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는 과정
퇴근하고 저녁이면 무작정 나선다. 설거지하고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도 함께다. 자전거 손잡이에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쓰레기를 버리고 자전거 위에 앉아 강변길에 오르면 비로소 숨쉬기가 편안해진다. 보이는 것도 화사하니 변하고 피부에 와닿는 바람도 시원해진다. 상쾌한 기분에 페달을 열심히 구른다. 해가 기울어 발갛게 물드는 지금이 너무나 좋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이 순간이 존재하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다. 강변길에는 부쩍 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들이 뛰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얼른 자전거에서 내려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은 모두 뛰는데 나 혼자 자전거를 타도 되나? 저들 속에 동참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자전거라도 열심히 타면, 페달링을 쉬지 않고 하면 운동량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쌤쌤이 될지도 모르지 하며 달리기 욕구를 억눌러본다.
한참 달리다 보면 해 질 녘 아름다운 풍경에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해 질 녘이기 때문에,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달려오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여럿이 같이 오고 같이 떠나는 사람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 나만 혼자인가? 정녕 저들 중 아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나 혼자 뭐 하는 거지? 저들은 같이 오고 같이 가는데 나만 혼자인가? 아니다, 찬찬히 보면 나처럼 혼자서 가는 이도 많다. 나 같은 이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가는 이 오는 이 모두 아는 이가 없다. 아는 이가 없는 곳에서 드는 외로움. 예전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이 낯선 도시에서 아무도 아는 이가 없어서 철저히 타인으로서 배척되어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고향에 돌아가버린다는 이야기. 그리고 남은 사람 이야기. 그들과 내가 다른 게 무언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혼자임을 인지하고 떠나고 돌아간다는 결말이지만 나는 혼자임을 벌써 오래전부터 알고 깨달은 상태인데도 돌아갈 데가 없다. 돌아갈 데가 없어서 혼자 자전거 타고 뛰고 걷는다. 강변길을 쭉 따라가다가 강 건너 진주성이 나타나면 그제야 핸들을 돌린다. 돌아가는 길 돌아가야 하는구나. 왔던 길 그대로 가기 싫어 다리를 건너 맞은편으로 가기도 하고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사람. 지나가면서 만나는 풍경. 나는 그들을 보며 반갑고 예쁘다를 떠올리지만 그들도 과연 그러할까? 나이 들면서 만나는 풍경, 만나는 사람 반가워 감탄하지만 그들은 점점 더 차가워질 뿐 내게 먼저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을 알고 기대하지 않지만 외로움이 짙어지는걸 나는 어찌하지 못한다. 그저 감내할 뿐이다. 더 이상 내가 강변길에 나타나지 않아도 강변길 풍경은 그대로일 테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외로움이 사무쳐 가슴이 텅 비어 버리는 느낌마저 든다.
집에 가면 그런 외로움 채워줄 사람, 가족이 있다. 가족과 만나기 위해 나는 외로운 길, 오랜 강변길을 달렸는지도 모른다. 대문 열어 아빠 왔다 하고 들어서면 들리는 가족의 대답. 그 대답을 듣기 위해 강변길에 나가고 돌아왔음이라.
가족과 함께 있어도 가끔 그러한 외로움 언제든 만나기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시간 해 질 녘,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