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현장,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정중규

by 정중규

의료 민·형사 소송 현황 비교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

필수의료 현장, 어떻게 살릴 것인가?

2026.3.18. 오후3시. 국회도서관 대강당

의료사고 민·형사 부담에 소심해지는 의사들…"필수의료 붕괴 부른다"

의협, 의료 민·형사 소송 현황 분석 및 개선 공청회

“연간 3000건에 달하는 민사 분쟁…필수의료 기피 심화”

“무과실 보상 제도…필수의료부터 단계적 적용해야”


필수의료 붕괴의 주범으로 ‘의료사고를 둘러싼 과도한 사법 리스크’가 지목됐다. 형사처벌과 민사소송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의료진의 방어적 진료를 유도하고, 결국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과실 보상제 도입과 형사책임 완화 등 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종희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필수의료 현장, 어떻게 살릴 것인가’ 공청회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매우 큰 편”이라며 “형사적 리스크뿐 아니라 민사적으로도 예외가 폭넓게 인정되면서 의료진에게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에 따르면 연평균 735명의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되며, 이 중 약 40명은 기소돼 재판에 넘겨지고 약 20명은 실제 유죄 판결을 받는다.


민사소송 역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료사고 관련 민사 1심 판결은 2020년 이후 매년 700~900건 수준이며, 이 가운데 약 절반이 환자 측 청구 인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환자 인용률은 53.8%로 나타났다.


여기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사건(연 2000건 내외)까지 포함하면 의료진은 매년 약 3000건에 달하는 민사 분쟁에 노출되는 셈이다. 서 교수는 “이 같은 구조가 필수의료 기피, 과잉진료, 소극진료로 이어지며 결국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와의 비교도 제시됐다. 일본은 의료사고 소송 건수가 2004년 1110건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해 2023년에는 610건 수준으로 줄었고, 형사기소율도 2005년 52%에서 2015년 12%로 낮아졌다. 소송 대신 화해로 종결되는 비율이 높고, 의료 대체분쟁해결(ADR)등 재판 외 분쟁 해결 절차가 활성화된 것이 특징이다.


뉴질랜드는 무과실 손해배상 제도인 ACC를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를 보상하고 있다. 의사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가 운영하는 기금으로 보상이 이뤄지며, 이 제도가 적용되는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은 제한된다.


서 교수는 “뉴질랜드 ACC와 같은 무과실 보상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산과·응급의료 등 필수의료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의료사고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환자안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어은경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사고가 아닌 ‘환자안전사건’이라는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안전 강화 시스템에서 핵심은 과실 판단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닌, 사건 발생 직후 환자와 가족의 손실을 신속히 공적으로 보상하고, 동시에 사건의 원인을 학습 가능한 형태로 조사하는 것”이라며 “보상은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신속하고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환자안전사건 대응을 위해 즉각적인 소통과 공적 보상, 독립적인 원인 조사체계 구축, 전담 코디네이터 운영, 환자안전청 설립, 교육·면허관리기구 분리 등 시스템 중심의 대응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이사장은 "현재 진료 현장은 불가항력적 결과까지 개인에게 민·형사 책임이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극심한 위축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특히 최근 논의되는 개정안 가운데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책임보험을 의무화할 경우 진료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우선적으로 따지는 구조가 형성돼, 오히려 의료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형사책임 완화와 관련한 조항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중과실 여부를 기준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방식은 의료진이 매 순간 스스로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결국 방어적 진료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개정안에 포함된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과 관련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의료 전문가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구조에서는 의료현장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심의 결과가 기계적인 기소로 이어질 경우, 의료진이 사법적 판단을 충분히 받을 기회조차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이사장은 "의료행위를 필수와 비필수로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모든 의료는 본질적으로 필수의료"라며 "제도 설계 과정에서 이 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료의 본질적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은 환자 보호와 의료진 보호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이번 개정안은 처음 도입되는 제도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제도적 첫발을 떼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신 과장은 중과실 기준과 관련해 "최근 5년간 의료사고 판례를 분석해 12개 유형을 도출한 것"이라며 "의료계는 축소를, 환자단체는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양측 요구를 절충한 결과"라고 밝혔다.

또 "투약 오류나 수혈 오류처럼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주의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과실 범위 설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개정안에 포함된 '사과·설명 제도'에 대해 "의료진이 사고 이후 환자에게 설명과 유감 표현을 하더라도 해당 발언이 형사재판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한 것"이라며 "의료진의 소통 회피를 줄이고 분쟁의 민·형사 확대를 막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의 핵심으로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확대 ▲기소 제한 특례 도입 ▲전문 심의기구 신설 등을 제시했다.

신 과장은 "기존에는 분만사고에 한해 적용되던 무과실 보상을 필수의료 영역으로 확대했다"며 "환자 보호와 동시에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에서 중과실이 없고 손해배상이 이뤄진 경우에는 사망사고라도 기소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필수의료 인력의 형사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또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 대해 "수사기관의 전문성 한계를 보완하고 판단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과실 여부와 필수의료 해당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책임보험 의무화와 관련해서는 정부도 "장기적으로 공적 보상체계 전환 가능성은 열려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보험 기반 구조가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 과장은 "뉴질랜드와 같은 전면적 국가보상 모델은 재정 부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우선 책임보험 기반으로 데이터를 축적한 뒤 제도 전환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재호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새로운 개정안(13일 국회 복지위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안)에 따르면 (형사 책임을 지게 되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료 행위를 정의하고 있는데 저는 이 점에 대해서는 걱정이다"라며 "왜냐하면 의료 사건에서 법원이 의료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중과실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안에 열거되는 내용들을 단순 과실로 봐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많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법에서 중과실이라고 정의하면 판결에서 중과실이라고 한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법에서 중과실이라고 선언하면 법원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거부할 수 없다"라며 "중과실이 아닌 한 형사 책임은 면제한다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중과실을 법에서 정의했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필수의료 현장, 어떻게 살릴 것인가?’ 주제로 열린 공청회는 의료 민·형사 소송 현황을 비교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박균택 의원은 개회사에서 "의료진이 사명감을 갖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국민이 의료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법적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영상 축사에서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에 대해서 의료인 개인이 무거운 민형사적 책임을 지는 구조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라며 "의료 현장의 문제를 개별 의료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이를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응답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로운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축사에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은 소신 있게 진료하고 환자는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의료사고로 인한 부담을 완화하고 환자의 피해 회복을 지원하는 안전망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의료계의 법안 관련 지적에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법안 취지를 강조했다


박희승 의원은 "지난 13일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어렵게 통과됐다"며 "이번 개정안은 필수의료 현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으로는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 의무 ▲중대한 과실이 없는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감면 등이 포함된다.


특히 박 의원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 전액을 지급하거나 책임보험을 통해 보상이 이뤄진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점은 매우 파격적인 규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진이 형사적 부담 때문에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실상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이 이번 개정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안 심의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있었고 일부 부족한 점도 있을 수 있다"며 "오늘 공청회를 통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충분히 논의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과 환자 권익 보호가 균형 있게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입법 전망과 관련해서는 "향후 법제사법위원회 논의가 남아 있지만, 법사위는 기본적으로 자구 수정 권한이 중심인 만큼 큰 틀에서 변경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사실상 법안은 확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정부 실무진과 여야, 시민사회·환자단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도출된 결과"라며 입법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