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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가슴 Jul 04. 2019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와 탄성력

권력관계 속 희생자의 탄성력(彈性力)

베시 헤드, 정소영 옮김, 《권력의 문제》, 창비, 2018


 베시 헤드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너무 기쁜 소식이 있었다.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가 번역되어서 나온 것이다! 《권력의 문제》가 이전의 책인 《비구름 모일 때》와 《마루》에 비하여 난해하긴 하지만 읽어야 할 책인 것은 확실하다.


이전 감상문 - 베시 헤드의 『비구름이 모일 때』와 관습 : https://brunch.co.kr/@mtom/17


http://www.changbi.com/books/77493?board_id=11399


 먼저,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는 자전적 소설이다. 베시 헤드의 삶과 소설 속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점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쫓겨나 망명을 온 상황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내가 베시 헤드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 책은 쉽게 읽히진 않았다. 왜냐하면 소설 속 주인공인 엘리자베스가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서 심각할 정도로 정신착란에 빠져서 분열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긴장감과 더불어 엘리자베스라는 캐릭터의 붕괴를 생생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에게 정 붙이면서 읽던 독자로서는 꽤나 불쾌한 경험이다.


 베시 헤드가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과연 서술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섬세하게, 그리고 균열감 있게 다룬다. 신경증에 시달리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볼 때 베시 헤드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기분으로 읽으면 좀 더 읽기 쉬운 것 같다. 그녀는 계속 삶을 살아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이 몇 가지 요소만 제외한다면, 베시 헤드의 자서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베시 헤드와 엘리자베스를 하나의 인물로 상정해서 글을 계속 쓸 작정이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본문 36 페이지에서 발췌


 ‘작품 해설’에서 지적했듯이 베시 헤드의 책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베시 헤드의 문장이 주는 은근한 들뜸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녀의 책은 사람에게 변화할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열기를 전해준다. 그래도 말해보자면 베시 헤드는 《권력의 문제》에서 그동안 억압받아 온 희생자가 권력관계에 대응하여 변형시켜면서 달라질 역학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체계 속에서 희생당했고 그녀가 권력에 의해서 억압받은 희생자인 것은 맞으나 그녀는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평범한 인간’이다.  



권력과 사랑, 상실과 희생이라는, 드러나지 않지만 고통스럽고 보편적인 이 질문들이 어떻게 해서 순진하기만 한 이런 풍토에서 생겨나게 되었을까? p139


 다시 말하자면 그녀는 아무도 경악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고통에 대해 말하고 그 고통을 안고 있던 희생자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녀는 ‘아프리카’를 의인화하는데, 모든 답은 ‘아프리카’에게 있다고 진술한다. 그녀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아프리카에게 물으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경멸과 적대감, 그리고 차가운 학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어떤 세력이 아프리카를 고통으로 빠뜨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신의 섭리도 찾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이 고문당할 때 목소리로 신을 찾았지만 두 눈으로 인간이 악의 근원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악의 무리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역사적 서술 방식으로는 권력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권력에게 물음으로서 희생자가 어떻게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표시하려고 한다.  


 “이건 이번 생에서 내가 얻어내야 하는 상이예요. 인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본문 53 페이지에서 발췌


 희생자가 얻어내야 하는 우애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녀는 희생자 속에 있는 파괴적인 용암을 말하면서도 우애를 여전히 주장한다. 우애, 애정,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는 정(愛)이라는 단어가 좀 더 적합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베시 헤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연결 관계에서 인간성과 공동체의 복원을 시작한다.


 먼저 공동 밭이라는 배경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들 뒤에는 수년 동안 가뭄이 지속되어 먹을 것이고 희망이고 아무것도 없던 비참한 굶주림의 나날이 쌓여 있어요. 그런데 앞에는 반은 사막이라 할 곳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절망과 그 고된 작업이 지식을 통해 조금씩 덜어지는 마법 같은 세상이 있는 거예요. p117  


 소설 속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모든 사람이 구경하면서 지나갈 밭을 시험 삼아 운영한다. 공동 밭은 일종의 실험의 장인데, 어떤 작물이 상품성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온 농업계 학자들이 모종을 심는 방법 등을 제시하지만 곧 밭은 마을 사람들의 의견으로 채워진다. 마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씨앗을 얻어다가 엘리자베스에게 쥐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국에서 온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것을 구경하고 모종을 같이 심은 영국인도 영국과는 다르게 자라서 신기해한다. 같은 씨앗이지만 풍토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결실이 맺는 것이다. 이것은 마법이다.



