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독(中毒)’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중독은 약물중독과 행위중독 등 2가지로 분류되는데 특히 약물중독환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 통계에 따르면 마약사범수가 연 2만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치료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해 재범률이 40%에 이르고 있는 것. 이에 약물중독 치료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1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학교 내 예방교육은 음주·흡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위원회에서 국제 질병분류의 개정판인 ICD-11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등재하며 중독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중독을 아직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중독전문가들과 언론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차원의 예방·지원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의원(국민의힘)과 헬스경향은 오늘(18일) ‘국내 중독치료 활성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공동개최했다.
이종성 의원은 “중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며 “특히 최근 마약사범이 연 2만건을 넘어서고 있지만 40% 가까운 재발률을 보이고 있는 만큼 토론회를 통해 구체적인 대안이 모색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이정근 부회장은 “중독은 치료와 회복서비스가 필요한 정신행동질환이지만 치료 인식은 낮다”며 “중독문제가 우리 사회에 더욱 만연해지기 전에 이번 토론회를 통해 중독치료 제도의 문제와 개선방안이 논의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1부 주제발표와 2부 지정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1부 주제발표 좌장은 서울의대 예방의학과 박병주 명예교수가 맡았으며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이해국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가 ‘국내 중독문제와 치료체계 현황 및 범보건의료 치료활성화 전략 제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해국 교수는 “중독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알코올▲도박 ▲인터넷 등 대부분의 중독양상이 크게 증가했다며 그중에서도 최근 약마약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마약사범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보호서비스 제공기관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턱없이 부족한 정부 예산과 존재하는 법조차 마약중독환자들의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또 치료기관의 행위중독 유형에 담당기관이 분산돼 있어 치료가 중단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연숙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2022년 마약투약사범 중 5%(8489명 중 421명)만 치료·보호를 받았다.
반면 마약중독환자가 많은 미국의 경우 ‘기소전 검찰치료의료프로그램’ ‘약물법원’을 통해 처벌 전 치료와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치료’와 ‘재활’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일원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복귀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국 교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행위중독에 따라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담당기관이 각계 부처로 분산돼 있는 것”이라며 “우선 복지부를 필두로 ‘중독치료기술개발지원센터(가칭)’을 설치해 치료·재활을 일원화하고 ‘중독치료회복지원법’ 제정을 통해 중독 회복서비스 지원이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2부에서는 박병주 명예교수를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전성훈 법제이사,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과 장석용 교수, 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정재훈 회장,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신권철 교수, 보건복지부 김승일 정신건강관리과장이 토론패널로 참석해 중독치료 활성화 방안에 관한 의견을 개진했다.
먼저 대한의사협회 전성훈 법제이사는 현재 중독 예방·관리 업무가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어 협력체계가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도박중독을 예로 들었다. 실제로 도박중독은 뇌의 질병임이 명확히 규명됐고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질병분류표준기준에서 질병코드까지 부여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적극적인 개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과 장석용 교수 역시 ‘콘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했다. 장석용 교수는 “우리나라는 중독유형에 따라 담당부처가 다르다”며 “현재 중독치료의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대범한 정책을 펼쳐 치료와 재활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중독환자 치료 프로토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는 “국제사회는 마약사범에 대한 형사볍 제도를 ‘치료의 관문’으로 삼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처벌 후 치료를 진행하고 제대로 된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약뿐 아니라 여러 중독문제는 가정환경을 악화시키고 대물림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만큼 미국, 일본의 제도를 차용해 사회복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정재훈 회장은 의료현장에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중독환자는 다른 질환군과 달리 별도의 전문 병동이 필요지만 별도의 보상체계가 없어 의료진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병원 운영상 어려움이 많다는 것. 또 그는 중독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중독전문병원이 운영 가능한 정도의 보상체계가 최소한 구축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보건복지부 김승일 정신건강관리과장은 “복지부 역시 중독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현재 치료보호대상자수 확대와 전문병원에 관한 보상체계수립을 위해 재정당국과 협의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