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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란드 Jun 02. 2020

코로나로 바뀐 일상

2학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난생처음 겪게 되는 생활들

  2020년이라는 한 해는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봤을 때 질병에 관한 사건으로 굉장히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육아휴직 중인 나는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며 이 커다란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역사적 순간에 그 안에서 개인으로서 어떤 일들을 했었고, 어떻게 그 사건을 보았는지 기록하는 것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맞이한 이 시기의 기록이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최초로 코로나 바이러스(공식 명칭 COVID-19) 감염 보고가 있은 후 2020년 1월 초부터 중국에서 조금씩 증가 추세를 보이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설날을 앞둔 1월 23일 중국에서 우한시를 봉쇄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그 시점을 전후로 하여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 사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지속적으로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고 있었고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연일 폭발적으로 환자가 발생하였고 우한시에서는 병원의 수용 능력이 한계치를 넘어서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도 발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환자 수가 급증하지 않고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통제 범위 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별로 인식하지 않아 거리에 나가보면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1월에는 사람들이 밀집한 곳을 제외하고는 야외나 아이 학원 수업 시 그리고 아내의 직장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1월까지 국내는 11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2월 17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7만여 명 그리고 국내 확진자가 30명까지 늘었지만 완치하여 퇴원하는 사람도 10명이었고 완치를 담당했던 의사는 기저질환이 없으면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치료도 잘 된다는 기사도 읽기도 했다.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방역이 잘 되어 이렇게 지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월 18일 대구에서 국내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후 종교 단체를 위주로 한 전국적인 지역사회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국내에서도 중국에서의 코로나 바이러스 급증에도 잘 안 쓰던 마스크를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였고 마스크 수요 증가로 인한 온라인 마스크 가격 폭등 및 품절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사둔 마스크와 작년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의 등하교 시 사용하기 위해 사둔 마스크로 지낼 수 있었다. 마스크를 사려고 해도 가격이 너무 폭등해서 구매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와 학원을 안 나가게 되고 나는 휴직 상태여서 사람들이 밀집된 지역에 갈 일이 적고 아내만 출퇴근 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마스크 사용량이 많지 않았다. 

  2월 24일 인근 대형 마트에 아이와 물건을 사러 갔는데 개장 전부터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마스크가 있을까 하고 일찍부터 온 것이다. 개장 후 들어가 보니 대부분의 마스크 물량이 대구 경북지역으로 보내지고 있어서 들어온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아동용 소형 마스크는 있어서 몇 매 사고 손 세정제는 여유 있게 팔고 있어서 살 수 있었다. 뉴스에서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창고형 대형 마트에 새벽부터 줄을 서는 기사도 나오고 있었다.

  2월 말부터는 국내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학교 개학은 3월 9일로 일주일 연기된다고 2월 23일에 발표되었고 아이들의 학원도 2월 마지막 주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3월에도 국내 확진자 수가 하루 500명 전후로 발생하면서 봄이 오는 바깥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 길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국가적으로는 사람들 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였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내도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집에서 근무를 하였다. 외부에서 사회생활하는 사람들도 회식이나 회의 등 모임을 지양하였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은 집에서 대부분 생활하였고 놀이터나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학생들도 보기 드물었다. 외식이나 외출을 하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집에서 조리하여 먹고 생필품 등 물건 구매도 배달을 많이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외출 시에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였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는 매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었다. 외출 후에는 손을 깨끗이 씻는 버릇이 모두 일상화되어서 환절기에 생기는 감기나 기타 질병 발생 비율도 많이 줄어드는 현상도 생겼다. 

  전 세계적인 사태로 인해 감염 우려로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 수요도 감소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동과 외출과 외식이 감소하면서 소비가 줄고 이에 따라 자영업 매출에 타격을 줘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고 관련 업종의 직장인들도 무급휴직과 직장을 잃게 되는 경우도 발생되었다.


  3월 12일 WHO(세계 보건기구)가 질병 경계 수위 최고 단계인 팬데믹을 선언하였다. 국내의 바이러스 환자 급증 위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학교의 개학은 3월 23일에서 4월 6일로 그리고 다시 4월 9일로 4차에 걸쳐 연기가 되었다. 국내는 이 시점에 일일 확진자 수가 100여 명 대로 내려갔지만 아직도 그 수가 적지 않기도 하고 전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전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학부모들은 대부분 등교를 원하지 않고 있었다. 

