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중규 Jul 17. 2024

'김정은 표창장' 받은 북 외교관 리일규 망명 /정중규

[단독 인터뷰]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리일규 참사 한국 망명…태영호 이후 최고위직

- 북한 고위층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김일성 나라'가 중심부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


리일규 “北 대미라인 한성렬 간첩 혐의 총살...지켜본 간부들 며칠 밥 못먹어…北외교관은 넥타이 맨 꽃제비...내 월급 0.3달러였다…김여정 2인자 아니다…북한엔 최고 존엄과 2500만명의 노예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여러 건 직접 썼던 엘리트 외교관은 왜 북한 체제를 포기했을까.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11월 망명한 리일규(52) 전 참사는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허황된 명분으로 핵·미사일 개발에 수억만금을 탕진하고 2500만 국민을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킨 김정은 체제를 더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리 전 참사는 “초기에는 핵·미사일 시험 성공 발표가 나면 긍지 같은 것을 느꼈다”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당장 먹을 걱정, 자식 공부시킬 걱정인 주민들이 오로지 핵·미사일에만 정신 팔린 지도부에 반감이 안 들겠나”라고 했다.


리 전 참사는 “북한 외무성 사람들은 ‘넥타이를 맨 꽃제비(거지)’”라며 “외무성에서 내 월급이 0.3달러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배급 등이 없는) 해외근무 때는 좀 더 주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며 “쿠바 참사 때 월급으로 500달러(약 69만원)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외교행낭을 이용해 불법 시가 담배 장사를 해서 부족한 돈을 보충했다”고도 했다.


리 전 참사는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선진 문화나 과학기술을 도입해 주고 싶다. 암흑의 땅에 광명을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싶다”고 했다.


14일 서울 한 호텔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한 리일규(52)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는 차분하고 온화한 인상이었다. 평양 말씨만 아니면 불과 8개월 전 사선(死線)을 넘어 귀순해온 북 관료란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반통일 2국가 정책’을 “민족의 넋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비판할 때는 단호했다.

◇뇌물 요구와 병 치료 거부에 결심


–왜 탈북을 생각했나.


“직접적 계기는 노력에 대한 불평등한 평가, 그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였다. 북한 외무성은 권세 있는 집안 자식들이 몰려 있다. 내 출신 성분, 사회 성분은 ‘사무(事務)’로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좋지 않다. 최하위 직급으로 입직해 성실하게 노력해 왔다. 그런데 2019년 8월 쿠바에 북한 식당을 내기 위해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지도과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다. 자금 여유가 부족해 ‘후에 보자’는 식으로 미뤘더니 앙심을 품고 나를 소환하려고 시도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업무 평가를 야박하게 했다.”


–그래서 결심했나.


“그러던 중 지난해 내가 경추 손상에 의한 신경 손상증을 앓게 돼 멕시코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외무성에 제기(요청)했다. 쿠바는 제재를 받아 의료 기기가 없어서다. 24시간도 안 돼 불허한다는 전보가 떨어졌다. 그때 격분해 ‘북한을 떠나려는 내 생각은 옳았다’고 확신했다. ‘김정은 표창장’을 거실에 걸어두셨던 부모님, 장인·장모님이 다 돌아가신 것도 결심에 일조했다.”


–탈북을 어떻게 계획했나.


“2023년 7월 중순부터 탈북을 심각하게 고민해 11월 초 실행했다. 그 3개월여간 7㎏이 빠졌다. ‘밥알이 모래를 씹는 것 같다’는 표현을 체험했다. 비행기표까지 사놓고 탈북 6시간 전 아내와 아이를 불러 내 결심을 알려줬다. ‘한국’이란 말은 안 하고, ‘외국에 나가 살자’고 했다.”


–북한은 여권을 다 대사관에 보관하게 하는데 비행기를 어떻게 탔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북한 당국이 그 방식을 사전 차단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 탈출하려는 분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 말할 수 없다. (쿠바) 공항 탑승구 앞에서 탑승을 기다린 1시간이 몇 년과 맞먹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가족을 보호해줄 것을 빌고 또 빌었다. 왜 인간이 종교를 믿는지 절감했다.”


◇김정은, 박근혜 당선에 충격


–김정은을 만나 봤나.


“차도 같이 마셔봤다. 김정은도 마주 앉아 보면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가까이서 보면 ‘혈압이 굉장히 높겠다’는 생각이 확 든다. 항시 얼굴이 술 마신 것처럼 얼마나 새빨간지 모른다. 화면에 나오는 것보다 더 붉다. 인디언 같다.”


