채 배가 하늘과 마주하고 있는 대게가 보였다. 게는 희붐한 김 속에서 먹음직하게 누워있었다. 아버지는 대게를 너무나 맛있게 드셨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입에 넣으면 부드러우면서 착착 감기고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대게는 음식 중의 음식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에는 넣지 않고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모습에 흐뭇해하셨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매달려 웃고 떠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아버지는 이듬해 겨울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자식을 볼 때나 여행을 함께 하는 가족을 만날 때 나는 그들이 너무나 부럽다. 오늘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아버지가 유난히 그리운 날이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짧은 생애를 사셨는지 너무나 슬프다. 딱 하루, 아니 한 시간, 십 분이라도 좋겠다. 아버지가 잠시라도 내 눈앞에 나타나서 그렇게도 맛있게 드시던 대게 다리를 뜯을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이라도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게를 먹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추켜올리던 아버지 생전의 모습이 가슴 밑바닥에서 자꾸만 치밀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