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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가슴 Aug 13. 2019

똑똑한 아이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훼손하는 이유 ⓵

아이는 어른의 패턴을 읽는다

아이가 똑똑하다는 것은 그의 거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준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폐쇄적일수록 아이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제물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이가 똑똑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셈에 능하거나 말하는 걸 좋아하거나 글 써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거나 외국어에 흥미 있어 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말해주는 것을 좋아하거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똑똑한 아이란 어른들의 속사정을 일찍이 알아버린 아이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위와 같이 성장한 아이가 많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는 ‘철든 아이’들이 많다. 어른들은 아이가 철든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가끔은 아이에게 미안해하기도 한다. 대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아이가 성장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나는 아이는 자신의 아이다움을 포기하고 철이 일찍 드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 자체가 발단되어 어떤 사단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게 성장한 것이 굉장히 큰일처럼 느껴진다.


 지금부터 똑똑한 아이가 불운한 운명의 굴레에 휘말리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똑똑한 아이는 어른들의 속사정을 아는 체한다. 어른들은 똑똑한 아이에게 무언가에 대해 침묵하거나 어른으로서의 체면을 차리지 위해 노력했던 걸 그만둔다. 사실 아이가 어른들의 속사정을 알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사회를 움직이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에 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아이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 필요한 까닭이나 법을 통해서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발달 단계 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더 높은 차원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사정이란 대게 여러 사회 제도와 문화에 얽혀 있는 것들일 것이고 아이는 이것을 이해할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아이가 어른들의 속사정에 대해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어른들이 실태에 대한 침묵을 깨고 아이에게 말하기 시작해서 아이가 그것을 잊지 아니한 것에 불과하다.



 어른들의 침묵을 깰 만큼 똑똑한 아이에겐 다음과 같은 수식어가 붙을 확률이 높다.


어른스럽다, 의젓하다, 듬직하다, 얌전하다, 참하다, 책임감이 강하다, 그래도 네가 낫다, 알아서 잘 컸다, 손이 덜 간다, 집을 잘 지키고 있는다, 아이가 순해서 편하다, 아이가 도리어 위로해준다, 어른 도움 없이도 ~한다, 혼자서도 ~한다.


 몇 가지 수식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실제로 그것이 의미 있는 칭찬일 수 있으나, 위와 같은 수식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하게 분류할 수 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과도하게 무언가를 요구하는데 아이가 똑똑하여 어른의 기대에 맞춰 행동할 때 어른들이 기뻐하면서 아이에게 이런 수식어를 사용한다면, 아이에게 주어진 위와 같은 수식어가 얼마나 이상한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른들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하여 주기적으로 어른 없이 아이가 혼자서 집에 몇 시간씩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아이가 혼자서도 집에 잘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이가 혼자서 몇 시간씩 있는 것은 아이에게 무리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지만 아이가 참아낸 적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계속 아이가 그 행동을 할 것을 권한다. 아이는 혼자서 있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괴로워하다가 결국 어떤 것을 인정한다. 자신이 혼자 있어야지 어른이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어른과 자신의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게 된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어른과의 관계에서는 조건이 있다고 짐작한다. 어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른이 내건 어떤 조건을 이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똑똑한 아이에게 주어진 비극적인 운명이다. 똑똑한 아이는 어른과의 반복적인 접촉에서 되풀이되는 패턴을 읽는다. 처음에는 어른이 내색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느낄 수 있는 어른의 속뜻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발견한 패턴에 알맞게 반응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그중에서 어른에게 가장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전략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고 어른은 이를 편하게 여기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아이에게 꼬투리 잡힌 어른의 속사정은 솟구쳐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똑똑한 아이가 단 한 번이라도 어른의 속사정을 캐내는데 성공하면 아이는 곧바로 어른의 세계로 초대된다.


 어른이 왜 아이에게 자기 속내를 들켰는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어른의 속사정을 알게 된 똑똑한 아이가 겪게 될 불운한 운명이 더 중요하다.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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