–2022년 11월 딸 김주애를 공개했는데?


“김정은이 주애를 데리고 다닌 것은 (언론 공개) 한참 전의 일이다. 평양에서 제2자연과학원 아파트에 살았다. 주민 80% 이상이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안고 다녀야 하는 꼬마 때부터 김정은이 기분이 좋으면 ‘내가 공주를 보여주겠다’면서 주애를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김주애를 처음 공개했을 때는 신기했는데 열병식 같은 공식 국가 행사까지 데리고 다니니 거부감이 점차 들었다. 내가 한생 저 사람들의 발밑에서 온갖 수모를 받았는데 이제 내 자식이 또 저 어린 것 앞에 굽신거리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적잖은 북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후계자로 보나.


“개인적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절대 권위, 절대 숭배를 받으려면 신비함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노출시킬 대로 다 시키고 무슨 신비함이 있고 숭배감이 있겠는가.”


–북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나.


“2012년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잖나. 김정은이 그것을 보고 많이 충격을 받았다. 그때 김정은이 김평해 당 간부부장 겸 담당 비서에게 우리도 여자를 대대적으로 써야 이제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가 된다는 취지로 얘기를 했다.”


◇對美 라인 한성렬, 간부들 앞에서 공개 처형


–북미 회담에 외교부가 아닌 통일전선부가 나섰는데.


“김정일은 밤에 외무성에 전화를 많이 했다. 문건도 24시간 제한 없이 보고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부터 외무성에 걸려오던 전화가 줄었다. ‘밤 11시 이후 문건 보고는 하지 말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외무성의 권한과 발언권이 완전히 위축됐다.”


–왜 그런가.


“김정은이 집권 초기 외무성이 체제 유지에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고, 2016년 (태영호) 주영 공사 등 외교관들의 탈북이 이어졌다. 2017년 김정은이 직통전화를 외무성에 걸었는데 리용호 외무상과 김계관 제1부상이 다 못 받는 사고가 있었다. 김정은이 외무성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서 북미 회담을 통일전선부에 맡긴 것이다.”


–한성렬 미국 담당 부상과 리용호 외무상이 그 무렵 실각했는데?


“한성렬은 미국 간첩이란 혐의로 공개 처형됐다. 2019년 2월 12일인가 (평양 순안공항 인근의) 강건군관학교에 외무성 부국장 이상 간부들을 모아 놓고 총살 현장을 보게 했다. 나는 그때 쿠바 발령을 받느라고 빠졌다. 총살 현장을 본 사람들은 며칠 밥을 못 먹었다고 하더라. 리용호는 2019년 12월 비리 혐의를 받아 일가가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 주중 대사관 서기관의 횡령이 적발됐는데, 뇌물 받은 상급자들 조사하면서 리용호 이름이 나왔다. 김정은이 ‘얘가 뒤에서 이딴 짓이나 하니까 일을 제대로 못하는구나’ 하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2019년 12월 28~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 중 셋째날 리용호 비판을 반나절 했다. 거기 갔던 사람들이 ‘외무성 없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최선희 외무상 입지는 탄탄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최영림 전 총리의 수양딸이라서 그렇다느니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김계관 전 1부상의 영어 통역을 하면서 김계관이 끌어줘서 올라갔다. 말을 잘하고, 여자지만 주먹이 세다. 주먹이란 게 진짜 힘이 아니고,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신임이 파워다. 2018년 2월 연회에서 김정은이 최선희를 보고 ‘미국 담당 부상이 수고한다’고 했다. ‘부상이 아니라 국장’이라고 하니 김정은이 ‘야, 김평해(당 간부부장) 어디 갔어? 내가 여자들 쓰라고 한 게 언제인데, 이 능력 있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있어’라며 화를 냈다. 다음 날 최선희가 미국 담당 부상이 됐다.”


◇”김정은, 통일이란 한 가닥 희망마저 빼앗아”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원하나.


“북한 주민들은 한국 국민보다 더 통일을 갈망하고 열망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못살기 때문이다. 간부든 일반 주민이든 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할 때 뭔가 좀 나은 삶이 돼야 한다, 답은 통일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나 공유하는 생각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최소한 지금처럼 거지처럼 살지는 않을 것 아닌가.”


–김정은은 왜 ‘반통일’ 정책을 들고나왔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북한 주민들의 통일 갈망을 차단하려는 데 있다고 본다. 한류는 아무리 강한 통제와 처벌에도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소 선대들은 통일을 제1국사로 책정하고 통일 노선이나 남북 대화 등도 계속 마련하면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만은 감히 뺏지 못했는데 김정은은 이마저 무참히 뺏어버렸다.”


