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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유서

오늘도 나는 살았습니다.

1. 아는 얼굴 마주하기.

by 오롯하게

몸이 자꾸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축 처진 개구리 뒷다리처럼 늘어지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온종일 이불속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가도, 이내 찌뿌둥하게 몸을 일으켜 이불을 털고 이를 닦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게 되는 건, 그럼에도 살아야겠다는 삶에 대한 희망일까요 혹은 그저 넘어지기 직전에 반드시 몸을 일으키고야마는 오뚜기 같은 관성일까요. 어쩌면 지나온 32년의 시간들 중 가장 고독한 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의아하긴 합니다. 남들에게 말하거나 기대지 않은, 자갈밭처럼 자비없는 순간들을 꿋꿋하게 혼자서 기어 나온 무릎에 베긴 굳은살 덕분일까요, 혹은 그럼에도 이 고독의 순간이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는 확신 때문일까요.

삶은 늘 파도에 파도에, 파도를 거듭하는 듯합니다. 모래성만 한 파도에도 죽겠다며 발버둥 치던 나는 지금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18평 아파트만큼의 파도에 허우적대고 있을 겁니다. 지난한 시간, 내가 성장하는 동안에 나를 덮칠 고난들도 함께 크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만약 누군가 알려줬다면 이 파도를 조금은 더 쉽게 부슬 수도 있었을까요.

고독해질수록, 숨이 턱턱 막혀올수록 나는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떠올립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라든지 따뜻한 물에 하는 샤워라든지, 나를 웃게 하는 그 사람의 장난들이나 외로움도 고독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지난날 나의 꿈들. 그런 것들을 떠올립니다. 세상이 빙하보다도 차가운 줄 모르고 뜨겁기만 했던 열정들과, 그 열정이 평생 동안 날 덥힐 것이라는 맹목적인 희망, 설렘들.

아무것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잠에만 들려 이불을 끌어안을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러 집 밖을 나섭니다. 말이라도 하고 아는 얼굴들을 마주하기라도 해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그러는 듯합니다. 유난히 버거운 오늘도 겨우 이불을 벗어나 커피에 얼음을 잔뜩 넣어 마시고, 따듯한 물에 몸을 씻어 내리고 아는 얼굴을 마주하러 나왔습니다. 아는 얼굴을 기다릴 카페에는 꼬릿 한 치즈냄새가 가득입니다.


오늘도 나는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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