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정기 세미나 정부의 탈시설정책과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이해 2021.11.24. 오후3시. 에파타성당
발제 : 탈시설 정책의 한계와 나아갈 방향 / 정중규(한국가톨릭장애인사도직협의회 연구위원회 위원)
저는 탈시설운동가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장애인관 곧 복음적 관점에서 장애인 시설들을 비판해왔는데, 하필 그 대표적 시설들이 꽃동네 대구시립희망원 같이 가톨릭계이기에 비판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지난 2016년 자비의 특별희년을 맞아 6월 12일 장애인과 병자들을 위한 주일 강론에서 ‘병자와 장애인들을 안 보이는 곳에 숨기거나 수용소에 가두지 말고 사회에서 함께 살도록 하라’고 권고하셨듯이, 제게 있어 탈시설운동은 장애인 인권운동이면서 동시에 그런 복음정신의 실천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저는 탈시설 로드맵에 대체적으로 찬성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길로 나아가야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른바 탈시설운동에 함께한지가 근 이십년이 되어가지만, 최근에 문재인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 발표와 관련해 저를 찾아와 눈물로 호소하시는 발달장애인 어머니들의 딱한 사정을 들으며 제 개인적으론 장애인 탈시설 문제를 지체장애인 위주로만 생각해 발달장애인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체장애인들의 경우 시설에서 나와 사회 속에 살아가기가 비록 제반여건 때문에 아직은 힘들지만 그래도 시스템적인 지원만 된다면 사회에 통합해 자립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는 되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 특히 중증장애를 가졌을 경우 아직은 참으로 힘들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2일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하 로드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로드맵을 보면 그동안 탈시설 관련 요구들을 죄다 담아내다 보니 그러하겠지만, 대단히 장황스럽기조차 한데 그만큼 탈시설이란 작업이 힘든 과제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선 탈시설 로드맵을 보면 2022년~2024년까지 시범사업 추진 2025년부터 지역사회 거주전환 지원 2041년까지 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로 거주 전환 마무리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또한 탈시설 로드맵 핵심 과제로 1. 장애인이 자신의 주거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겠습니다. 2. 탄탄한 자립경로 구축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겠습니다. 3. 독립생활 위한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겠습니다. 4. 거주시설을 지역사회 자립을 촉진시키는 기관으로 바꾸겠습니다. 5. 머무는 동안 안전하고 자유로운 거주시설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6. 민간-공공 간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물론 로드맵에서 밝힌 탈시설 방향 관련 전반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며 그렇게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로드맵에서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곧 정책에도 소비자주의가 필요한데, 탈시설 관련 당사자들의 개별 상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은 지난 10월 6일 발표된 「보건복지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문(이하 입장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입장문’에서는 ‘로드맵’이 집중적인 돌봄과 보호가 필요함에도 지역사회 지원 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아 어려움에 놓여 있는 중증발달장애인, 최중증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보호의 책임을 결과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전가하는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장애인 탈시설화’ 이전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방안’부터 제시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면서, 장애인의 장애 특성, 생애주기 등에 따른 선택권 보장과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 수립과 특히 향후 ‘탈시설 로드맵’을 비롯한 사회복지정책 수립과 추진, 관련 법률 제정 및 개정 과정에서 해당 정책과 법률에 직접 영향을 받을 시설 이용이 절실한 중증발달장애인과 가족들, 사회복지 현장 종사자 등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함께 논의하여 진행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탈시설이 먼저냐 지원체계 마련이 먼저냐, 곧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양비론 같지만, ‘로드맵’과 ‘입장문’ 모두 탈시설 관련해 충분히 공감되는 고려해 볼 측면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양쪽 모두에게 문제해결중심의 공론화와 진정성을 지닌 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로드맵에서 특히 간과한 점이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24시간 케어가 필요한데, 1차적 돌봄자인 부모의 노령화 문제입니다. 마침 제게 호소를 하신 분들도 죄다 연로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로드맵의 사각지대에 처해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하고픈 것이 미국 포스트홈(Foster Home)제도처럼 발달장애인 특화된 전문 위탁가정 제도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 ‘정인이 학대 사건’ 등 아동 위탁가정에서의 반인권적 사건들 때문에 염려되는 바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시설 장애인 인권 관련 감시하는 미국의 P&A 같은 시스템으로 보완하면 될 것입니다.