-북한 외교관 생활은 어땠나.


“부끄럽지만 북한 내 일부에서는 외무성 사람들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거지)’라고 부른다. 무역 일꾼이나 특수 기관 일꾼들에 비해 주머니에 돈은 없는데, 대외 활동을 하려면 고급 옷에 넥타이는 필수로 챙겨야 하니 그런 말이 돈다. 외무성 중남미, 아프리카·중동 부국장을 할 때 당세포비서도 겸하고 있어 월급으로 부국장 최고 노임인 북한돈 3000원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1달러가 북한돈 8000원 정도였으니 내 월급은 0.3달러 정도밖에 안 됐다.”


-해외 파견 근무 때는 어떠한가.


“해외에서는 월급을 달러로 받으니 조금 낫다. 쿠바 참사로 있을 때 월급이 500달러(약 69만원)였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사는 600~1000달러, 공사나 참사는 500~600달러, 서기관은 350~500달러 범위의 월급을 받는다.”


-그 돈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나.


“그러다 보니 북한의 해외 파견자들이 불법 장사를 한다고 전 세계적으로 언론에 나지 않았나. 불법 장사를 하는 가장 기본 이유는 외교관 수입이 너무 낮은 것과 관련된다. 해외에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북한에 갈 때 들고 간다. 쿠바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외교 특권을 이용해 1인당 외교 행낭에 150~200갑 정도 시가를 넣어 중국에 보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순이득은 1회당 1만5000~2만달러다. 쿠바는 시가 장사가 잘되다 보니 이를 통한 이윤만 가지고도 살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불법 시가 장사는 잠시 멈췄지만 최근 항공기 운항이 재개되면서 대대적으로 시가 장사를 다시 하고 있다.”


-장사를 못 하면 어쩌나.


“2019년 2월 외무성 국제기구국 군축 담당 과장이 간첩 혐의로 공개 처형됐다. 스위스를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스위스 같은 경우 불법 장사를 못 하는 데니까 돈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돈을 물 쓰듯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조사했다. 2019년 리용호 외무상의 숙청으로 이어진 주중 대사관 서기관의 횡령 사건 같은 경우, 비행기표 구매를 맡은 서기관이 북한에서 주는 돈을 받아서 대사관 앞 중국 여행사에서 예컨대 500달러짜리 표를 사면서 영수증은 1000달러로 끊고 자기 주머니에 500달러를 넣었다. 보위부 요원들 같은 경우 부수입이 필요하니까 뇌물로 충당하는 요원이 적지 않다.”


-급여만으로는 못 사나.


“북한 사회의 가장 취약한 측면이 노동에 대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보수가 없는 것이다. 대외경제성 등 무역 단위 파견자들은 연 2만~5만달러 정도 충성 자금 납부 과제도 있다. 김정은이 해외 파견자들의 불법행위 기사에 부담을 느껴 ‘당의 대외적 권위를 깎아내리는 행위’라며 강하게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 있다. 그러나 납부 과제는 무조건 수행하라니 파견 기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되 걸리지 않게 주의하라’는 식의 지시를 내려보내고 있다.”


-핵·미사일 시험은 어떻게 봤나.


“초기에는 핵·미사일 시험 성공 발표가 나면 긍지나 자부심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핵·미사일에 엄청난 자금이 투하된다고 사람들이 아는 순간부터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허황된 명분으로 핵미사일 개발에 수억만금을 탕진했다. 나라 경제를 황폐화하고 2500만 국민을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켰다. 노인분들은 ‘일제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힘들고 못사는 제도를 우리가 지켜서 뭐 하나. 정권도 민심이 이미 자기들을 떠나갔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공포정치의 도수를 높이는 것이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어떻게 봤나.


“오물 풍선에 대해 언급이나 평가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북한 출신인 것에 대해 유일하게 수치와 망신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오물 풍선은 북한 정권 스스로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다. 북한은 한국에서 북한 정권을 비방하며 날리는 전단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북한 사회의 행복한 실상이라든가 한국 사회의 부당함이라든가 내용이 담긴 전단으로 맞대응해야 논리에 맞을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나왔을까.