 그녀의 마당에서 펼쳐지는 마법의 세계를 뒤로 한 채 그녀는 자신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고뇌한다. 3년 동안 그녀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쎌로과 댄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고통받는다. 그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하고 그들의 영혼은 엘리자베스에게 곧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온갖 고문으로 그녀가 힘을 잃도록 만들어서 죽음을 부추긴다. 모든 면에서 그녀는 망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그녀는 밭에 나가서 식물을 돌보고 아이에게 죽을 끓여준다.



모든 면에서 망가지고 있음을 인식할 때조차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건강함과 통제력을 어떻게든 다시 찾아보려는 열렬한 노력으로 간극과 구멍을 메워가며 여전히 일상적인 일을 반복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p234~5  


 그녀가 고통받은 것은 영혼의 분열 때문이었다. 그녀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베시 헤드는 부처를 통해서 열락하려고 하는데, 사실 부처라는 이름만 빌려온 것 같다. 그녀는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방식에 대해서 거부감을 드러낸다. 예수의 길을 상상하여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방식에 대해서 지루해한다. 그녀는 온갖 고문을 받지만 어떤 길을 택하지 않는데, 각자는 각자의 방식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남의 방식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뭔가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하면서 극복한다. 그녀는 생명력이 싹 틔우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밭으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린다. 사실 소설 속에서 엘리자베스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권력관계는 묘하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치지 때문에 경계하고 싶지만 경계할 수 없다. 권력이란 남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힘은 권력을 지닌 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분명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세계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억압과 폭력을 통해서 사람들을 가두려고 한다. 이것이 표면으로 드러난 세계의 모습이라면 베시 헤드는 여기에서 더 들어가서 이러한 관계가 희생자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탐구한다.  


희생자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유연하고 자유로운 존재예요. 끊임없이 법률을 생각해내고 거짓을 지어낼 필요가 없거든요. 그것 그를 가둬둔 자가 하는 일이죠. 그들이 수갑과 억압을 만들어내요. 희생자는 그냥 그런 걸 떠안을 뿐이고요. p119  


 수세기 동안 악이 진행되면서 용의주도하게 고통을 가해 온 권력은 희생자에게 악한 상황을 경악하거나 수치스럽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권력과 희생자가 아무도 경악하거나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희생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인을 무지하다고, 게으르다고 욕하는 서양인의 시각을 통해서 베시 헤드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대해서 서술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권력자가 희생자를 억압하려고 하는 현상에서 더 들어가서 희생자의 내면에 대해서 탐구한 것처럼, 희생자의 현상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



 희생자의 인류애는 베시 헤드가 이 책을 통해서 드러내려고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인 것 같다. 베시 헤드의 인류애는 놀랍게도 고통 속에서 시작된다. 베시 헤드는 권력은 인간에게 존속된 것이 아니라 메두사, 다시 말해 고통에 존속된 것이라고 본다. 소설 속에서 쎌로의 아내로 등장하는 메두사가 등장하여 엘리자베스를 고문하는데, 엘리자베스는 메두사를 통해서 선과 악이 고통 속에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권력관계를 유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가해자와 다르게 희생자는 고통 속에서 자기 통제를 배웠다.


“절대 죽은 세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에만 매진하게 하소서.”

                              본문 143 페이지에서 발췌


 베시 헤드와 엘리자베스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이다. 고통과 억압 속에서 뒤틀렸지만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결단력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재건을 가능케 한다고 보는 것 같다. 폐쇄적인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마저 가둔 권력자과 다르게 유연한 희생자가 세상을 건설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프리카에게 물어야 할 것이고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희생자는 마법을 부릴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녀는 선도, 악도, 고통도, 신도 아니라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아주 당연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말한다. 나는 베시 헤드가 보여주는 생명력에 대한 존경심이 진심으로 좋다. 그녀의 방식도 너무 좋다. 그녀는 자기방어적인 가해자에게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희생자가 지닌 인간의 힘을 보여준다. 나는 이것이 희생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창조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은 계속되는 폭력 속에서 타자를 향해 또 다른 권력관계를 만들어 분출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힘을 쏟는다. 각자의 에너지는 한 곳으로 모여서 그들이 속한 환경 자체를 변화시킨다. 새로운 기운이 치솟아나는 결말은 언제나 즐겁다.


베시 헤드, 정소영 옮김, 《권력의 문제》, 창비, 2018


창비 사이트 : http://www.changbi.com/books/77493?board_id=11399

구매 사이트 :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4835433&tab=introduction&DA=LB2&q=%EA%B6%8C%EB%A0%A5%EC%9D%98%20%EB%AC%B8%EC%A0%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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