  3월 말이 될수록 국내 확진자 수는 대구 경북에서는 감소 추세였으나 수도권 등 지역에서는 점차 증가되고 있었고 특히 요양원이나 병원, 종교시설 등에서의 집단감염이 자주 발생되었다. 

  3월부터는 중국과 국내에서는 확진자가 감소 추세로 돌아섰으나 유럽과 미국 등 지역에서 엄청난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매일매일 외신 뉴스를 보고 확진자 증가 도표를 보면서 국내의 문제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과 이에 따른 사회 경제적 문제가 대두될 것 같은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4월이 되었다. 평상시 보다 일찍 핀 벚꽃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내뿜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늘은 전 세계적 바이러스 유행에 따라 공장 가동이 줄어든 탓인지 미세먼지도 없는 맑은 하늘을 매일 연출하고 있다. 

  4월 4일 오랜만에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니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시 안내 문자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들어오는데 시에서 나온 방역차가 서 있고 방역 요원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옆 동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였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상황들이 이해가 되었다. 시에서는 아파트 전체 동에 대하여 방역을 실시하였고 확진자가 발생한 인접 두 개의 동 주민에게 무료로 마스크를 두 매씩 배부해 주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세대 내 안내방송을 통하여 불필요한 단지 내 방문 등을 자제해 달라고 하였다. 

  평상시에는 그래도 반려동물과 산책하고 가벼운 산보를 하며 운동하던 주민들도 전혀 보이지 않아서 아파트 단지가 재난영화 속 모습처럼 조금 섬뜩한 기분까지 들 정도로 적막해 보였다. 그래도 4월 들어서는 계속 확진자의 수가 100명대 이내로 발생하여 어느 정도 방역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월 둘째 주로 들어서면서 국내 확진자의 숫자가 50명대 이내로 발생되기 시작하였고 4월 10일부터는 30명대 이내로 줄어들었다. 이때 발생하는 많은 수의 신규 확진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 한창 확진자가 뒤늦게 폭증하고 있는 지역에서 들어오는 해외 입국자들이었다. 4월 9일 온라인 개학이 고3과 중3을 시작으로 시작되었다.


  4월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달이다. 나는 감염 위험이 있기에 아이를 집에 두고 정식 선거일 전 주 금요일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 인근 주민센터로 가서 투표를 하였는데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는 뉴스와 달리 투표 대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서 그렇게 많이 기다리지 않고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대기하는 줄이 길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이 서로 거리 두기를 하지 않고 가까이 붙어 서 있어서 이 부분이 좀 우려스러웠다. 투표장에 입장하기 전에는 체온을 재고 비닐장갑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투표하는 사람들과 투표장을 운영하는 모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처음 겪는 투표소 풍경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선거 전에 많이 줄어들어서 선거를 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정식 선거일인 4월 15일에는 내가 투표할 때와 다르게 철저히 투표하려는 대기자들의 간격을 2m 이상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선거 장소인 아이의 초등학교에 투표하러 온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간격을 유지하며 질서 정연하게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게 보였다. 확진자는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면서 4월 중 후반부터는 10명대 이하로 발생하는 날이 많아졌다.


  대부분 확진자는 해외유입 사례였는데 그러다가 5월 6일 용인에서 4주 만에 지역감염 확진자가 1명 발생되면서 확진자 숫자가 소폭 증가하게 되었다. 이 지역감염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침이 전환된 시점에 발생되었다. 이때부터 ‘이태원 클럽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건’이 커지면서 확진자 수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등교 개학 일자가 1주씩 더 연기가 되었다.

  5월 20일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등교일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첫 학생 등교였다. 이 날 고등학생 확진자가 발생하여 인근 지역의 고등학생들의 귀가 조치가 내려지는 등 혼란한 모습을 보였다. 5월 27일은 고2, 중3, 초등 1~2학년과 유치원생들의 등교 및 등원이 있었는데, 이날도 일부 지역에서 학생 확진자가 발생하여 해당 지역의 학생들이 귀가 조치되었다. 또한 당일 ‘부천 물류센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건’으로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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