“개인적 견해로는 오물 풍선 살포 기획은 노동당 중앙위 통일전선부(현재는 10국으로 개칭), 집행은 총참모부 등 군부, 언론 보도는 선전선동부가 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기관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모두 국제사회의 흐름이나 관례, 외교 등에 대한 상식이 없고 오직 최고지도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무모함만 가지고 일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만약 외무성이 포함돼 있었더라면 이 정도로 몰상식하고 더러운 계선(界線)까지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김여정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는데?


“김여정은 이름만 빌려줬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여정도 참 안쓰럽다. 자기 이름이 온 세계가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오물 풍선 따위나 합리화하는 데 쓰이니까. 김여정의 위상과 파워가 어떻다든가 2인자, 3인자라든가 다 거짓말이다. 북한 사회 자체는 유일 통치다. ‘최고 존엄’ 외에는 다 노예일 뿐이다. 김여정 이름으로 나가는 담화라도 당에 과업을 줘서 기획한다. 김정은 방침을 받기 전에는 김여정도 그 문건을 못 본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통일이 된다는 가정이나 믿음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 우리는 언젠가는 고향에 가서 가족들한테 속죄도 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니까. 통일이 된다면 북한 사회에 선진 문화와 과학기술을 도입해 주고 싶다. 나도 북한에 있을 때는 나름 세계를 많이 돌아봐서 눈이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보니까 정말 촌놈이더라. 은행, 금융, 교통 규정 아무것도 모르고 자동 시스템도 아무 것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현충일 기념사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밝은 나라가 됐지만, 휴전선 이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의 땅이 됐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 암흑의 땅에 광명을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좀 생각해 보고 싶다.”


부친 따라 외국에서 청소년기… 평양외대 나와 쿠바 9년 근무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통일전선부 산하 무역 회사에서 일하던 부친을 따라 알제리와 쿠바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평양외국어학원(중고교 과정)에서 프랑스어를,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1999년 외무성에 입부했다. 2011년 9월~2016년 1월에 이어 2019년 4월~2023년 11월까지 쿠바에서만 총 9년 정도 근무했다.


1차 해외 파견 기간인 2013년 7월 쿠바에서 불법 무기를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 적발된 ‘청천강호’ 사건 해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정은 표창장’을 받았다. 2016년 2월~2019년 3월까지 약 3년 동안 평양에 들어가 외무성에서 아프리카·아랍, 중남미 지역 담당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를 지냈다. 두 번째 쿠바 파견 근무 기간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 저지였다.


*******************************************

“태영호 한국 성공담 검색하며 부러워해…함께 탁구 치던 사이”

태 “탁구 라이벌, 참 잘 왔어”


지난해 11월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해외 있을 때 저처럼 외무성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분들의 한국 정착 상황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적지 않게 했다”고 했다. 그는 “탈북자 언급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동료들과 탈북 외교관에 대한 얘기를 하지 못하는 대신 검색을 많이 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흥미 수준을 넘어 그들의 활동상과 생활 모습을 최대한 상세히 알기 위해 ‘연구’ 수준으로 찾아본다”고 했다.


리 참사는 특히 ‘탈북 1호 외교관’인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과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 소식을 많이 찾아봤다고 한다. 리 참사는 고 원장에 대해 “저와 연배 차이가 많이 나서 개인적으로는 모르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며 “한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걸 알았고 같은 국(외무성 6국) 출신 후배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태영호 전 의원과는 외무성 근무 시절 탁구를 같이 친 사이라고 한다. 리 참사는 “(태 전 의원) 탈북 이후 외무성 내 거의 모든 사람이 ‘태영호처럼 탄탄대로를 걷는 사람이 왜 갔을까’라며 궁금해했다”며 “공개적 장소에서는 그를 비난했지만 뒤돌아서는 은근히 부러워했다”고 했다.


리 참사는 한국에 온 이후 태 전 의원이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를 10번 이상 읽었다고 한다. 리 참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국회의원이 되고 당 최고위원까지 오른 그의 활동을 보면서 “혹시 내가 가도 저 정도의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태 전 의원은 16일 본지 인터뷰를 보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리일규 참사는) 김정일·김정은도 알아주는 쿠바 전문가였다. 나의 탁구 라이벌이었는데 내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며 “일규 참사, 참 잘 왔어. 대한민국 정말 살기 좋은 나라야. 우리 함께 꼭 통일을 이뤄 평양에 다시 가보자”라고 했다. 태 전 의원은 “내가 한국에 온 후 조성길 이탈리아 대사 대리, 류현우 쿠웨이트 대사 대리가 왔다”며 “앞으로도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작가의 이전글 자영업자 "최저임금 동결, 업종별 구분해야" / 정중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