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조언
'맹인전문 마사지'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전신 마사지를 받고 나면 몸에 뭉친 근육이 풀릴 것이라며 아들은 마사지 숍 앞에 나를 내려 주었다. 남편 곁에서 굳은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며 며칠을 꼬박 밤을 세웠더니 온몸이 아프다.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다.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요즘 병간호를 하느라..."
어느 아픈 부분을 말하기보다 상황을 말해주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전문가의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나는 마치 수습생이라도 된 것처럼 하나하나 그의 손길을 암기했다. 척추는 저렇게 내려오면서 궁굴리는구나. 주로 엄지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이 지압을 하는군, 정강이는 손바닥으로 쓸어내듯이... 오늘 밤부터 당장 남편에게 해 줘야겠다.
따뜻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마주 앉았다. 우리 둘만 빼고 카페 안의 사람들은 모두 들떠있는 표정이다. 실내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하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집안에 트리를 장식했는데 올해는 어쩌면 트리를 세우지 못할 것 같다.
아들이 말한다.
"아빠는 재활만 열심히 하면 완치가 되는 병이에요 앞으로 긴 시간 간병을 해야 할 텐데 지금처럼은 절대 안 돼요 엄마 건강도 생각하셔야 돼요"
아들은 아빠의 병간호를 하다가 엄마가 지쳐서 쓰러질까 봐 걱정을 한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온 가족이 우울하고 일상의 리듬이 깨져서 결국에는 환자보다 더 병이 깊어지는 걸 많이 보았다고 한다.
"아빠가 병원에 계실 때는 의사나 간호사를 믿고 맡겨요. 간병인도 있으니 엄마가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전처럼 꾸준히 운동도 하고 식사도 잘하셔야 해요 아빠가 나으신 뒤 엄마가 아프거나 지금보다 더 늙어버리면 두 분 노후의 삶이 피폐해질 거예요.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굳은 몸이 하루빨리 돌아오려면 한 순간도 주무르는 걸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남편의 손과 발인 내가 쉬면 훗 날 남편이 힘들어지게 될까 봐 몸을 쉴 수가 없었다.
남편이 입원을 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 간다. 그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집안에 겨우 화분만 들여놨을 뿐. 아직 창문에는 여름 커튼이 그대로 매달려 있다. 말로는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몸무게는 줄고 의욕이 없다. 내 몸이 상한 만큼 남편이 회복되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간병하는 사람이 건강해야 환자도 그 에너지를 받아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 전혀 뜻밖의 상황에 부딪친 우리 가족이 우왕좌왕하면 또 다른 불행과 마주 할 수 있다. 각자 제 위치에서 흐트러지지 말고 시간을 잘 분배해서 간호를 하자고 한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걱정했는데 내 집에 유비와 같은 전략가가 있는 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슬기롭게 대처하자. 테레사 수녀님도 병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너희가 건강해야 환자들을 도울 수 있으니 음식을 잘 먹고 표정을 밝게 하라고 " 가난과 절제를 순명하는 수녀님조차도 이러한데 나 역시 아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겠다.
아들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남편의 병이 회복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그날, 우리 가족 모두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맞이해야 한다.
뭐든 서둘지 않는 게 좋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는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긴 병에도 지치지 않도록 나를 관리해야겠다.
ㆍ우울한 생각은 지우자
ㆍ많이 자고 잘 먹자
ㆍ누구의 도움이든 기꺼이 받아들이자
ㆍ운동을 하자.
아들의 조언을 위안 삼아 마음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