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살롱 드 프로방스의 기차역에 내린 사람은 달랑 우리 두 명뿐이다. 만약 내가 진정한 여행꾼이었다면 이런 쓸쓸함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오히려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더 없는 곳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자동차 여행에 부풀어서 원피스를 입을까, 바지를 입을까, 를 두고 즐거운 갈등을 했었으니까,
마르세유 역에서 다행히 당일에도 열차표를 구할 수는 있었다. 원래 계획한 대로였다면 엑상 프로방스로 가야 했지만 자동차 여행이 좌절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예약한 호텔이 있는 살롱 드 프로방스로 오게 된 것이다.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오면서 나는 자동차 여행의 불편한 점을 죄다 모아서 나를 위로하였다.
누군가는 자동차 뒷문으로 강도가 들어왔다고 했어, 또 누군가는 주차장이 아닌 곳에 잠시 주차했다가 어마하게 비싼 딱지를 뗐다고도 했지. 아마 내가 지금 기차가 아닌 자동차 여행을 하고 있다면 프로방스 경치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더 많이 바라보고 있었을 거야,
어쨌든 자가 최면치료는 효과를 보았다. 좌석이 텅텅 빈 기차를 오붓하게 타고 오면서 오늘 입금된 렌트비라면 택시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기차에서 우리 둘만 달랑 내릴 때만 해도 거리가 이렇게 한적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프랑스 사람들은 휴일이면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역 앞, 광장에는 사람들은커녕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도 없는 유령의 도시 같았다. 텅 빈 기차역 앞에서 또 한 번 여행의 위기가 감지되었다.
오늘은 토요일, 사람들은 모든 생업을 잠시 미루고 휴일을 즐기고 있는 날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민의 발인 시내버스까지 운행을 중단할 줄은 몰랐다. 남편은 우버 택시를 불렀지만 그조차 이곳까지 올 택시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외곽의 한적한 곳이었다. 처음부터 자동차 여행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주차장이 넓고 고속도로와 접근성이 좋은 곳을 선택하다 보니 시내와는 거리가 먼 곳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게 된 것이다.
국내 면허증을 챙기지 않은 남편의 실수는 도미노처럼 우리의 계획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결국 텅 빈 시골역 앞에서 영혼이 없는 사람들처럼 앉아있게 만들었다.
내 앞에 있는 두 개의 트렁크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고 바람에 날리는 원피스 자락이 민망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구두 말고 운동화를 신을 걸, 가방에서 주섬주섬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었다. 망연하게 앉아서 오지도 않는 빈 택시를 기다리다가고된 행군을 해야 될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이다. 이 답답하고 우울한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갈 것인지. 해가 질까 봐 두렵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각자 책임을 분담하였다. 남편은 기차와 호텔 예약, 자동차 운전등 주로 교통편을 맡았고 나는 현지에서 지출하는 자질구레한 현금의 관리를 맡았다. 둘이서 하는 여행이지만 우리의 리더는 당연히 남편이었다. 지금 우리 팀의 리더는 나보다 더 망연자실하고 있다. 리더가 없는 팀은 지금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텅 빈 역 앞에 덩그러니 놓인 우리의 가방
오늘 아침, 자동차 렌트회사에서 위기를 넘기던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난관을 극복할 의지조차 없이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여행의 신은 우리를 길거리에 그냥 버려두지 않았다. 서툴지만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청년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이쯤에서는 ``할렐루야``가 터져도 무관하다. 청년은 남편이 전하는 상황을 다행히 알아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택시회사를 수소문하여 도움을 주었다.
택시기사에게 기존 요금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주고도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나 했는지 모른다. 지도에서 본 위치와는 달리 역에서 호텔까지의 거리는 걸어서는 도무지 올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푹신한 소파와 깔끔한 침구가 덮여 있는 침대를 바라보면서 텅 빈 역사 앞에서 노숙을 걱정해야만 했던 조금 전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살롱 드 프로방스는 어찌하여 우리의 여행지로 선택되었는지, 가이드 북을 보다가 '한국인이 드문 여행지'라고 설명한 것이 눈에 띄었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프랑스의 시골 동네에서 여행의 낭만을 즐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한국인이 가지 않는 곳은 다 이유가 있었다.
한적한 살롱 드 프로방스의 구 도시
살롱드 프로방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살았던 곳이다. 구 도시에는 그의 조각상이 있고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도 있다. 하지만 관광지답지 않게 여전히 사람들은 뜸하고 더구나 거리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온 사람도 아마 우리뿐 인 것 같다. 오래된 성당과 잘 꾸며놓은 정원이 있지만 적막하기만 하다. 사람이 드문 박물관도 을씨년스럽다.
오늘 하루는마치 롤러코스트를 탄 기분이다. 우리 부부의프로방스 여행 계획을 듣고
''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걱정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이 말이 하필 15세기 예언자인 노스트라다무스가 묻힌 동네에서 실현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라는 말도 실현이 되었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솜털구름같이 하얀 이불이 깔린 푹신한 침대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죽은듯이 잠을 자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