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바로 옆에 창이 있다. 눈을 뜨고 몸을 반쯤 일으켜 밖을 내다보면 그날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다. 비가 적은 오월의 아침은 투명하고 서늘하다. 세탁기에 주섬주섬 세탁물을 넣고 마당으로 나가서 맨발에 이슬을 적시며 꽃들의 아침에 슬그머니 끼어든다. 꽃들은 졸인 잼처럼 응축된 진한 색으로 피어나서 날이 갈수록 점점 순해진다. 저러다가 결국에는 투명해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다. 바람은 서늘해도 등에 닿는 햇살은 따가워서 그만 들어가서 자외선 차단제라도 발라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주저앉아 풀섶을 뒤지고 가지를 헤치며 행여 놓친 봉오리가 있는지, 숨은 열매가 있는지 아침 점고를 하느라 아침식사가 늦어지기가 다반사다.
주방 창문 밑에는 바질 싹이 빼곡한 화분들이 담벼락에 나란히 기대어 산다. 그 아래 가을이면 빨간 열매가 조로롱 달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주목 한 그루가 있는데 그 주변이 언제나 골칫거리다. 수돗가 옆이라 발길이 많이 가는 곳이고 정원용 호스와 대야와 바가지 등으로 어수선한데다가 해마다 온갖 새로운 식물들을 새로 심어 테스트하는 곳이다 보니 그야말로 야단법석에 중구난방이다. 올해 그곳에 터를 잡고 있는 아이들만 꼽아봐도 라일락, 상사화, 옥잠화, 청화 쑥부쟁이, 크리스마스로즈, 민트, 타임, 로즈마리. 라난큘러스, 달리아 등등 숨이 찬데 남편은 그곳에 양귀비 씨앗을 뭉텅이로 뿌렸다. 결론은 초록세상. 나는 아침마다 양귀비를 두어 줌씩 뽑아서 풀숲에 던지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옆집과 우리 집 사이는 문살만 있는 주철 담장이 전부다. 우리 집이 그 댁보다 위쪽에 있어서 이름뿐인 담장 너머 옆집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봤자 잔디밭과 의자, 빨래가 전부인데도 나름 조심한다고 담장 곁에 갈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쩌다 다가가도 옆집 마당으로 눈길이 가지 않도록 마음을 쓴다. 그래도 조금 가려볼까 하고 두어 해 전에 찔레 덩굴도 심고 장미도 심었다. 이제는 무성하게 잘 자라 장미와 찔레가 있는 곳은 제법 꽃담이 생겨 가려졌는데 서운한 건 꽃들이 옆집을 보고 핀다는 것이다. 물론 꽃이 절정에 달하는 요즘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피어나서 내게도 꽃을 보여주지만 꽃이 피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어째 옆집에서 더 잘 보이는 위치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것이지 일부러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니 이해해달라고 자기들이 먼저 알고 이쁜 짓을 하는 것인지. 이런 걸 두고 꽃들이 사람보다 낫다고 해야 하나?
올해 마당이 비좁게 느껴지는 건 모두 부엽토 탓이라고 한다. 지난 가을에 산에서 걷어온 부엽토를 이불 삼아 겨울을 난 식물들은 봄이 되자 놀랄만큼 왕성하게 자라더니 거대한 꽃들을 보여준다. 모란과 작약 중에는 아이들 얼굴만한 크기도 여럿 보이고 장미와 양귀비도 작년 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커다란 꽃을 피운다. 꽃이 크고 화사한 것은 좋으나 너무 크고 무거운 나머지 고개를 들고 서 있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적당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비가 내리면 활짝 피어있던 작약과 장미들은 빗물을 머금고 무거워진 고개를 숙이지만 봉오리였던 것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활짝 피어난다. 비가 오는 게 즐거운 이유의 절반 이상은 비가 그친 후의 청아한 마당 풍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빗방울이 올라앉은 모란과 장미의 잎과 꽃송이가 어여쁘다.
올해도 호박을 심었다. 마디 호박이라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벌써 주렁주렁 달려서 꽃이 보인다. 흉물이었던 자주색 고무 다라에 부엽토를 듬뿍 담아 심었더니 얼마나 잘 자라는지. 미운 고무 다라는 아마도 화수분으로 환골탈태할지도 모르겠다. 바질도 빼곡하게 돋아났으니 이제는 솎을 때가 되었다. 몇 뿌리 뽑아서 토마토 파스타 위에 얹었다. 상추는 어느새 뻣뻣해져서 다시 심어야 할 때가 되었고 가지 꽃이 피고 토마토도 달리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돌봐야 모두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오경아의 '정원 생활자'를 읽고 있다. 나무와 꽃과 풀 이야기다. 잘못 알고 있던 사실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토마토와 당근을 함께 심으면 토마토 열매를 공격하는 곤충들을 막을 수 있다든가 블루베리에 소나무 잎을 덮어주면 블루베리가 자라기 좋은 산도를 가진 토양이 된다는 것, 메리골드를 심으면 잎채소들을 달팽이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대목을 보면 소리 높여서 남편에게 읽어주기도 한다. 마당에 앉아서 정원 이야기를 읽다가 한 바퀴 돌면 분홍 장미가 있는 곳에서는 오래전 엄마가 쓰던 분 냄새가 나고, 노란 장미가 있는 곳에서는 잘 익은 와인 냄새가 난다. 그을린 얼굴과 손은 분 정도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숨이 나오지만 별도리가 없다. 와인은 찾아보면 한두 병쯤 있을 것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두서없는 생각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끊임없이 기대하고 원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또 그만큼 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마당이 있어서 다행이다. 장미가 피어있는 마당에서 기대는 더 빛나고 포기는 쉽다.
꽃과 야채를 기르는 일이 누가 시켰거나 그 일이 아니면 안 된다거나 했다면 이처럼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씨앗을 뿌려 싹이 난 어린잎들에 물을 주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궁금해지고 그래서 들여다봐지는 일, 충분히 먹을 만큼 자랐는데도 아까워서 시기를 놓쳐버리고는 차라리 잘 됐다고 즐거워하는 일, 잎을 뜯어서 식탁에 올리는 일들이 모두 선물 같다. 뒷덜미가 볕에 그을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채소들 사이에 삐죽이 솟아난 잡초들을 뽑아내느라 손톱 사이에 흙이 끼어들고 접은 허리를 펼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지만 당분간 이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아마도 안할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요즘 우리 부부는 집에서 나가야 좀 쉴 수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래서 새벽에 집을 나가 자동차에 스스로를 가두고 물이 빠져나가버린 서해안 어디쯤에 서서 그만 버려두고 온 내 작은 마당을 그리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 종일 자동차 뒷좌석에서 굴러다닌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그래도 가끔은 익숙한 것에서 떠나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이야기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어수선하지만 내 집, 내 방의 책상과 의자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내 음식 솜씨에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고, 가뭄에 물 주고 잡초를 뽑아내느라 허리가 아프긴 해도 이토록 고요하고 느긋한 공기가 흐르는 마당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집을 비우기라도 하는 날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마당으로 나가서 시든 장미를 자르고 씨방을 맺은 양귀비 가지도 자르고 웃자란 수레국화도 뽑아버린다. 바구니에 서너 번 꽃과 가지와 풀을 담아 풀숲에 던져버리고 그늘에 앉으면 내게 제일 필요한 건 고요와 침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 곳곳에 그것들이 놓여 있어 기쁘기 그지없다. 그것도 공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