정부는 저를 찾아온 발달장애인 어머니들의 호소 내용처럼 ‘최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봐 줄 시설을 찾지 못해 정신병원에 보내야만 하거나 그마저 견디지 못해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아픈 현실’을 목소리 큰 곳에만 귀 기울이는 정치적 판단으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류 인권발달사는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하나둘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은 서구에서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흑인은 미국 사회에서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동남아 이주민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발달장애인 어머니들로부터 듣는 말씀이 “우리 아이보다 하루 뒤에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장애 자녀를 놔두고 눈을 감을 수 없다는 호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제가 어릴 때 지체장애인의 부모들로부터 듣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와 지체장애인들의 부모들로부터는 그런 한탄을 듣지 않게 된 것은 그만큼 지체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은 거의 이뤄진 까닭일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외치는 ‘하루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소득보장체계 구축,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문화예술관광 향유권 요구 등을 담은 국가책임제’가 지금은 당장 실현 가능성 없는 무리한 요구 같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를 수십 년 전엔 지체장애인들의 요구였습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그런 과제는 미흡하지만 이제 거의 달성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회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문제를 가족에게만 책임을 지워선 안 되기에 궁극적으로는 발달장애인의 삶에 대한 국가책임제에 적극 찬성합니다. 아동보육에서의 금언 중에 아프리카 속담으로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하는데, 그런 정신으로 발달장애인의 삶도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로드맵도 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입장문도 그 원칙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면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교회에 요청드립니다. “각종 사회문제 투쟁현장에는 신부님들이 보이는데, 유독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외치는 인권투쟁 현장에서는 신부님들을 만날 수 없다”고 장애인들이 비판합니다. 사실 장애인들은 특수사목 사제들을 시설장으로만 만나게 됩니다. 이 시대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면 그분은 시설장 보다는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외치는 현장에 함께 하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스도교 장애인 사업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이제 대규모 시설 위주의 수용적 장애인 사업을 지양하고, 이제껏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쌓아온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과 경험을 모든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투신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엄상용 수사님께서 발표하신 애지람의 시설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 전환 발표문은 가톨릭 장애인복지의 나아갈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보여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와 함께 지난해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말씀드렸지만, 가톨릭의 특성이자 장점이 행정구역에 맞게 거의 동마다 본당이 있는데, 그런 각 본당마다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면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사실 대구교구 토마스본당의 경우 그런 공간을 제공하자 부모회와 같은 자발적인 모임이 만들어지고, 교리반도 운영되고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이 전례공동체의 일원으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그 자체로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에 촉진제가 될 것입니다. -------------------------------------------------------------------- 사회 : 정진모(연구위원회 위원장) 인사말 : 김재섭 신부(한가장 담당) 감사 인사 : 현동준(한가장 회장)
발제 1. 정부의 탈시설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이병훈 신부(들꽃마을 민들레공동체 원장) 2. 탈시설 그리고 어둠의 그림자 / 이기수 신부(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3. 시설장애인의 지역사화 거주 전환 / 엄상용 수사(애지람 원장) 4. 탈시설 로드랩과 발달장애인의 삶 / 홍기향(한국가톨릭발달장애부모회장) 5. 청각장애인으로서 바라는 정부시책 / 강명숙(청각장애인 당사자) 6. 탈시설 정책의 한계와 나아갈 방향 / 정중규(한가장연구위원회 위원)
수어통역 : 김경옥(인천시 수어통역센터), 김나형(제천시 수어통역센터), 신윤희(서울 에파타 성당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