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프리랜서 근로자, 배달 라이더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약자 보호를 제도화하기 위한 대규모 토론회를 7일 국회에서 열었다.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를 위해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보호법)’을 제정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을 구체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이날 임이자 의원 주최로 열린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는 비정규직 권익 보호 활동가와 대리운전 기사, 프리랜서 강사 등이 참여했다.
임 의원은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노동시장 변화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한국의 임금근로자가 2200만명이지만,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노조에 가입된 240만명을 위한 것이라면 노동약자보호법은 노동법 보호 범위에 들어올 수 없지만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지원법”이라며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국민의힘은 대한민국의 우상향 발전을 부의 파이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약자를 보호하겠단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할 것”이라며 “보수우파 정당에서 노동약자지원이 메인 주제로 올라오는 경우는 흔치않다. 우린 이 부분에 대해 쭈뼛거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폭염에 건설 노동자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휴식권 보장과 관련한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임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현행 산안법 39조의 ‘폭염·한파에 장시간 노출되어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추가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현장에서 약자 보호 위한, 특히 이렇게 폭염같은 특수한 상황에 민생정책을 한발한발 해나갈 것”이라며 “약자 지원에 대해서는 그런 정쟁에 앞서서 대승적으로 양보와 타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노동약자지원법 입법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플랫폼, 프리랜서 등 기존 법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며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고 노동개혁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중에 하나다. 훌륭한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플랫폼 근로자들은 비정규직 경력 인증, 공제회 설립 등을 요구했다. 직장 내 괴롭힘 등 불공정한 처우 해소를 위한 전문 상담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고용부 산하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 공동단장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이외에 노동약자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회적 보호 필요성이 높지만 현행 노동법상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인 △영세사업장에 소속된 근로자 △타인의 사업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자영적 노무제공자 △헌법상 단결권 행사가 사실상 어려운 경우 등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 노동약자들에게 국가는 '기댈 언덕'이 돼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근로자 등에게도 ‘근로자성’을 부여하되 기존의 노동 규율체계에 넣는 대신 맞춤형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전통적 노동법 체계는 사용자를 특정해 의무를 부과하고 이로써 근로자의 보호가 구현되도록 설계됐다"며 "그러나 지불능력이 아예 없는 근로자 같은 사용자가 존재하고, 산업구조 변화로 사용자가 모호하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장 소속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종사자 등과 같은 노무제공자, 그리고 작업 장소와 시간 등이 달라 단결권 행사가 사실상 어려운 노동자 등은 현재의 노동법 체계로 보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권 교수는 "타인의 사업을 상대로 한 노무제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자로서 '사회적 보호필요성'이 높은 사람에게 상응하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법체계의 제도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노동약자보호법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다만 "노동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배려와 은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국가 지원과 보호에 상응해 노무제공자들의 상호조직화된 소통을 촉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노동시장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런 조직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도 내지만 동시에 무한 저가 경쟁이나 과로나 그 밖의 불공정 거래에 관한 고충들을 자율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나눔의 어떤 자율적 룰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이런 룰이 작동한다면 국가는 산업재해 예방, 사회안전망 강화 및 노후 빈곤 해소 같은 사회적 이득이 있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 조정 및 표준계약서 활용, 보수 미지급 문제에 대한 지원도 포함됐다. 권 교수는 “노무 제공 관계에서 고충, 분쟁 발생시 이유와 향후 진행방향, 화해 방법 등을 상담해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고, 표준계약서 제공도 거래 건전성을 담보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임금 관련 여러 보호제도가 있지만, 프리랜서 같은 노무관계에서의 보수 미지급에 대해선 손 놓고 있다. 보수 미지급 위험을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법안엔 노동약자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증 방안도 담길 전망이다. 권 교수는 “프리랜서 등 경력이 사회적으로 공적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 대출, 노동력 개발 등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직업 능력 향상 관련 교육 훈련 기회도 소규모 영세 사업장 근로자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프리랜서와 대리운전 기사, 영세사업장 근로자, 비정규직 등이 참석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토로하며 법안에 반영해달라고 당부했다.
'프리랜서'로 불리는 특수고용직(특고)·플랫폼 종사자 등은 기존의 법 제도 하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새로운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기영씨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강의비는 얼마나 받아야 하고 세금은 얼마나 떼야 하는지 전혀 몰라 3.3%(사업소득), 8.8%(기타소득) 등 주는 대로 받았다"며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주는 대로 받는 형태가 업계에서 만연하고, 소득 증빙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프리랜서 통·번역가인 우기홍 씨는 "일부 에이전시가 지위의 우월성을 이용해 70%까지 수수료를 챙기는 등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우씨는 "예전에 연예계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떼지 못하도록 표준계약서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예인들은 엔터테인먼트가 뽑아서 투자하는 경우지만 통번역가들은 직접 대학원까지 나오면서 자신을 상품화 해놓은 사람들"이라며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도 마땅히 호소할 만한 기관이 없다. 소송을 하라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박현호 경기 비정규직센터소장은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작은 사업장 복지 조례 제정, 근로계약 공인인증제 추진 등을 제안했다.
정부 지원에서도 배제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화사업장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이준우씨는 "공장 경영 악화로 재화사업장이 더 이상 시내에 남아있기 힘들다보니 특고 노동자들의 출퇴근이 어려워지고 있고, 근무 환경이 상당히 열악하다"며 "환경 개선 사업 등 좋은 정부 사업들이 있지만 혜택을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민생토론회에서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며 "노조 밖 미조직 근로자나 플랫폼 종사자 등을 위한 노동약자보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미조직 근로자들이 질병·상해·실업을 겪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를 지원하고, 노동약자들을 위한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등을 포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이 장관 후임으로 지명된 김문수 고용부 장관 후보자도 취임 일성으로 노동약자 보호를 강조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움직임을 보수의 외연 확대 시도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고용부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근로자는 2021년 66만1000명에서 지난해 88만3000명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이 야권을 지지하는 가운데 플랫폼 근로자를 중심으로 보수 지지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은 결국 기존 대규모 사업장 노조의 힘만 키우는 것”이라며 “맞춤 지원 법안을 통해 양대 노총 바깥에 있는 플랫폼 근로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