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하루
초저녁부터 밤이 어떻게 깊어가는지 얕아지는지 모르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숨 쉬는 것만 빼면 온몸은 나무관속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다를 게 없다. 낮에 너무 무리했던 모양이다. 제철 만나 왕성하게 자라는 풀들을 뽑아내고 주변 정리를 하느라 있는 힘을 다 쏟았다.
어느새 아침이 돌아왔는지 알람보다 더 정확한 소리가 잠든 귀를 깨운다. 피곤한 몸이라고 귀까지 꽉 닫힌 건 아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리들을 접수 중이다. 등짝은 바닥에 딱 붙었고 머리, 팔, 다리, 허리 모두 같은 느낌이다. 손끝도 까딱하기 싫은 아침이다. 밤이 좀 더 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이 시간이 꼭두새벽이었으면 좋겠다.
“꼬끼오 오. 꼬끼오 오.” 옆집 닭 울음소리는 일정하다. 팔분음표 두 개 사분음표 하나 이분음표 하나로 마지막을 길게 빼는 독창이다. 닭소리에 이어 멀리서 “뻐꾹뻐꾹” 뻐꾸기도 몇 차례 화음을 넣는다. “짹짹 짹짹” 작은 새소리도 떼창을 부르니 그 소리도 크게 들린다. 굵고 넓은 저음으로 부엉이 소리도 한 번씩 끼어든다. 강아지의 “깨갱깨갱” 징징거리는 소리와 사이사이 굵게 한 마디씩 “컹컹” 울리는 어미개소리. “딱딱 딱딱 탁탁 탁탁” 빠르게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까지. 묘한 음을 한마디 툭 던지고 “퍼드득”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큰 새소리. 배경음익이 된 “졸졸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 자발적으로 모여든 자연의 소리가 합창으로 나를 깨운다.
생기 넘치는 자연의 소리에 힘을 얻고 정신을 차려 몇 시나 되었을까. 뻑뻑한 눈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짹짹거리는 저 작은 새들과 끝까지 꼬끼오 부르짖는 옆집 닭소리는 언제부터 저렇게 목청을 높였을까. 죽은 듯하던 내가 알아채기까지 일찍부터 소리쳐 불렀을 것이다. 이렇게 시골의 아침은 시작된다.
농부들은 아침 서늘할 때 논둑과 밭고랑사이로 다니며 작물들과 눈 맞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의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터 나갈 준비를 하거나 아침운동으로 산중턱을 올라가고 있을 때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 귀한 시간을 가만히 누워서 맞을 순 없다. 창가 의자에 앉아 유리창 너머 자연에게로 눈을 돌린다. 아침이슬방울이 맺힌 잔디 위로 청개구리 한 마리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늦게 나타나 “꺄악 꺄악” 자기 존재를 알리는 까마귀 소리와 옥수숫대를 살짝 흔들고 지나가는 조용한 바람. 동쪽 먼산 자락엔 하얀 운무가 걸쳐있고 그 뒷배경은 볼그레하다. 지금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여기는 동쪽보다 십분 늦게 해가 뜨고 십분 늦게 해가 지는 서쪽이다. 아침은 조금 늦게 열리지만 해 지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지니 동쪽이나 서쪽이나 자연이 주는 혜택은 어디에 있어도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